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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 May 01. 2017

치앙마이, 마지막 날을 보내는 방법

6개월간의 모험을 끝내며


계약을 했다. 2016년 10월 어느날. 


오늘은 4월 30일. 최종 6개월 계약이 끝나는 날이다. 정말 그 날이 왔다. 계약을 할 당시에만 하더라도 2017년 4월 30일은 굉장히 매우 멀게 느껴졌는데. 어떤 모습을 내가 하고 있을지 퍽이나 궁금했는데, 과거의 나에게 싱긋 웃어줄 수 있게 되었다. 야. 너 진짜 다 해냈어. 게다가 너 꽤나 행복하게 마무리했어!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정신없이 청소를 시작했다. 워낙 즐겁게 잘 보낸 곳이라서 마무리도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커서 정말 2시간여를 물 한 모금도 안 마시고 청소를 해댔다. 화장실, 방, 마당, 거실, 주방... 냉장고까지 탈탈 털어내고 나니 새집처럼 훤해진 집이 눈에 들어온다. 집을 소개하여줬던 태국 친구가 방문했는데 눈이 휘둥그레진다. 완젼 새집이 되었네! 뿌듯 뿌듯. 집주인이 워낙 마음이 넓고 (널럴하신)분이라서 큰 탈 없이 계약 마무리를 했다. 보증금에서 전기요금, 수도요금 제하고 나머지를 전액 돌려받았다. 이전 집에서 엄청나게 많이 까였던 것을 생각하니 다행이다 싶다. 역시 럴럴한 집주인이 최고다. 그렇게 고마우신 집주인님에게 서울에서 공수받았던 소주를 두병 선물로 드리고, 태국 친구들에게 집안 세간살이 이제 필요 없게 된 것들을 탈탈 털어서 다 주고, 그렇게 배웅하고 대문을 닫았다.


집주인님과 태국 친구들과 찰칵!


텅 빈 집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뭉클한 게 울컥 올라오고 눈가가 시큰했지만 그냥 묵묵히 열쇠들을 꺼내 들고 한 방 한 방 잠가나갔다. 이 방에 누가 첫 손님이었지. 아 그리고 그다음엔 누가 왔었지. 한 바퀴 방을 휙 돌고 지나쳐간 사람들 한 명 한 명 생각하니 마음이 슬슬 따끈해진다. 피식 웃으면서 그 방을 걸어 잠근다. 이 방은 참 이러이러한 사람들이 많이 머물렀구나. 이층 방에는 오두방정인 남자애덜이 주로 머물고는 했었지. 아 이 맨 끝방은 항상 약간 예민한 여성분들이 머물고는 했었지. 방들을 다 걸어 잠그고 내 방 침대에 앉아서 멍하니 방을 바라봤다. 이 방도 이제 마지막이군.


항상 어느 도시, 어느 국가든 마지막 밤은 조용하게 보냈던 것 같다. 모로코에서 5개월을 보내고 떠나던 그날 밤도 그다지 다른 것은 없었다. 좀 더 오래오래 방을 쳐다봤다.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구석구석 방을 처음 보는 것처럼 쳐다봤다. 한 달 길게는 6개월 나를 안아줬던 내 방. 내 집. 내 공간. 나만 그런가. 난 참 방에 대한 애착이 큰 것 같기도 하다. 방에다가 집에다가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6개월간 진짜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방과의 대화(?)가 끝나면 빨래를 한다. 이제 다시 집을 찾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까 달팽이처럼 다시 짐을 싼다. 그리고 마지막 빨래를 하면서 다음 세탁기까지 무사히 버티기를 기도한다. (... 아 손빨래가 다시 시작되는구나.. 눈물)


멍을 떄립니다. 내 방. 고마웠다.


마지막 날은 대단치 않다. 그냥 또 다른 하루일 뿐이다. 다만 오래오래 멍하게 앉아서 내 손때가 반질반질하게 타버린 책상을 바라본다. 침대를 바라본다. 그 공간을 지나간 사람들을 바라본다. 오래오래 내 머릿속에 사진처럼 선명하게 기억되도록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멍하게 계속 바라본다.


마테하우스 @치앙마이



2016년 11월 1일 - 2017년 4월 30일

총 6개월, 9개국, 37명의 사람들

고맙습니다.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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