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ynn Apr 22. 2017

노마드에게 집이란

2년여 동안 떠돌아다니다 보니

디지털 노마드, 때로는 발리에서 때로는 치앙마이에서 혹은 베를린에서 어디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컴퓨터만 있으면 일 할 수 있는 이들. 그렇게 세계를 자유롭게 떠다니며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노마드에게 집은 어떤 존재일까.


2년 전 한국을 뻥- 차고 뛰쳐 나와서 아무 대책 없이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는 나에게 물어보면 난 이제 딱 한마디로 대답할 수 있다. 무려 2년여의 세월 동안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며 생활비, 물가, 기후, 등등을 체크하면서 발리에서 한 달, 치앙마이에서 한 달, 베를린에서 석 달 살아보고 그러했는데 곧 부질없음을 알았지. 왜?


겁나 외롭다.


여기 비슷한 경험을 한 언니가 쓴 블로그인데 그 언니도 이런 말을 한다. "Relationships are more important than new experiences" - 관계는 새로운 경험보다 더욱 중요하다. 만날 쳐 돌아다니면 진지한 관계는, 깊은 경험은 절대 할 수 없다. 그저 값싼 국가에서 국가로 돌아다니면서 솜털처럼 가벼운 관계와 경험들을 전전할 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기대했던 자유인 건가?


저렇게 기가막힌 장면도 혼자보면 그저 씁쓸할뿐


치앙마이에서 6개월을 살았다. 값싼 물가, 따듯한 기후, 친절한 사람들, 요가, 명상, 타이마사지, 동네마다 멍멍 짖어대는 멍뭉이들, 아침에는 시끄러울 정도로 지저귀는 새들, 살랑거리는 바람처럼 모든 것이 편안하고 쉬엄쉬엄한 치앙마이.


인도 (오로빌)에서 2개월을 살았다. 항상 우당탕한 어디선가 고장이 나거나 문제가 터지는 정신없는 인도, 전기가 나가거나 물이 안 나오거나, 인터넷이 안 되는 등 뭔가 하나 고장이 나야 정상인 그곳. 그래서 그냥 그려려니 오늘 하루도 공쳤구나 하며 피식피식 쪼개던 나날들. 비가 왕창 오는 날 비를 피해서 설탕이 잔뜩 들어간 짜이를 홀짝홀짝 마시는 그곳, 인도.


베를린에서 3개월을 살았다. 다양한 문화생활, 게이 퍼레이드, 클럽 마테, 물보다 싼 맥주, 재밌는 사람들, 매일매일 동네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음악과 흥미로운 행사, 지적 자극이 충만하게 흘러넘치는 재미있는 베를린.


모로코에서 5개월을 살았다. 모든 것이 다 다른 생활양식, 이슬람 문화, 아프리카 대륙, 꾸스꾸스, 타진, 과잉 친절에다가 흥분 잘하는 모로코 사람들, 하루에 5번씩 울려 퍼지는 기도소리, 그저 모든 것이 신기했던 모로코.


부쿠레슈티, 루마니아에서 한 달을 살았다. 냉랭한 듯 무뚝뚝한 듯 하지만 한번 친해지면 마구 퍼주고 싶어 하는 동유럽 사람들, 유일한 동양인이라서 항상 쏟아지는 관심과 질문에 답해야 했던 나날의 루마니아.


오늘처럼 약간 심심한 듯 무료한 날이면 그냥 지하철 타고 어디든 갈 수 있었던 베를린이 그립다. 하지만 베를린에서는 치앙마이의 따스한 날씨와 어디든 나갈 수 있는 스쿠터가 그리웠지. 그리고 물론 한국의 짜장면이 그립고, 인도의 짜이도 그립다. 아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따스한 모로코, 치앙마이, 인도가 그리울 것이고, 무료하고 더운 나날에는 베를린이 그리고 루마니아가 그립겠지? 인간은 참으로 간사하여 본인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끊임없이 그리워하니까 말이다.


그래도, 집이 가고 싶을 때가 있다.

쉽게 지루해하고, 같은 걸 반복하면 이내 새로운 모험/도전/자극을 찾아 나서야 하는 나 조차도 털썩 주저앉아 집이 가고 싶어 할 때가 있으니 그건 아마도 아플 때가 아닌가 싶다. 그건 아마도 반복되는 인사와 겉도는 영혼 없는 대화에 짜증이 날 때가 아닌가 싶다. 여행자들의 대화는 간혹 너무나 끔찍할 정도로 무의미하다. 어디서 왔니, 뭐하니, 어디 갈거니,.. 그리고 이내 친해졌다 싶으면 저 사람은 떠나겠지요. 아. 이럴 때 중얼거리게 된다. 집에 가고 싶다. 아. 집이 어디냐고?


물총을 쏩니다. 쏴아아아아아아


그냥 내 밍숭 밍숭 한 빙구스러움을 보여줘도 되는 곳

무엇인가 끊임없이 잘해야 하고,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

그냥 진짜 무장해제하고 누워서 빈 둥 거려도 되는 곳

그러다가도 너무 멍청하면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는 곳


그러니까 집은 사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집은 관계이고 커뮤니티 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나는 오롯이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를 쉬게 할 수 있고, 또한 나를 발전시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집을 찾아 나섰는데 아무리 체크리스트를 지워나가도 도통 찾을 수가 없어서 고개를 연방 흔들어댔는데 2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 거다. 아. 집은 000하고 000한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구나. 관계구나. 커뮤니티이구나.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찾냐고? 일단 내가 그런 사람이 되면 된다.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당길 테니까 말이다. 그곳이 어디든 말이다. 그러니까.


집을 찾아다닐 필요가 이제는 없구나.

이제는 대책 없이 그냥 떠돌아다녀도 목적 없이 두둥실 떠다녀도 되겠구먼. (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