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르자. 사고를 치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도 더 아무것도 하기가 싫을 때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도 손꾸락을 움직이기도 싫을 때
해야 하는 000들이 다 아무 의미 없이 보일 때
밥 먹는 것도 귀찮고 내가 왜 밥을 꾸역꾸역 먹어야 하는지 한탄스러울 때
잠을 계속 자고 싶은데 잠이 안 올 때
재밌다고 하는 예능, 웹툰,... 블라블라를 보는 것 마저도 귀찮을 때
그 무엇도 재미가 없다고 여겨질 때
그래서 누워서 천장에 얼룩무늬를 세어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움직이니까 어지럽고 현기증이 온다. 아. 지긋지긋한 저질체력. 아. 망할 무기력증. 또 시작이군. 그래 오늘은 이것에 대해서 글이나 써보자.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주위를 관찰하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나는 보통 인간들보다...
1. 아주 빨리 싫증을 내고 지루해하고
2. 그러다 보니 만사가 순식간에 재미없고
3. 그러다 보니 무기력증이 빨리 온다
제가 뭔가 항상 부지런하게 사고를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십니까?그것은 그만큼 제가 무기력증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눈물 좀 닦고)
무기력증이 올 때 현상은 대략 위에서 나열한 바와 비슷하다. 이 상태를 계속 내버려두면 나아지겠지... 가 아니라 더더욱 이상하고 기기묘묘한 분위기에 휘말린다. 더 우울하고, 화가 나고, 세상에서 없어지고 싶고, 사는 게 귀찮고, 심지어는 자살은 무서워서 못하겠고 그냥 귀찮으니까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 이따구 생각까지 하게 된다. 더더욱 멜랑꼴리 한 음악을 들으면서 음울해지는 것이지.
난 이런 상태가 싫다. 어떻게 해야 할까.
1. 운동을 한다.
2. 명상을 한다.
3. 무슨 일이든 팍! 질러버린다.
내가 보기에 정답은 1번 혹은 2번인듯한데 문제는 1번과 2번을 꾸준히 자주 습관처럼 해주셔야 이 상태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이미 무기력 늪에 빠져서 춤추고 있는데 어떻게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하고 자빠지겠는가 숨 쉬는 것도 귀찮은데.
그래서 극단적인 나는 극단적인 3번을 선택했다.
사고를 칩니다.
모든 것이 귀찮은데 어떻게 사고를 치냐고? 사실 그렇긴 하다. 잠자는 것도 귀찮고 막 그런데 그 몸을 끌고 나가 사고를 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무기력증이 너무 싫기 때문에 그만큼이나 자극적인 마약을 주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 뭐 이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다. 나 같은 경우 이런 사고를 벌려보았다.
- 비싸고 별 쓸모없는 무언가를 급작스레 사버린다.
- 햄스터나 페렛을 사서 키운다고 외친다.
- 싸운다.
자 위의 3가지 예시는 매우 나쁜 예시이며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 실제로 행하기는 했으나 부메랑으로 돌아와서 나의 앞통수를 후려쳤다. 우울해서 걍 사버린 50만 원짜리 한약 다이어트제. 일주일도 못 먹고 다 버렸다. 햄스터와 페렛... 오래 키우지도 못하고 내가 방치하는 통에 돌아가셨다. 언니랑 드럽게 싸웠다. 당연히 무기력증은 벗어나는데, 뭔가 나에게 남은 건 만신창이. 악을 악으로 대응하는 나의 무식함 퍼레이드. 그래서 좀 나이를 먹고 나니까 대응책이 약간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아래를 보시오.
- 해야 하는 일정을 다 몽땅 때려치우고 바다에 간다. 대자연의 품에 안긴다.
- 비트코인을 산다.
- 프로젝트 시작을 선포한다.
(대자연)
바다에 급작스레 떠나는 건 꽤나 보편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요즘은 잘 안 먹힌다. 자극적이지 않기 때문이지. 그래도 한때 내가 농장을 돌아다녔던 이유가 그거다. 마음과 정신이 좀 먹었을 때는 대자연만 한 치료제가 없다. 손바닥만 한 나방이 날아다니는데 어디서 무기력을 중얼거리겠는가. 아아 대자연이여.
(비트코인)
그다음 선택한 건 비트코인이다. 차트가 날아다니는 비트코인을 보고 있노라면 심장이 쫄깃해져서 무기력을 이야기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건 후폭풍 엔드 리스크가 너무 크다. (허허허허)
(프로젝트)
마지막이 프로젝트 시작 선포이다. 그냥 지르는 거다. 평소에 함 해봐? 이러고 있던 사이트 프로젝트, 잡다한 돈 안되고 그냥 나의 욕심만 챙기는 그런 쓸데없는 그런 프로젝트를 그냥 선포하는 거다. 여기서 포인트는 널리 많은 사람에게 선포를 해야 한다. 이 경우 쪽팔려서라도 무작정 하게 되어있다. 무기력증이 장기간 지속될 때 이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책을 쓰겠습니다! 선포해라. 작은 다큐를 만들 겁니다!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할 거예요! 작은 장사 시작합니다!
무엇이 되었든. 던지세요. 얍. 사실은 캠프, 코딩 캠프, 노마드 코더,... 거의 다 이 단계에서 시작했던 것 같은... (속닥속닥)
아. 마법이자 저주인 나의 무기력증이여.
하지만 이걸 활용해보자. 가장 쓸모없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자. 나를 치료할 수 있는. 그러다 보면 남도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다 보면 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중요한 건. 일단. 저질러야 해.
'푸른 꽃'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 꽃을 발견한다 해도 금방 시들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푸른 꽃이 주는 선물은 그 꽃을 향해 떠나는 여정에 있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다. 목적지가 우리에게 부여하는 여정 그 자체이다. 그 여정이 나를 허물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간다. 현실에서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가 있다 해도 그 낭만적인 꿈이 없다면 우리는 일생 동안 현실에만 머물 것이다.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는 ‘너 자신의 신화를 펼쳐라(Unfold your own myth)'라고 말했다.
걸음을 옮겨라, 두 다리가 점점 지쳐 무거워지면 너의 날개가 펼쳐져 비상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 류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