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생각
치앙마이는 일명 '디지털노마드의 수도'로 아주 잘 알려져 있다. 전 세계에서 겨울이 되면 따듯한 치앙마이로 다들 찾아온다. 그리고 집을 찾고 (주로 님만 근처),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일을 한다 (하는 흉내를 낸다).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밋업이 열리는데, 뭐 'digital nomad beer night' 'how to become digital noamds' 종류의 이벤트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아아. 이놈의 디지털 노마드... 나만 노이로제를 느낀 게 아닌가 보다. 이런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제 말할 수 있다.
난 < 디지털노마드 > 트렌드가 싫다.
디지털노마드가 되는 방법, 코워킹 스페이스, passive income, affiliated marketing, meet-ups, podcasts, etc, etc... 뭐 한국이라면 "디지털 노마드 학교" 가 생기는 것 아닐까? 충분히 가능하다. 디지털 노마드 캠프라든가... 뭐 일주일 후면 이제 당신은 '디지털 노마드!' 응???
사실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 꽤나 매력을 느꼈고,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재밌고, 나도 그런 사람들 만나보고 싶고, 블라블라.. 근데 문제는 이게 < 정답 사회 + 자본주의 > 틀 안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아주 뭔가 기묘 해지는 것이다. 디지털 노마드 전에는 해커/스타트업이 있었고, 그 전에는 컨설턴트가 있었던 것 같고, 그 전에는 회계사가 있었던 것 같고 (아 이건 아닌가?)...
사회는 마치 "정답"으로 보이는 것을 찾고, 그것을 팔기 시작한다.
이해한다. 뭐 AI가 일자리 다 가져갈 것이라고 하지, 브렉시트, 트럼프, 베네수엘라 돈은 휴지조각이지, 뭐 세계 돌아가는 꼴이 요지경이니 다들 뭔가 하나라도 부여잡고 싶은 것 아니겠는가. (사실 나도 그러함. 또르르..) 그럴 때 뭔가 멋지고 쿨하고 섹시한 것이 나타나면?
전설이 되었다. 4 Hour Work Week, 디지털 노마드의 시조새.
네 저도 밑줄 하나하나 치면서 읽었습니다.
다들 우르르 몰려가서 그 '것'을 '산다.'
사실 그 디지털노마드 자체에 대해서 내가 투덜거리는 것이 아니다. 스타트업도 좋은 것이고, 디지털 노마드도 새롭고 신선한 것이고.. 컨셉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내가 투덜거리는 것은, 그저 "남들 하니까 나도 해볼래, 우르르, Get-Buy" 가 싫다.
취업 동아리를 하면서 대학교를 (사실상 취업학교)를 졸업하여, 취업하고 나서- 퇴사 학교를 다닌 후에 퇴사를 하고, 창업 사관학교를 다니면서 창업을 하고, 폐업/퇴사 이후 (오 폐업 학교가 없군!), 여행학교/행복학교를 다니지 않을까? 아, 아니면 디지털 노마드 학교를...(흠...)
하지만- 정답은 없고, 그러니까 당연히 패스트-트랙도 없고, 그러니까 당연히 이건 누가 심화학습, 고액 과외로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네가 누군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졸라 방황하면서 온 몸으로, 자기 자신 만의 방법으로, 자기 자신만의 템포에 맞춰서.. 그러니까..겁내 방황하면서, 겁내 혼자서 멍 때리면서, 나는 누구, 여긴 어디를 중얼거리다가..
그러면서 하나하나 퍼즐 조각 맞춰가듯이 나만의 정답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뭐 그러다가 그 답이 디지털 노마드면, 디지털 노마드 하면 된다. 나에게 커스터마이징 된 걸로...
물론 후자는 시간이 퍽이나 오래 걸리고, 아 물론 그 지난한 과정 중간에 주화입마에 빠져서 또다시 사회가 만들어준 '정답' 중에 하나를 '사버릴 수'도 있다. (아... 나... 난데??)
‘멋있는 걸 만들 생각은 버려.
너만의 고유한 ‘볼품없음’을 창조하라고.
너만의, 너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라고.’
- [마이클 키멜만, 우연한 걸작]
참으로 감사하게도 브런치를 통해서 스리슬쩍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나만 겁내 마이너 감성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나와 비슷한 종족들이 있었나 보다. 그렇게 연락이 닿은 분들이 우리 집에 와서 사시기도 하고, 인터뷰를 하시기도 하고, 이메일을 주고받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꾸벅. 꾸벅. 덕분에 오늘도 업데이트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