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순서에서 매번 마지막에 서는 나에게

하루 속 가족을 돌보면서도 놓칠 수 없는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

by 봄바라기

평소처럼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 아침.

늘 그렇듯 정신없이 흘러갔지만, 오늘은 유독 내 시간이 아니라 남편을 돌보는 일로 하루의 방향이 정해졌다.

엄마의 하루는 참, 계획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벼운지 자꾸만 보여준다.


주말이 끝날 무렵 남편의 발목은 더는 버틸 수 없을 만큼 아파졌다.

그동안 파스 붙이고 버티던 통증이 결국 바닥까지 내려앉은 것이다.

일요일엔 병원도 갈 수 없어 침대에 누워만 있었고, 평일이 되자마자 나는 아이를 보내고 남편을 데리고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한 발 내딛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는데 도무지 혼자 보낼 수가 없었다.

편한 가까운 병원이 있었지만, 그조차 걸어서 가기엔 너무 먼 거리였고 그 와중에 빗방울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결심했다.

오랜만에 다시 운전대를 잡기로.


아이와 여행 다니기 위해 배웠던 운전이었는데 오늘은 남편을 위해 필요했다.

반년 넘게 쉬었던 ‘왕초보 운전’은 다시 떨리게 했지만 거북이처럼 조심조심 달려 병원에 도착했다.

뭔가 조금 웃기고, 또 조금은 짠한 현실이었다.


인대 파열이라는 진단을 듣고 돌아오는 길, 남편은 거의 움직이지 못했고 평소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던 내 하루에

‘남편 돌봄’까지 조용히 겹쳐졌다. 그 순간 아, 또 내 하루의 우선순위가 바뀌는구나 싶었다.

참 신기하다. 누구를 먼저 돌봐야 하는지의 문제는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순서에서 늘 맨 마지막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할 때면 서늘함과 익숙함이 동시에 스친다.

섞이지 않을 것 같은 감정들이 묘하게 같이 머문다.


돌봄이라는 건 차례대로 오지 않는다.

한꺼번에 몰려와 숨을 훅 빼앗아가고 어느 순간 조용히 빠져나가 버리기도 한다.

오늘은 특히나 그런 하루였다.


점심 넘어 남편이 약기운에 잠들고,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까지 아주 짧은 시간이 생겼다.

그 몇십 분의 조용한 틈.

나는 그 틈에 조용히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냥 누워 쉬어도 되는데, 그보다 이렇게 문장 위에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이 오히려 나를 다시 숨 쉬게 한다는 걸

이제는 잘 알고 있다.


결혼하고, 남편이 생기고, 아이가 생기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가족의 뒤편에서 서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게 사랑이기도 하고, 책임이기도 하고, 가끔은 나를 조금 잃어버리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렇게 짧게라도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있으면 다시 가족에게 향할 힘이 생긴다.

오늘 하루도 아마 그런 순간 덕분에 버틸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나는 내 마음속에서 조용히 이렇게 말한다.



돌봄의 순서를 정할 수 없다면,

그때마다 흔들리는 내 마음부터 먼저 안아주자.

나를 먼저 돌본 다정함이 결국 가족에게 스며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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