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일단은.
제주 이민이라는 단어가 꽤나 유행했다.
그 책을 사들고 2010년이었나 2011년이었나 제주도 대평리 어느 게스트하우스에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겨울이었다. 추웠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난 꽤나 내 삶이 불만족스러웠다. 그런 내 눈에 '제주 이민'이라는 단어가 박혔고. '게스트하우스'라는 단어도 눈에 들어왔다. 그때는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 룸에 자는 게 굉장히 생소했고 나름 트렌드세터 (?)들이 가서 그렇게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서 커플이 되는 게 (응?) 유행이었다. (맞나 모르겠다만) 난 그게 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가서 머물면서 멍 때렸다. 그렇다. 아무것도 안 하고 전혀 유용함이 느껴지지 않는 책을 읽으면서 귤만 열심히 까먹었다.
그때 머물면서 알게 된 언니는 행동력 넘치게 바로 제주에 실제로 이민하여 그 이후 지금까지 제주에 살게 되었다. 난 오- 좋구나- 한 후에 서울로 올라갔고 제주는 잊혀졌다.
그러다가 제주에서 한 달 살기가 유행했다.
아마도 그건 2013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아는 분이 제주에서 한 달을 살아보겠다면서 온 가족을 이끌고 내려갔고 페이스북엔 농가주택에서 한가족이 즐겁게 지내는 사진이 올라왔다. 아 좋아 보였다. 제주에서 한 달 살기가 유행이라고 했다. 나도 한번 제주에서 한 달 살아볼까 잠시 한 5초간 고민했다. 그러나 당시 스타트업 대표로 시간 쪼개면서 김밥 먹으면서 살고 있는 나에겐 그것은 다른 은하계 이야기처럼 들렸다. 다시 제주도는 그렇게 고이 접어 나빌레라가 되었다.
이번엔 제주도가 디지털노마드의 새로운 허브라고 했다.
2015년이었나? 16년이었나. 발리에서 둥둥 떠돌아다니면서 디지털노마드가 뭔지 냄새를 킁킁 맡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어디선가 웹을 돌아다니다 보니 그런 단어를 발견했다. 제주도, 디지털노마드 허브. 흠. 나쁘지 않지. 한창 발리의 거지 같은 인터넷 속도에 툴툴 거리고 있던 때라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발리도 이쁘지만 제주도도 아름답지. 게다가 인터넷 겁내 빠르지. 하지만 비싸지. 아 가격... 뭐 그래도 발리도 요즘 너무 비싸. 제주도 괜찮지. 그나저나 너무 추워. 추운 건 안됨. 다시 한번 제주도는 탁- 접혔다.
2017년 5월. 한국에 간다. 그런데.
서울에서 못살겠다.
너무 비싸다. 숨이 컥 막힌다. 어떻게 이런 가격이 가능하지. 차가 왜 이렇게 많지. 도로가 왜 이렇게 넓지. 건물이 너무 높잖아. 시끄러워. 조용한 곳에 가고 싶다. 바다도 보고 싶다. 어쩌지.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머리 꼬불꼬불한 외국 친구가 말했다. 제주도는 어때? 거기 유명하다던데? 야- 너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야. 거기 얼마나 사람 많은 줄 알아? 비싸다고! 이미 약간 한물갔을 거야. 중국인들밖에 없다고 들었어. 이미 유명했는데 지금 가면 살집은 찾을 수 있겠냐? 한심하다는 눈으로 쯔쯔쯔 거리면서 잔소리를 했다. 머리 꼬불꼬불한 친구가 눈울 데굴데굴 굴리면서 말했다.
찾아는 봤어? 혹시 모르잖아?
저 외국인 녀석이 뭘 몰라서 저렇게 씨불랑거리는구나. 깡그리 무시하고 앉아있다가 뭐 그래도 한번 쳐다는 보자는 생각에 그 유명하다는 카페에 구경이나 하러 갔다. 제사모... 제주를 사랑하는 카페라고....
농가주택. 지금 바로 입주 가능.
이것은 운명이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가격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농가주택을 찾았다. 제주시에서도 가깝다. 바다에서 5분 거리다. 고개를 끄덕끄덕. 외쳤다. 계약하겠습니다.
그렇게. 제주에 산다. 어쩌다 보니. 일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