엄마의 하루와 딸의 마음, 그리고 시간이 남긴 나의 생각들
오늘도 평소처럼 하루를 시작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아이와 후다닥 챙겨 어린이집을 보낸 뒤, 집 안이 고요해지자 비로소 느긋한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조용하던 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예전엔 아침부터 오는 광고주의 메시지에도 심장이 두근거렸는데, 엄마가 된 지금은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오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웬만한 일엔 연락이 오지 않으니 이렇게 문자가 오면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어머니, OO이가 친구랑 놀다가 아이의 얼굴에 상처가 났어요. 죄송해요
우선은 연고를 발라주었고, 저희가 조금 더 신경 써서 보살피겠습니다."
사진과 함께 온 메시지를 보고서야 비로소 안심했다.
별일 아니구나, 휴—.
요즘 사건 사고가 많아서인지, 그리고 나의 상상력이 괜한 곳까지 뻗어 나가서인지, 그 짧은 순간에도 별별 생각을 다 한다. 혹시 바깥놀이를 하다가 크게 다친 건 아닐까, 누군가 데려가 버리기라도 한 걸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인데도 마음이 먼저 앞서간다. 물론 그런 일이었다면 전화가 왔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 본다. 부쩍 아이가 성장하면서 다치는 일도 잦아지고, 나도 덩달아 조심스러운 마음이 커진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엄마'가 생각난다. 나도 어릴 때 참 자주 다쳤는데... 그때 엄마의 마음도 이랬겠구나, 그런 생각이 문득 스친다. 엄마가 되어보니 비로소 이해되는 마음들이 있다더니, 요즘 정말 그 말이 와닿는다.
어린이집에 '괜찮다'는 답장을 보내고, 생각난 김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 아이의 칭얼거림에 정신없이 하루를 마무리하느라 연락도 못 드린 게 괜히 미안해졌다.
나는 경기도에 살고 있고, 친정은 부산이라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하는데, 며칠 후 사촌동생 결혼식이 있어
엄마가 올라오기로 했었다.
"며칠 전부터 어깨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수술을 해야 될 수도 있대. 결혼식은 못 올라갈 수도... "
엄마의 말을 듣자마자, 아픈 것보다 손주를 못 봐서, 또 기다리고 있던 딸에게 미안해하는 그 마음을 나는 다정하게 받아줄 수도 있었는데, 괜히 퉁명스럽게 말이 나가버렸다. 늘 그런 딸이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모나게 나가고 결국 또 후회하고.
'엄마, 나한테 엄마가 중요하니까 그냥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내가 곁에 못 있어줘서 미안해요'
입 밖으로는 여전히 서툰데, 속으론 늘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예전엔 엄마가 아프다고 하면 "또 아파?" 하면 지금보다 더 퉁명스러운 말을 했는데.
이제는 아프다고 하면 내색은 안 하지만 가슴에서 너무 큰 걱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아마도 아빠가 갑자기 떠난 그날 이후로,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날은 정말 내겐 다신 없을 날벼락같은 날이었다.
며칠의 야근으로 지쳐 집에 누워 쉬려던 찰나, 핸드폰 벨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돌아가셨데, 어떻게... 얼른 엄마한테 와줘"
사고였다. 일하시다가 사고로, 너무도 갑작스럽게.
그 순간부터 우리 가족의 세상이 통째로 흔들렸다.
늘 나의 울타리였던 아빠가 사라지고, 이내 엄마마저 크게 앓으셨다.
나는 원래 일을 너무나 좋아했고, 그 어떤 시간보다 이상한 사람처럼 일하는 걸 즐겼던 워커홀릭 그 자체였다. 오죽하면 자진해서 야근하고 즐거워하던 나였으니까... 그랬던 내가 과거의 나를 후회했다.
언젠간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순간이 올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그리고 일찍 올 줄 몰랐는데, 그 일을 겪고야 그제야 내가 하는 일이 뭔가 무의미해졌다. 나는 왜 시간을 일한다고 보냈을까? 그 시간들을 같이 보내지 않았을까 후회가 됐다. 그런 후회들이 나를 세우고 있던 마음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나 자신도 놓을 것만 같던 순간, 엄마는 나를 보고 말했다.
"너마저 잘못되면 엄마는 더 이상 못 살아"
그 말 하나에 나는 다시 무너져가는 내 마음을 잡았던 것 같다.
그 몇 년은 엄마와 내가 서로를 붙잡고 버티던 시간이었다.
이제는 나 역시도 결혼을 하고 예쁜 아이가 태어나고서야 엄마 마음을 알고 조금은 무뎌진 것 같다.
물론 여전히 아빠의 빈자리는 느껴지지만 그 빈자리를 품고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사랑스러운 내 아이를 바라보면, 나는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온전히 느낀다.
나도 이렇게 사랑받으면 자랐겠지. 우리 부모님도 이 시간을 오래 붙잡고 싶었겠지.
몰랐을 것이다. 이 순간이 다시는 오지 않을 만큼 소중한 시간이라는 걸.
지금의 나 역시도 그러니깐.
글을 쓰는 지금도 물론, 알면서도 하루를 보내다 보면 그 소중함을 순간순간 잊는 것 같다.
나는 여전히 표현이 서툴고, 감정을 꿀꺽 삼켜버리는 날들이 많다.
그럼에도 내 마음 한편에는 늘 같은 바람이 자리하고 있다.
가족들이 건강하고, 오래오래 곁에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나 역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행복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마음.
언젠간 사라지는 것들을 위해, 그리고 오래도록 남아주었으면 하는 것들을 위해
훗날의 후회가 더 깊어지지 않도록 지금 내가 건넬 수 있는 마음을 오늘도 조금씩 내어놓는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조용히 다짐해 본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내 안에서는 늘 가까이 있었다. 그게 사랑이었다.
많이 바라지 않을 테니까, 조금만 더 곁에 있었으면 한다.
소리를 들을 수 있게,
손에 닿을 수 있게,
온기를 느낄 수 있게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
오래도록 남아줬으면 하는 것들
그것들은 사실 평범한 내 속에서 나를 지켜주고 나를 바꾸어 이미 남아 있다.
내가 겨우 내민 오늘의 작은 마음 하나가 내일의 나를 살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