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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 Apr 25. 2017

다시 짐을 꾸리며

여정의 끝, 그리고 또 다른 시작

슬슬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지난 6개월간의 삶 동안 쌓인 짐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총 6개월간 치앙마이에서의 삶이 이제 마지막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시작된 나의 인생의 한 챕터도 슬슬 끝나간다. 새삼 이 모든 여정, 총 2년여간의 떠돌이 삶을 뒤돌아 보았다. 어디서, 어떻게, 왜, 어쩌다가 시작되게 되었는지 나도 퍽이나 궁금했다.


https://brunch.co.kr/@lynnata/20


저 하얀 고양이와 까만 신발을 찍었던 순간이 떠오른다. 2016년 9월.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 도착한 바로 그 날이었다. 무사히 새로운 국가에 잘 찾아왔다는 안도감, 그리고 친구 집에 살고 있는 하얀 고양이가 반겨주는 것에 더더욱 마음이 푸근해지면서 저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달팽이 마냥 짐을 지고 낑낑 돌아다니는 내 신세가 약간 서글프기도 했는데 때마침 반겨주는 저 고양이 녀석이 얼마나 고맙던지. 그래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 국가에서, 저 대륙으로 돌아다니게 된 나의 사연을 나도 한번 정리하고 싶었다. 나도 이해하고 싶었다. 내가 왜 싸돌아다니는지.


왜 나는 싸돌아다니는건가


나는 유년시절을 인도에서 보냈다. 약 4년간을 인도 뉴델리에서 자랐는데 아무래도 감수성 폭발하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인도에서 보내서 그런지 나에게 있어서 인도는 한국만큼이나 자아형성에 큰 기여를 하셨다. 한국에 다시 귀국해서 꽤나 오랫동안 적응하기 힘들었고 낯설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집' '고향' '귀향'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이상스럽게 울림을 주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근 4년여 만에 한국에 돌아왔는데 어찌나 모국이 낯선지. 귀국을 했지만 난 계속 겉도는 외부인이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이런 것이다. 난 집에 왔는데, 집에 가고 싶었다.


난 한국이 꽤나 미웠다. 왜. 그 '한국이 싫어서'라는 유명한 책도 있지 않은가. 난 내 자서전인 줄 알았다. 인도도 싫고, 한국도 싫고, 둘 다 꽤나 적응하려고 했는데 난 영원한 부적응자라는 생각이 들더라. NGO도 다녀보고, 사기업도 다녀보고, 게다가 창업까지 해보았는데도 난 여전히 한국이 낯설고, 어렵고, 대면 대면하다는 생각에 물들었다. 물론! 내가 문제인 건가?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결국 '아몰랑' 스테이지에 접어들어서 다 후려치고 도매급으로 넘기고 튀었다. 역시 이것도 저것도 해보고 안되면 빨간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는 것이지.


버튼 누르고 무작정 달려...는 항상 현명하지는 않다.


한 달의 한도시? 커뮤니티 탐방? 사실은 그게 목적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난 귀찮았다. (아 이렇게 써도 되는 것인가...) 솔직히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이제는 생각을 좀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혼자서 여행하면 외롭다. 디지털 노매드이니 공동체이니 커뮤니티니 다 모르겠고. 그냥 혼자 여행하니 겁나 외롭고, 한국에 가고 싶진 않고, 인도도 싫고 하니 아썅 모르겠다 그냥 발길이 닿는 대로 떠돌아다녔다가 가장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리고 그렇게 싸돌아다니면 몸이 피곤하고 노곤하기 때문에 가장 몸과 마음이 편안한 곳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그리고 괜찮다 싶으면 거기서 살지 뭐! 이런 생각을 했다.


근데 그런 곳이 없더군. 젠장. 인간은 이기적인 건가 아니면 내가 욕심이 많은 건가. 아니면 그냥 원래 인생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좋다는 발리, 치앙마이, 베를린 (.. 은 진짜 좋긴 하다.) 좋은 점이 있으면 항상 반대급부가 존재하더군. 하기야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온몸으로 체험하고. 그래도 물가가 저렴하니까, 그래도 건물이 아름다우니까, 그래도 뭔가 재미있으니까 더 비벼보려고 했는데 역시나 "아 씨발 존나 외로워"서 이것도 못해먹겠더라. 그러니까. 한 달에 00원, 생활비 얼마, 집 월세, 안전한지 안 한 지, 물론 중요하지. 그런데. 외로움은 어쩌지? 아 그리고 나 꽤나 심심해하는 사람이라서. 뭔가를 하거나, 배우거나 해야 하는데....... 이러다가.


결국은 사람이더라.라는 결론에 도달. 그럼 그런 사람들이랑 옹기종기 모여서 살자 싶어서 집을 차려버렸다. 그리고 약속했던 6개월 실험이 끝났고 이제 다시 짐을 꾸리고 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길을 향하는 마음이 꽤나 경쾌하다. 난 여행이 싫다고,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한다고 동네방네 다 떠들어댔는데 이게 웬일인지 모르겠으나 6개월간 집순이 놀이를 했으니 이제는 탈탈 털고 좀 돌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지.


이불 득템하여 기쁜 그들.ㅋㅋㅋ


아마도 집이라는 게 뭔지 알아버려서 그런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짐을 꾸리는 손도, 그리고 수많은 물품들을 나눠주는 과정에서도 홀가분하고 즐거운 것이 아닌지. 왜냐하면 이제 나의 여정은 '집을 찾으러 가는' 여정이 아니라 '집을 내가 만드는' 여정이니 말이다.  치앙마이 집이 사라지는 것이 무척이나 꽤나 씁쓸하고 눈물도 한 방울 주르륵 흘렀지만. 아. 어디를 가든 이렇게 할 수 있겠구나.



마음 맞는 사람들이랑 꿍짝꿍짝하는 건 꽤나 즐거운 것이구나. 그렇게 놀면 어디든 나의 집이구나. 그런 자신감이 생겨서 그런가 보다.

이제는 여행을 즐길 수 있을까?

흠...그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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