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다리야 미안해
오늘 아침 메뉴는 돈까스. 음 아침부터 돈까스라니. 그래도 냠냠 맛있게 먹고 배를 든든히 채웠다. 오늘 여행도 걷고 걷고 또 걸을 게 분명하니까!
첫 번째로 향한 곳은 트라팔가 광장. 버킹엄 궁전 근위병 교대식을 보러 가는 길에 먼저 들렸다. 트라팔가 광장은 트라팔가 해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다양한 장군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하늘 높이 치솟은 저 탑 꼭대기에는 넬슨 제독의 동상이 있다. 그리고 저 탑에는 'England expects every man will do his duty'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역시나 영국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광장답게 애국심을 요구한다. 국민이 의무를 다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국가가 국가로서 제대로 기능하는 것 또한 아주 중요한데 말이다. 트라팔가 광장은 내셔널갤러리와 함께 있지만, 일단은 버킹엄 궁전으로!
버킹엄 궁전의 모습. 근위병 교대식에 늦지는 않았다. 사실 교대식을 그렇게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궁전이 어떻게 생겼나는 궁금했다. 궁전에 도착하니 저런 석조로 된 문들이 나를 맞이했다. 각각 S.Africa, W,Africa, Canada, Australia 등의 국명이 새겨져 있는데,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경찰들에게 물어봤지만, 그들도 알지 못했다. 또 근위병 교대식 때는 차량이 통제되는데, 이틀에 한 번씩 교대식을 하니 이틀에 한 번씩 차량이 통제된다는 뜻이다. 분명 약속이 급박한 사람도 있을텐데, 그들은 이 교대식을 어떻게 생각할까. 대영제국에 대한 강한 자긍심으로 운전대를 잡고 경찰의 통제가 풀리기 만을 기다릴까. 아니면 보통 사람처럼 짜증을 낼까. 일반화할 순 없는 문제지만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버킹엄 궁전 바로 옆에 있는 세인트 제임스 파크 공원. 세인트 제임스하니, 마린룩의 그 가로 스트라이프의 세인트 제임스 티셔츠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각종 스파 및 도메스틱 브랜드에서 비슷한 라인을 끊임없이 뽑아내도, 세인트 제임스의 오리지널리티를 능가할 수 없다는 몇몇 분들의 자부심 가득한 말들과 함께. 이 공원도 오리지널리티가 있다.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왕립공원이고, 자연 조류 보호 구역으로 지정돼 수많은 종류의 조류들이 있다. 그런데 개체수가 가장 많은 종은 비둘기다.
공원을 걷다 벤치에 앉아 학우와 노래를 들었다. 지금 분위기에 가장 맞는 곡을 추천해달라기에 몇 가지 곡들을 추천해줬는데, 자꾸 자우림곡들로만 손이 가더라. 학우가 작곡한 기타 연주곡들도 들었는데 첫 곡은 따뜻한 봄보다는 약간 쌀쌀한 가을에 어울리는 곡. 두번째 곡은 비오는 밤에 어울리는 곡이었다.
그리고 어제 들었던 Fabrizio Paterlini - Veloma의 피아노 연주곡에 대해 얘기했다. 도입부는 절망에 사로잡혀 몸에 힘이 쭉 빠진 채, 멍하니 앉아 있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연주가 격해지면 감정도 격해진다. 연주는 갈피를 잃은 자의 마음을 표현한 듯하다. 이미지가 저절로 머릿 속에 그려진다. 이 곡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도입부와 후반부에 트릴. 트릴이 없다면 더 감정 전달이 잘 됐을텐데, 사족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세인트 제임스 파크와 가까운 웰링턴 아치에 걸어갔다. 워털루 전투에서 승리한 웰링턴을 기리는 곳. 아일랜드에도 있고, 영국에도 있고. 워털루 전투가 얼마나 중요했나를 느낌과 동시에 영국군에게 나폴레옹이라는 적이 얼마나 큰 산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또 열심히 걸어간 곳은 피카디리. 서울 롯데시네마 종로점이 피카디리점인데. 딱 생각났다. 예술의 거리답게 버스킹을 하는 사람도 있다. 두 번째 사진은 피카디리의 옥외광고판으로, 삼성과 현대가 엄청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옥외광고는 엘지가 영향력을 행사중이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돌고래를 죽이지 말라고 시위 중인 할머니들. 한국에 있는 일본 대사관 앞에도 수요집회가 25년 이상 열리고 있다. 횟 수도 천 회를 훌쩍 넘었고, 요상한 합의 뭐시기 때문에 최근 시위가 더 격해졌으리라. 할머니들이 나를 보고 계속 손짓했다. 아마 일본인인줄 알았나 보다. 내가 일본인 같이 생기긴 했다.
걷고 또 걸어 이번에는 코벤트 가든. 올림픽 공원 역 파스타 집 코벤트 가든이 생각난다. 재수 때 알게되어 1년에 한 번씩은 갔던 것 같은데. 잡소리 집어치고 코벤트 가든은 정말 매력적인 곳이다. 세인트 폴 교회와 다양한 상점들이 있고, 길거리 공연도 많다. 저 현악 공연단은 정말 발랄하게 공연을 해서 나도 1파운드 가량의 동전을 건넸다. 저 공연만 20분 정도 본 것 같다.
내셔널 갤러리와 그 앞의 거리 예술가들. 제도권의 권위를 자랑하는 갤러리 앞에 자유로운 예술가들의 모습으 조화로웠다. 기 보다는 거리 예술가들을 더 돋보이게 했다. 마지막 사진의 바닥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분은 이탈리아 미술가로, 도로가 자신의 도화지라고 했다. 그리고 저 공중부양은 계속 봐도 신기하다. 트릭의 정체를 모르겠다...슬픈 건 내셔널 갤러리에 들어가서 딱 10분 있다 나왔다..시간이 없어서..
내셔널 갤러리를 포기하고 선택한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는 전쟁 박물관! 대영박물관, 내서녈 갤러리의 압도적 외관을 보다 전쟁박물관의 소박한(?) 외관을 보니, 저건 오늘 다 볼 수 있겠구나. 생각했었다. 0층 부터 5층까지있고, 0층은 1차 세계대전, 1~3층은 2차 세계대전과 전쟁예술품들, 4층은 홀로코스트 5층은 특별전시관이었는데, 6시 폐관으로 5층은 보지 못했다.
일단 박물관이 테마별로 구성돼있어 좋았다. 한국의 용산 전쟁기념관은 크기가 너무 커서 그런지, 거의 역사박물관 수준이다. 청동기 시대 유물. 토기들도 있고, 그냥 국사 교과서를 읽는 느낌. 그런데 이 곳은 테마를 나누어 깊이있게 설명하고, 컨텐츠도 정말 다양하다. 1차 세계대전을 보는데만 각종 무기, 제복들 파트는 빠르게 지나갔음에도 50분은 걸린 것 같다.
용산 전쟁 기념 박물관이 전쟁 승리, 애국심 고취에만 초첨을 맞췄다면, 영국 전쟁 박물관은 그래도 전쟁의 참담함, 고통을 꽤 많이 보여준다. 하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전쟁은 전 인류에게 재앙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보수적 합리화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차 세계대전 중 반전운동가들에 대해, '국민적으로 따돌림을 당했다'고 서술했다. 1916년 아일랜드 무장봉기에 대한 평가도 이상하다. 당시 다수의 아일랜드 인들이 영국을 위해 참전했는데, 소수의 혁명군 세력은 독일로부터 무기를 지원받아, 독립의 희망음 품고 봉기를 일으켰으나, 진압당했다.고 설명한다. 당시의 봉기가 전반적인 아일랜드 민심을 대변하는 행동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왜 현재 아일랜드에서 1916년 봉기를 기리는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인가. 게다가 1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 세력의 확산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는 사건 정도로 치부한다. 게다가 전쟁의 긴박함을 느끼게하는 장치들과 동시에 입대를 선동하는 문구들이 박물관 곳곳에 즐비해있다. 문구들은 여전히 무언으로 애국심을 강요한다. 즉 이 박물관은 대영 제국의 보수민족주의적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 하다.
신기했던 건 영국을 위해 몸바쳤던 스파이들에 대한 추도 혹은 기념. 일단 스파이가 추도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에 의문이 들었지만, 애국심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타국민을 학살한 살인자가 자국민의 영웅이 되니,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한국의 스파이들이 생각난다. 누군가에게는 육체적 사형이 내려지고, 또 다른 이에게는 사회적 사형이 내려졌던 그들.
아무튼 박물관의 구성과 질은 정말 높다고 생각한다.
저녁으로 먹은 피쉬앤칩스와 립. 피쉬앤칩스의 악명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영국이기에, 런던이기에, 기분 내기 위해 한 번은 시도하려 했던 메뉴다. 맛은 so so. 뒤에 있는 저 완두콩을 익혀 으깬 음식은 처음이었는데 내 입맛에 잘 맞았다. 립은 평범했고, 치즈 마카로니가 맛있었다. 그리고 기네스도 곁들였는데, 런던 기네스도 맛있다. 정말 딱 섬나라까지만 맛있나보다.
오늘 하루 너무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정말 힘들지만, 내일은 좀 널널한 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