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피곤함 속에서도
더블린에 처음 도착했을 때보다 더 끔찍한 밤을 보냈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파티를 하는데 노래가 정말 구리다. 구려도 너무 구리다. EDM인 것 같긴 한데, 디스코도 아니고, 카니발에서 들었던 네덜란드 전통 음악처럼 경쾌하지도 않았다. 유럽에 50세 이상 캬바레가 있다면, 그런 곳에서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50대에 대한 모독이므로 취소. 그냥 구리다. 게다가 아마 이 구린 노래에 신나게 허리를 흔들다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새벽 내내 들락날락 거렸다.
이렇게 똥 같은 아침으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피곤하진 않았다. 다행이다. 일단 우리는 밖으로 나가 여행을 시작했다. 오늘 묵을 숙소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 곳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모든 호스텔에 자리가 없으면 다시 그 곳에서 자기로 결정했다. 토요일 밤에 불쑥 찾아가도 숙박이 가능했으니, 일요일에 방이 꽉 찰리는 절대 없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간 곳은 트리니티 칼리지. 3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고, 아일랜드 출신 유명인들을 대거 배출했다. 일단 보행자 입구로 들어서면,학교 및 동아리 소식들을 볼 수 있는 게시판들이 있다. 하루를 신문으로 시작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곳을 지나니 웅장한 고대 양식의 건물이 좌우대칭을 이루며 버티고 있었다. 이게 학교 건물인가. 멋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위치한 이 문. 구름은 저렇게 빨리 움직이는데 이 곳 건물들은 수 백 년 동안 가만히 있었다니.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보니 Samuel beckett teatre가 등장했다.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로서 이 학교 출신이다. 군대에서 한창 세계 고전 문학을 읽을 시절, 저 책을 읽어야지 마음만 먹고 못 읽었는데, 지금에야 아쉬웠다. 신기한 건 건물이 나무로 만들어졌다.
오래된 학교 만큼이나 나무들도 나이를 많이 먹은 듯 보였다. 또 신기했던 건 기숙사가 다양하게 퍼져 있다는 것이다. 보통 한 곳에 몰아서 짓지 않나.
해리포터를 촬영했다는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에 들어가려 했는데, 아니 이런. 일요일은 점심 12시부터 개장한댄다. 당시 시간은 오전 10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국립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그런데 또, 이 곳은 일요일에 오후 2시부터 개장한댄다. 근처 국립 미술관은 12시부터 개장. 그래서 이 번엔 조지 아케이드를 갔다. 당시 시각은 11시. 이 곳 마저도 12시에 개장. 시간이 애매해 점심을 일찍 먹고 여행을 계속 하기로 했다. Pharmacy에서 이어플러그를 판다는데 이 곳도 12시부터 영업 시작. 아시안 식당을 들어갔는데 그 곳도 12시부터 장사 시작. 그래. 일요일 오전엔 다들 쉬어야지.
점심을 먹고 일단 국립 도서관을 갔다. 도서관에 가니 1916년 혁명 때 세상을 떠난 7인을 추모하는 전시가 로비에 열렸다. 아일랜드 1916년 혁명은 무장봉기로, 부활절에 패트릭 피어스의 아일랜드 의용군과 사회주의자 제임스 코놀리가 이끈 아일랜드 시민군이 연합해 일어났다. 하지만 시위는 6일 간의 교전 끝에 영국군 2만명에게 진압되었다. 아마 우리나라로 치면 3.1운동과 비슷한 것 같다. 3.1운동이 무장봉기로 시작되진 않았지만. 그러고보니 지금은 2016년. 딱 100주년이다. 작년도 우리나라 광복 70주년이었는데.
입구를 지나 계단을 통해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를 추모하는 장소로 내려 갔다. 지하로 이어진 그 곳은 어둑어둑해 무덤 같은 느낌도 났다. 사실 아일랜드계 유명 작가들이 많음에도 내가 그들 작품들 중 단 하나도 접하지 않았단 사실에 부끄러웠다. 제임스 조이스, 사무엘 베케트 등 작가와 작품 명만 아는, 안다고 할 수 없는 수준.
아무튼 1923년 노벨 문학상도 수상한 예이츠에 대한 정보를 쭉 읽다 보니, 그는 켈트 신화에서 착안해 서정적, 환상적 느낌의 시를 썼단다. 설명엔 ‘celtic’ 이라고 돼 있다. 스코틀랜드 축구팀 셀틱을 떠올렸건만, ‘켈트족의’란 뜻이었다니! 게다가 그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에도 열성적이었다. 수 백 년간 영국의 간섭을 받아왔지만, 독립에 대한 열망이 민족적 수준으로 강하게 남아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물론 이에 파생된 문제로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로 나눠졌지만.
그래프턴 스트릿에는 몰리 말론이란 여인의 동상이 있다, 처음엔 왜 저렇게 동상의 가슴 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을까. 의아해 했었는데.영국의 통치시절, 낮에는 홍합을 팔고, 밤에는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다 병으로 죽은 비극적인 여인의 이야기를 동상으로 형상화한 것이었다.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민요도 있다. 이 동상엔 아일랜드 인들의 한이 서려있다. 한의 민족하면 한국을 빼놓을 수 없지 않은가. 민족 독립운동과 한의 정서로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게다가 19세기 대기근 때 미국으로 많은 사람들이 건너가서인지, 구체적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일랜드와 미국은 상당히 우호적이다. 더블린 시내 곳곳에는 아일랜드 굿즈만을 파는 초록색 상점들이 많은데, 그 곳에서 아일랜드 국기와 성조기가 크로스하고 있는 브로찌도 봤다. 아일랜드는 정말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은 나라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입성한 국립 archeology & history 박물관. 석기 시대부터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노트북에 갖은 짐을 바리바리 싼 가방을 계속 메고 다녀서 인지, 어깨가 아파옴과 동시에 너무 졸렸다. 분명 어제 그 구린 노래와 파티를 즐겼던 사람들 탓에 잠을 제대로 못 잔 영향도 클 것이다. 그리고 사실 석기시대 유물들부터 관람하는 건 나에게 조금 지루했다.
군대에서 행군을 해도 50분 걸으면 10분씩 쉬는데, 우리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걷기만 했다. 심지어 세인트 스테판 그린공원도 걸었다. 박물관에선 집중이 너무 안돼 영어로 된 설명을 읽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정신력으로 버텨 관람을 계속했다. 우리 나라 삼국시대, 고려시대에 불교 관련 불상, 석탑들이 있다면, 아일랜드엔 10세기 이전부터 가톨릭 관련 유물들이 있었다. St 패트릭 이란 분이 5 세기 경 아일랜드에 가톨릭을 전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일랜드 최대 명절이 세인트 패트릭의 날이고, 지금도 국민의 80% 이상이 가톨릭을 믿는다.
세인트 스테판 그린 공원을 걷다 만난 제임스 조이스와 타고르. 인도 출신 타고르의 흉상이 왜 아일랜드 땅에 세워졌을까. 궁금했다. 타고르가 영어로 아일랜드 문학을 썼다는 점과 아일랜드의 독립을 지지했다는 사실. 이 두가지 얕은 정보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봤다.
밖으로 나와 우리는 조지 아케이드로 향했다. 나는 그 곳에서 마그넷을 샀고, 학우는 Walton이란 악기 가게에 갔다. 영화 once에 나왔다던,아주 유명한 악기 가게라더다.
오늘의 마지막 종착지는 기네스 스토어. 5시까지 입장 마감이라 택시를 탔는데, 아니 무슨 탄지 30초도 안돼서 요금이 오르기 시작한다. 요금이 오르는 속도도 장난이 없다. 게다가 사람 수 당 extra fee까지. 더블린에서 택시는 앞으로 절대 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기네스 스토어는 꽤 컸다. 그리고 상당히 과시적이다. 란 느낌을 받았다. 사진은 시대별 기네스의 광고들. 그런데 1960년대부터 남성의 강함과 기네스를 연결하는 광고들이 눈에 띈다. 저 시대부터 맥주광고까지도 남성과 '남자다움'을 이용했나보다. 썩 유쾌한 광고는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료티켓으로 기네스 한 잔. 사실 한국에서 기네스를 마셨을 땐, 이 씁쓸하고 맹맹한 맛의 맥주가 뭐가 맛있다는거지? 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 곳 기네스는 달랐다. 목넘김이 너무나 부드럽고 깊은 맛까지 있었다. 정말 맛있었다. 기네스가 이렇게 맛있는 맥주였던가? 일하시는 분이 맥주를 너무 잘 따라서 그런 걸까? 스코틀랜드 출신 룸메의, "기네스는 바다를 건너는 순간 맛이 변해버린다"는 자부심 가득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그 얘기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이 맞는 것 같다.
더블린 명소들은 거의 붙어있어 걸어서 가기 편하다. 그리고 하루에 꽤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어깨가 너무 아프다. 내일은luggage room이 있는 호스텔에 꼭 가방을 미리 맡기고 여행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