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겁내 솔직한 후일담
정원에 개미가 많아졌다. 개미들을 쫒아 가보았더니 초록색 열매들이 두둥실 두둥실 달려있다. 이건 뭐지? 아. 망고다. 문득 눈을 돌려서 나무를 쳐다보니 두둥실 두둥실 망고가 잔뜩 열려있다. 그리고 그 뒤에 바나나 5그루가 열심히 자라나고 있다. 캠프 참가자들이 심어둔 바나나 나무들이다.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남았구나. (!!!) 시간이 흘렀구나. 그리고 이 망고를 먹어보지도 못하고 여길 떠나게 되겠군. 왠지 입맛이 쓰다. 옆에서 하루 종일 졸졸 쫒아다니는 강아지 꿍이 녀석도 없다.
나를 찾는 여행.
내가 지었지만 이름 한번 진짜 잘 지었다. 킬킬. 그리고 또한 참으로 손에 잡히지도 않고 감도 안 잡히는 주제다. 오글거리는 제목이라서 멈칫했지만 바꿀 생각은 전혀 들지는 않았다. 정확하기 때문이지. 난 개발자도 아니어서 코딩을 가르칠 수도 없고, 요가/명사/마사지 마스터도 아니기에 그렇게 할 수 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삼십여 년간의 온갖 시행착오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고난의 이야기 그리고 이를 통해 다듬어진 나의 철학을 공유하는 것 외에는 없기 때문이지. 서로 망한 이야기를 들으며, 아 너또한 망했군요, 하면서 셀프 힐링하며 치앙마이를 쏘다니면 꽤나 즐겁지 않을까 생각했다. 특히 무엇보다 이런 생뚱맞은 주제의 캠프를 무려 한국에서 치앙마이까지 와서 참여할 정도의 (....) 사람이라면 죽이 꽤나 잘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총 5기. 매 기수당 2-3명의 참가자들. 연령대는 21세에서 40세까지. 3박 4일. 동고동락.
그렇게 2월에 시작한 불장난 (...)이 3월 그리고 4월에도 이어져서 무려 5기를 진행하였고 현재 코딩 캠프 1기, 2기가 진행되고 있다. 즉 캠프만 7기를 진행하게 된 것. 매 기수마다 2-3명의 참가자들, 연령대도 다양하고, 경험도, 배경도 다양한 용감무쌍한 사람들이 바다 건너 비행기를 타고 무려 3박 4일을 삼시세끼 함께 밥을 먹고 같은 곳에서 잠을 자면서 지냈다. (헉헉.)
1기 / 2월 10일 - 13일
2기 / 3월 9일 - 12일
3기 / 3월 16일 - 19일
4기 / 3월 23일 - 26일
5기 / 4월 13일 - 16일 (+쏭크란)
6기 / 코딩캠프 / 4월 20일 - 23일
7기 / 코딩캠프 / 4월 27일 - 30일
정말. 매우. 심히. 힘들었다.
1기 캠프 끝나고 몸살 기운이 심히 왔고, 2기-3기 캠프 끝나고 감기 기운이 싸하게 오더니, 4기 캠프 끝나고서는 코와 목이 완전히 막혀서 기침 때문에 이야기도 못했고, 마지막 5기 캠프 끝나서는 화장실을 여러 번 오다니며 장을 모조리 다 비워내었다. (또르르) 신체적으로 이렇게 소모될 줄은, 그리고 내가 체질이 이렇게 저질인 줄은 (알고는 있었다만 많이 개선된 줄 알았는데) 정말 몰랐다. 치앙마이에서 딩가딩가 놀면서 우체국 다녀오는 게 유일한 일정이었던 인간이 하루에 3-4개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해야 하니 죽을 맛이었다. (흑) 그뿐인가. 원래 혼자 방에 처박혀서 최소 3시간 정도는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뭔가 침착해지는 인간인데 유일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 일정 다 끝나고 잠자기 전이다 보니 그것도 죽을 맛이었다. 참가자 한 명 한 명 다들 여기서 잘 적응하고 있는지, 스쿠터는 안전하게 타고 있는지, 음식은 괜찮은지, 잠은 잘 자는지, 뭐 이런 걸 다 신경 쓰고 있으려니 내 몸이 빙구가 되는 형상이었다. (아.....)
그래서 이걸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내가 시작할 때는 신명이 나서 와구장창 벌려놨는데 한 3기 정도 되니까 아 대책 없이 또 사고를 쳤구나. 내가 신체적 빙구임을 모르고 또 이런 걸 하는구나. 힘들어 죽겠네. 이거 언제 끝나니. 오늘 며칠 째니. 아 하루 남았구나. 이걸 또 어떻게 두 번을 더 하지. 아 망했음. 나머지 캠프 소화하는 것도 어렵지만 다시는 이런 걸 하지 않으리라!!! 부르짖었다.
나를 찾다가 찾기는커녕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아니 이건 뭐 '나를 찾는 여행'인데 이걸 진행하는 주최자가 '내가 없어져서 재가 되는 느낌' 이 드니까 된통 죽을 맛인 거다. 뭔가 참가자들을 계속 신경 써야 하고, 하나라도 더 여기서 느끼게 하고 싶어서 아등바등하고, 서로 주고받는 대화에서 뭔가 하나라도 더 좋은 조언을 건네고 싶어서 우왕좌왕하다가. 이건 아닌데 그런 생각이 슬쩍슬쩍 들기 시작했다. 함께 사는 콜롬비아 친구들의 말. "야 너 완전 존나 피곤해 보여" "넌 왜 즐기지 않는 거야?"
그래서. 정신을 놓아보았다.
왜 너는 니가 좋아서 시작한 캠프인데 도통 죽을 얼굴을 하고 자빠져있는 것이냐 라는 말에 "야 니가 뭘 알아" 하다가 "흠. 일리가 있군"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신을 놓기로 결정했다. 나도 참가자이니라.. 이런 마인드로. 여러분 여기는 참가자도 주최자도 모두 하나가 되는 곳이랍니다. 청소/요리는 당연히 같이 하는 거고요. 일정은 뭐 함께 이야기하면서 그때그때 만들어가면 되는 거죠 뭐. 음하하하.
좋았다.
그랬더니 비로소 좀 더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했다. 마사지를 한 명 한 명 해주었다. 다들 속내를 슬쩍슬쩍 꺼내는 게 너무 반가웠다. 아침에 요가와 명상을 좀 더 길게 해보았다. 다들 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도 편해졌다. 나를 찾는 거야 뭐 평생 하는 것인데. 그걸 아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서로 속내를 툴툴 털어내고 가면 좀 더 편하지 않을까. 나도 그러했듯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경험을 이 시간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 걸까.
캠퍼들이 심은 바나나 나무 5그루가 무럭무럭 자란다.
이메일로 다들 한국에 돌아간 이야기를 한다. 어떻게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는지 이야기한다. 골골 거리다가 캠퍼들이 나에게 주고 간 편지들을 읽어본다. 내 방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명예의 전당 마냥 전시해 둔다. 다들 나에게 이런 마음을 주고 가서 너무 고맙다.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약간 나 자신에 대한 아쉬움도 든다. 그리고 이내 곧 "아냐 난 진짜 최선을 다했음." 하고 고개를 털털 털어본다. 캠프가 끝나고 나니 정신없이 프로그램으로 가득 찬 하루하루가 아니라 텅 비어있는 고요한 시간으로 돌아오니까 안심이 된다. 그리고 허전하기도 하다. 정리를 해야겠다. 해야겠다 하지만 정리가 되지 않고 마음만 부산할 뿐이다. 글이 도통 써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망고나무에 망고가 주렁주렁 달렸다. 그래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사지 학교를 등록했다. 내가 제법 마사지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게 다 캠프 덕택이다. 캠퍼들이 (빈말일 수도 있지만) 칭찬을 해줘서다.
요가를 열심히 더 배우려고 계획 중이다. 마찬가지로 캠퍼들이 잘한다고 해줘서다.
글을 더 열심히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썼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제 인생을 이야기할 때 린님은 항상 등장할 겁니다.
저도 덕분에 나라는 녀석을 좀 더 알게 되고 친해진 것 같습니다. 다음번에 캠프를 하게 된다면 좀 덜 빡센 일정으로 놀면서 할게요. 한국에 가면? 어떻게든 되겠죠. 뭐.
고맙습니다.
마테하우스 치앙마이는 4월 30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합니다. 그리고 저는 5월 16일에 한국에 갑니다. 마테하우스 한국편 그리고 캠프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
마테하우스 / 나를 찾는 여행 한국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