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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해담 Nov 28. 2022

위대한 유산

바삭바삭, 따스한 순간, 미트 파이

그의 비참한 처지를 동정하면서, 그리고 그가 점차 안정을 되찾아 파이를 먹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파이를 맛있게 잡수시니 기쁘군요."
"뭐라고?"
"아저씨께서 파이를 맛있게 잡수시니 기쁘다고 말했어요."
"고맙다, 꼬마야. 그래, 맛있게 먹고 있다."


처음 접하는 음식, 먹어본 적 없는 메뉴를 앞에 두는 것을 즐긴다.

커가면서 재미있는 일이 많이 없어졌다. 어렸을 땐 디지몬 카드 하나만 가지고 몇 시간을 혼자 놀 수 있었다. 게임은 할 때마다 재미있었다. 책을 몇 권을 연달아 읽어도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친구들과 맥도날드에서 감자튀김을 합치느니 따로 먹느니 하는 이야기만 해도 즐거웠다.


커가면서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사라졌다. 수 백장에 달했던 카드들은 어디로 갔는지 이젠 알 수도 없고, 비슷하게 인형 놀이를 하려 해 봤자 유치하다는 기분만 들었다. 게임은 공략을 보고 공부하듯 파고들었다. 고전 게임은 아예 치트를 써버렸다. 여전히 재미있었지만 예전과는 느낌이 달랐다. 책은 읽다 보면 집중력이 금세 바닥이 났다. 정확히는 나보다 잘 쓴 글을 보는 것이 조금 힘겨워졌다. 글을 쓴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었다. 친구들과 떠들고 노는 것도 어느 순간 술 없이 뭘 해야 하나, 생각하는 순간이 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짜릿함이 사라지는 기분은 조금 섭섭하고 먹먹하다.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조금 재미가 없다. 하지만, 이전보다 재미있어진 것은 있다. 아마 통장 속에 든든하게 쌓이는 돈 덕분일 것이다.


식당에 가면 똑같은 음식만 먹는 친구들이 있다. 실패 없는 맛을 즐기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나는 새로운 메뉴를 도전하는 것을 즐긴다.(물론, 다 먹어본 뒤에는 나도 한 메뉴만 죽어라 판다.) 재미없는 시간 가운데 유일하게 조금 즐길 수 있는 거리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위대한 유산>에서 미트 파이를 발견했을 때, '이거다!' 싶은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단단하고 둥근 파이의 겉면은 딱 알맞게 바삭하고, 노릇노릇하게 잘 익었다. 베어 물면 속을 꽉 채운 돼지고기가 속을 든든하게 한다. 묘사만 봐도 완벽하기 그지없는 음식이다. 돈가스 샌드위치도 맛있고, 햄 샌드위치도 맛있는데, 아예 속을 고기로 채워 넣은 미트 파이는 두말할 것 없지 않겠나.


문제는, 미트 파이가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판매되는 음식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근방에서 찾기가 어려워도 너무 어려웠다. 심지어 편스토랑이라는 방송에 나와 편의점 PB상품이 되었다고 하는데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PB상품이 자취를 감출 때까지도, 나는 편의점에서 미트 파이를 만나본 적이 없다.


그리고 오랜만에 <위대한 유산>을 다시 읽게 되었을 때, 나는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미트 파이 맛집을 다시 검색하게 됐다. 제발 있어라, 제발 있어라, 라는 말을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면서.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맛집의 포장지에 싸여있는 멋진 미트 파이 가게가.

혼자 갈까, 가는 김에 언니에게도 사줄까. 싶어 물어봤더니 돌아오는 건 "나도 갈래." 하는 흔쾌한 한 마디였다. 우리는 가게에서 파이 포장을 예약했고, 당일에 열심히 가게를 향해 걸어갔다.


꽤 늦은 오후였고, 비가 오다 그친 날이었다. 흐린 하늘이 못내 불안했지만 20여분을 걸어 가게에 도착했다. 한 상자씩 받아 든 뒤에는 이제 점심을 위한 식당을 찾을 차례였다.


"배고픈데 하나씩 먹으면서 걸어가자."

물론, 그 마저도 허기에 못 이겨 파이를 하나 꺼내 먹기로 계획을 변경했지만.

가공할 미트 파이와의 첫 만남은 아주 놀랍지는 않았다. 맛은 있었지만, 이미 식은 상태였고, 파이 내부에 고인 소스가 손을 적시고 흘러 정신없이 먹은 뒤 손을 닦을 물티슈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도 3시에 브레이크 타임이네."

"괜찮다. 여기 뒷골목에도 식당 많다."

"여기도 브레이크 타임이라는데."

"아니, 이 동네는 3시에는 밥을 안 먹나?"

밥을 먹으러 가는 여정도 그리 편안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약 30~40분여를 식당을 찾아 헤매고 또 헤매야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에 나오는 건 어이가 없어 터진 헛웃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밥을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겨 각자 노트북으로 해야 할 일을 하고 헤어졌다.


진짜 미트 파이를 먹은 건 그날 저녁이었다. 아무래도 파이의 맛이 감동적으로 느껴지지 않은 건, 파이가 식어서가 아닐까.

[데워 먹으니까 맛있다는데?]

언니의 메시지도 한몫을 했다. 에어 프라이어에 구워 꺼내자 형부가 파이 두 개를 순식간에 해치웠다는 말. 그 말이 내 마음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데워 먹은 진짜 파이와의 첫 만남.

한 입을 콰삭, 베어 물면 페이스트리로 겹겹이 싸인 부스러기가 후드득 떨어진다. 내부에 고인 소스와 파이 부스러기 때문에 접시가 꼭 필요하지만,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페이스트리의 바삭한 느낌, 잘 구워졌다는 것을 과시하는 듯한 낙엽 밟는 소리, 향긋하게 혀끝을 맴도는 계피 향기(로 추정되는 향이 난다. 나는 맛을 잘 감별하는 인간은 못 된다).


페이스트리를 씹고 나면 그 뒤에 있는 둥그런 고깃덩어리가 나를 반기고, 묵직하게 씹히는 고기의 질감이 혀끝과 뱃속까지 만족시켜주는 느낌. 달콤하면서도 짭짤하고, 고기 특유의 맛과 향이 혀를 타고 콧김으로 빠져나가는. 미트 파이는 따뜻할 때 먹어야 진가를 발휘하는 음식이었다.


나는 이제 달콤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단 것 가운데도 내 입을 즐겁게 하는 것들이 간혹 있지만, 예전처럼 그 맛에 전율하고 감동하지는 않는다. 어렸을 때는 단 것이 좋아서 산처럼 많은 슈를 쌓아두고 먹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빵집을 차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짜릿한 느낌은 사라진다. 신선함, 새로움을 주는 것들은 사라지고 추억은 퇴색된다. 예전에 재미있었던 것이 더 이상 그만한 재미를 주지 못하는 것처럼. 어른이 되어갈수록 하루하루가 정형화되어가고, 쳇바퀴 돌듯 하는 삶은 가끔 나를 지루하게, 지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어 가는 것들이 서운하긴 해도, 여전히 내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살다 보면 반드시 새로운 재미를 만나게 된다.


입맛이 바뀌어 더 이상 단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고 해도, 짜고 매운 것들을 잘 먹게 되어서 좋다. 내가 모르는 지평을 알게 되어가는 것이 좋다. 이전에는 그렇게 놀았지, 곱씹을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 것도 좋다. 좋았던 것들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의연하게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아내고 탐구하는 것.


어른이 되어 간다는 건, 그런 건가 보다.




한 번쯤은 부유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미치지 않고서야 빈곤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물질이 없음에도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많고, 나 또한 현재에 제법 순응하며 사는 편이지만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한다. 갑자기 큰돈이 생기면 어디에 쓰는 것이 좋을까, 그런 상상을.


<위대한 유산>의 주인공 핍은 상상에서만 존재하는, 갑작스러울 만큼 큰돈을 상속받은 행운의 주인공이다. 뜻밖의 행운에 핍은 감사하지만, 이전부터 동경해온 신사로서의 삶에 너무 심취해 그동안의 자신을 있게 해 준 소중한 것들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따스하게 맞아주던 매형 조, 현명한 조언을 아끼지 않던 친구 비디, 이들은 상속자인 핍의 눈에 더 이상 훌륭한 사람들이 아니다. 촌스럽고, 함께 있는 것이 창피하며, 이들의 말은 아무것도 모르는 촌뜨기의 변명처럼 들리게 된다.


허영으로 가득 찬 삶은 영원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거대한 재산을 상속해준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끝내 그 돈을 잃게 되기까지, 핍의 인생에는 수많은 변곡점이 그려진다.


그리고 핍은 마지막의 마지막에 와서야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부끄러운 짓이었는지 깨닫고 후회한다. 왜 사람은 소중한 것을 잃고 난 뒤에야 그게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될까.


꼭 책 속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갑작스럽게 큰 인기를 얻게 되며 거만해지는 사람들, 많은 돈을 가지게 되며 예전에 부리지 않던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 과연 나는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가끔 우스개 소리로, 내가 글을 쓰고 큰 부를 축적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 성격 때문이라 한 적이 있다. 내 성격 상 분명 크게 인기를 얻고 나면 거만해질 거라고. 그걸 기가 막히게 알고 하늘에서 그런 기회를 내려주지 않는 거라고.


물론, 큰 성공을 이루지 못한 것은 내 노력에 대한 결과치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맞을지도 모른다. 내가 핍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있다. 핍의 인생의 길을 그려낸 수많은 변곡점들처럼. 그것은 핍이 선택한 결과고, 어떤 선택은 다시 되돌리지 못할 때가 있다.


내게도 그런 것들이 있었다. 한 순간의 잘못으로 사람을 잃어본 적이 있고, 잘못된 판단으로 큰돈을 잃어본 적도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말할걸, 그때가 마지막이 될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좋은 말을 해줄걸. 후회한 적이 참 많이 있다.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다. 무수히 많은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그 결괏값이 좋지 않을 때, '그때 그렇게 할 걸.'이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피어오르니까.


나는 장르 소설을 쓰는 사람이고, 선택지를 고르는 게임의 시나리오를 참 많이도 써봤다. 지금도 그런 시나리오를 쓰며 밥벌이를 하고 있다. 그런 것을 만들면서도 나는 내 삶 앞에 주어진 선택지 가운데 무엇이 정답이고 무엇이 최선인지 모른다. 고민해서 골라낸 답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될 때가, 아직도 많이 있다.


하지만 몇 가지는 확실하게 안다. 잘못된 선택으로 문제가 생기면 상대방에게 진솔하게 사과하면 된다는 것. 최선이 아닌 길을 갔을 때도 그 내부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것. 적어도 내가 고른 것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언제나 정공법이 가장 어렵다. 어른이 될수록 묵은 자존심이 생겨 잘못을 인정하는 게 어려워지니까. 하지만, 피하고 싶은 상황을 마주 보고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제대로 된 사람이 되는 첫걸음이 아닐까. 핍이 마지막에 가서야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사과를 건넸던 것처럼. 그때서야 비로소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나는 여전히 선택하며 산다. 최선과 최악, 최선과 차선, 그리고 최악과 차악 가운데 서서 살고 있다. 노력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나는 산다.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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