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적응 중
더블린에 갈 때 청춘드라마 한 편을 찍어서인지, 허겁지겁 아침을 쑤셔넣고 공항으로 향했다. 우리의 런던행 비행기는 오전 11시 10분 출발. 공항도착시각은 9시로 Gate 알림 시간까지 무려 1시간 20분의 여유가 있었다. 그래도 여유 부릴수야 있겠는가. 바로 탑승 수속을 밟고, 면세점을 구경하다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탑승 후에는 30페이지 남은 <아방가르드>를 마저 읽었다. 역시나, 과거 예술의 권위에 대항한 그들의 미술이 예술로서 인정받아, 미술관에 전시되었을 때, 그들은 철창에 갇힌 호랑이 신세가 됐다. 게다가 자본주의의 상업광고는 신상품에 아방가르드라는 그럴듯한 옷을 입혀 판매한다. 소비주의의 새로움에 대한 열망과 아방가르드의 새로움 사이 묘한 공모관계는 대중을 유혹한다. 저자는 아방가르드와 대중의 괴리를 지적했는데,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대중은 어떤 행동을 취했어야 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아방가르드에 대한 궁금점이 생겼다. '저항정신'이란건 저항할 대상이 있어야만 존재가 가능하다. 그럼 만일 기존 예술의 권위와 자본주의가 사라진다면, 아방가르드는 어떤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가.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5단계처럼, 모든 계급이 철폐되고 갈등이 사라지듯 그들도 사라질까? 그리고 예술 권위의 철폐가 아방가르드의 궁극적 목표일까? 아니면 단지 기존 권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정도로 만족할까?
이제는 '현대미술관'이란 이름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오늘부터 여행할 런던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지금도 아방가르드의 정신을 계승한 자들이 노력하고 있다고 하나, 그 노력의 궁극적 목적을 알고 싶다. 어쩃든 잡다한 생각을 하다가 런던 도착.
바로 빅토리아 역으로 향했다. 두시쯤 도착. 주워들은대로 테이크아웃 가능한 일식 음식점들이 꽤 보이더라. 간단하게 끼니를 떼우고 바로 웨스트민스터 사원 쪽으로 갔다. 빅토리아 역에서 걸어갈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어깨를 짓누르는 친구들을 제외한다면.
웨스트민스터 동네는 엄청났다. Cathedral, Abbey. 빅 벤, 빅 벤이란 이름은 그 건물을 재건축한 설계자 벤자민의 풍채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건물들을 보는 순간 느껴진다. 대영제국의 위엄. 과시. 게다가 저 압도적으로 큰 건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너무도 세세한 장식들이 눈에 들어와 감탄스럽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Cathedral 내부. 사이드 마다 Chapel이 마련돼 있고, Way of Mercy, 자비의 길에 대한 말들이 있다. 그런데 기독교는 '자비'라는 평화로운 이름으로 수많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그리고 대영제국의 위엄을 과시하듯 st Patric, st Andrews 등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출신마저 이 성당이 품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쪽 건물들은 과거의 건축물이지만, 현대 건축물보다 더 큰 크기에 놀랄 수 밖에 없다. 피해자의 나라 아일랜드에서 가해자의 나라 영국으로 넘어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다만 이 곳도 아일랜드 보도처럼 Look left, Look right가 바닥에 깔려 있고,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상당히 잘한다. 또 차량도 좌측통행이라 아직 더블린인지 런던인지 긴가민가하다.
웨스터민스터 사원에서부터 웨스터민스터 브릿지를 거쳐 런던한인민박집까지 걸어왔다. 런던 도시를 걷는다니.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도리스 레싱의 <런던 스케치>를 읽어 볼걸. 제목만 듣고 스쳐지나갔던 책들이 떠올라 너무 안타깝다. 바르셀로나를 여행하기 전에 <까딸루냐 찬가>를 꼭 읽으리라 다짐했었는데 지킬 수 있을 런지.
한인민박집을 선택한 이유는 조식을 한식으로 제공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도 한식 요리를 잘 해먹긴했지만, 나물을 먹은 지는 20일정도가 지났다. 또 내가 워낙 쌀을 좋아하기도 해서. 한인민박으로 정했다.
저녁을 먹고 소화시킬겸 발 브릿지를 건너다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돌아왔다. 런던에는 곳곳마다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추위에 반팔, 반바지 차림이라니. 음 아무리 몸에 열이 많다해도 좀 신기하다. 간혹 운동을 하지 않는데도 반팔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은 추워서 민박집에 얼른 돌아가지만, 내일도 반팔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만난다면 반드시 물어볼 것이다. 너 춥지 않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