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기행-12

더블린-어수선한 도착

by 래리

더블린 도착.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우중충한 날씨는 네덜란드 같았다. 게다가 잿빛 하늘 사이로 내비치는 햇살의 변덕스러움 마저 더블린은 네덜란드와 비슷했다. 버스를 타고 시티 홀 쪽으로 가던 중 루마니아에서 온 에바라는 여성과 대화를 나눴다. 말은 그쪽에서 먼저 걸었다. 자신이 동양인을 좋아하고, 한국 드라마도 많이 봤다는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는 시크릿 가든. 어느 정도로 동양인을 좋아하냐면, 지금 사귀는 남자친구가 필리핀 사람이라더라. 동양인의 쫙 째진 눈이 마음에 든다는데, 호감을 표하며 그런 말을 하니 딱히 비하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에바와의 대화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그녀가 스티브 잡스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마음속으로, 삼성 제품을 써서 모르는 건가? 라고 쿨하게 넘기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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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창문 넘어 거의 모든 가로등 마다 붙어있는 선거 포스터들. 아마 선거기간인가보다. 우리나라도 2달뒤에 총선이 있는데.

이제 버스에서 내려 방을 구할 차례다. 마지막으로 요청한 에어비엔비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일단 하루 묵을 곳부터 찾아야 하기에 우리는 호스텔이 많은 쪽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상황. 우리의 앞길을 경찰이 떡하니 막고 있었다. 시민들은 흥분한 듯 보였고, 경찰의 태도는 완강했다. 몇 분의 대치 뒤 시민들은 “이 길은 누구를 위한 도로?”라는 선창과 “우리의 도로” 라는 후창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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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위가 일어났다는 점은 확실한데, 무슨 이유로 일어났는지 궁금해 사람들에게 물었다. 들어보니, pegida 운동이 도로에서 일어났는데,경찰이 출동해 이를 진압하고, 시민들이 경찰들의 태도에 다시 한번 항의를 하는 상황이었다.(Pegida 운동이란 독일에서 시작된, 유럽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극우성향의 민족주의 운동으로서, 최근 난민문제로 더 불이 붙은 듯하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keep safe”. 마지막으로 저 말을 들었을 땐 정말 오싹했다. 우중충한 더블린 날씨만큼이나 유색인종으로서 내 위치가 흐릿했기 때문이다.


바짝 긴장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려 하는 데, 이건 또 뭐야. 사람들이 단체로 무단횡단을 한다. 분명 보행자 신호는 빨간색인데 아무렇지 않은 듯 길을 건넌다. 더 웃긴 건 무단횡단하는 시민들 앞에 선 경찰이 오히려 무단횡단을 재촉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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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 바로 앞 바닥에는 차가 오는 방향에 따라, ‘Look right나 Look reft’가 박혀있다. 단순히 차를 조심하라는 건지, 무단횡단 하기 전에 살피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후자의 이유로 저 문구가 존재하리라 확신했다. 교회와 수도원이 많아 종교적 색채가 짙은, 경건할 것만 같았던 나의 상상 속 아일랜드는 이렇게 도착하자마자 부서져버렸다.


어찌어찌 호스텔을 찾아 들어갔다. 생각보다 요금이 비싸다. 조식 없이 25유로. 왠지 배드버그가 미쳐 날뛰고 있을 것 같은 이 곳이 왜 이렇게 비싼지 물어보니. 지금이 아일랜드 축제기간이란다. 럭비 축제기간. 원래는 12유로면 잘 수 있다더라. 이 곳에서 이탈리아 사람 지지와 루아나를 만났다. 아마 유럽에 온 이후 처음 만나는 이태리인이다. 내가 AC밀란팬이라 하자 그는 나에게 엄청난 호감을 표시하며, 더블린 생활의 조언을 해줬다.

일단 이 곳에선 누가 핸드폰을 빌려 달라거나, 시간을 알려달라고 물으면 무조건 “나 너네 나라 말 할 줄 몰라”라고 얘기하라는 것이다. 도난이 생각보다 너무 빈번해 항상 자기 물건에 대해 신경을 쏟으라고 했다. 네덜란드에서 너무 긴장 풀린 생활을 한 탓이었을까. 틸버그가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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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건물들은 예뻤다. 도심 곳곳에 수 백 년은 된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의 교회들. 심지어 은행, H&M의 건물마저 나를 압도했다. 짧은 다리에서 바라 본 야경도 맘에 들었다. 더블린은 아일랜드의 수도인데 고층 건물은 딱히 눈에 보이지 않았다.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도로가 너무 좁아서 이게 한 나라의 수도가 맞나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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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처음으로 가 본 수제 햄버거집. 나는 한국에서도 수제 햄버거 집을 가 본적이 없다. 먹어본 햄버거 중 가장 퀄리티가 높다고 생각하는 건 버거킹 와퍼. 그래서 맛을 비교해보니 놀라웠다. 이 곳 수제버거는 무려 버거만 10유로인데, 맛은 조금 더 신선한 야채의 와퍼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햄버거는 패스트 푸드점에서만 먹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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