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란 무엇인가
회고를 해야 하는 시즌이 되었다.
2022년도 이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으니. 회고라는 것을 해야겠다. 생각하다. 문득 회고는 무엇인가. 무엇이 좋은 회고인가 라는 상념에 빠졌다.
올해는 이러이러한 일을 했습니다~라고 나열을 하면 좋은 회고인 걸까?
아니면 올해는 이러이러한 일을 계획했는데 이러이러한 일을 해냈고. 이러한 일은 하지 못했습니다.라고 쓰면 올바른 방식인 걸까. 생각만 해도 무슨 성적표 받는 느낌이라서 골치 아프고 괴롭다는 마음이 들었다. 브런치에 싸질렀던 글 (아니 무려 200개나 썼단 말인가!) 중 옛날 글을 뒤적이며 읽어보았는데 꽤나 그럴싸하고 울림이 있었다. 근데 그런 글들은 대부분 회고랍시고 쓴 글들이 아니라. 지지리 궁상맞은 여행을 고독하게 하면서 뼛속 절절하게 느끼고 배웠던 감정을 녹여서 쓴 글들이었다. 흠. 결국 회고든 무엇이든. 지극히 개인적인 깨달음. 갬성을 솔직하게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2022년 내가 가장 중요하게 느끼고. 절절하게 배운 것은 무엇인가.
나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솔직한 2022년에 알게 된 것은?
1. 건강은 죤나 중요하다.
2. 근데 마음이 더 중요하던데?
3. 아! 역시 여행은 옳다. (!?!?!)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건강이라는 것에 적신호가 들어오고나서부터 전전긍긍하며 지냈다. 허리 통증이 극심해서 하루하루 얼마나 아팠는지 기록하는 일기를 쓰기도 했다. 의자에 큰 두려움 없이 앉아있을 수 있는 하하루가 진심으로 그리웠다. 건강이 무너지니까 진짜 다 무너졌다. 동기부여 따위는 될 리가 없고. 인간관계. 커리어. 뭐든 그냥 의미가 0으로 수렴한다.
근데 참 이상한 게. 그러한 깨달음에 기반하여 모든 것을 건강에 몰빵 했는데 건강은 오히려 후퇴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겁나 비싼 의자. 책상. 매트리스. 각종 신기술들을 도입하여 무너진 허리를 고쳐보려고 아등바등했는데. 오히려 허리 건강이든 뭐든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한 건. 바로...
여행하고 나서였다.
2022년 4월. 아몰랑 하고 떠났던 멕시코. 콜롬비아. 무려 12시간이 넘는 장시간 비행을 허리는 신통방통하게 잘 버텨주셨고. 그뿐인가? 멕시코의 멍청하게 딱딱한 의자들로 가득한 코워킹 스페이스에서도 몇 시간씩 일을 해도 괜찮았다.
2022년 10월. 심지어 몽골에 가서 말을 타고. 낙타를 타고. 8시간 넘는 오프로드 길을 가도 허리는 멀쩡하셨고. 2022년 12월. 지금은 태국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 역시 마음이 핵심이었던 것이었다.
허리를 고쳐야 해~ 운동도 조심조심해야 해~~ 하는 관점에서 벗어나서. 그저 멕시코 음식 맛있다~로 정신이 쏠리니까 뭐 아프고자씨고할 정신도 없었다. 너무 우습게도 건강이 서서히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물론 이 깨달음을 여행을 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여행이 이러한 전환점을 제공해주는 것은 확실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내가 왜 이러한 거금을 들여서. 남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이 시점에 이래도 되나 싶고. 온갖 생각이 들고. 떠나기 직전까지도 짐을 싸면서 괴로워하지만. 그리고 막상 도착했을 때도 물갈이한다고 배 아프고. 몽골에서는 독감에 걸려서 열이 펄펄 나고. 태국에선 알 수 없는 편두통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행이 좋다.
손가락만 휘적이면 뭐든 시켜 먹을 수 있고. 뭐든 볼 수 있는, 익숙함에서 떠나서.
럭셔리한 휴양지에서 그냥 똑같이 늘어져있는 그런 여행 말고.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뭐든 하나 쉽지 않고. 손짓발짓 다 동원해야 하는 이 고난함이 좋다.
이 자발적인 괴로움이 좋다. (난 변태인 건가...)
그리하여 내 온몸의 세포들이 "생존"이라는 키워드 앞에서 활력으로 다시 꽉 차오르는 기분이 좋다.
2022년은 꽉 차있는 활력을 다시 찾을 수 있어서 감사한 한 해였다.
세계여행 0년 차라던 오만함과 시크함을 버리고. 그저 호기심으로 빵빵하게 채워서, 인터넷 따위라곤 없는 몽골 게르에 누워있다 보니. 아. 맞아. 여행. 이런 거였지. 싶었다.
다시 새로운 여행을 하고 싶다.
지지리 궁상맞은 0원으로 한 달 살기 말고. (ㅋㅋㅋ)
시크하고 오만한 디지털 노매드의 00 살기. 이런 거 말고 말이다.
호기심과 어리바리함을 장착하고. 생존. 활력으로 꽉꽉 채운 그런 여행 말이다.
어설픈 지식과 고정관념 말고. 일단 해보고. 물어보고. 배우고 경험하는 그런 여행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