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기행-21

만찬

by 래리

어제, 학기 시작 3주 만에 교환학생들의 공식 파티를 신나게 보내고 늦잠 좀 자나. 했는데 9시에 깨버렸다. 눈 떳으니 일단 배에 뭘 좀 집어넣어야겠는데, 점심에 룸메들과 각 나라별 요리를 모아 만찬을 즐기기로 했으니, 가장 만만한 바나나로 허기를 달랬다. 멍하니 바나나를 뱃속으로 밀어넣는 순간, 파티 때 밀가루를 과다섭취해서인지, 오랜만에 뱃속에 있는 위장이란 놈들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그래, 이 상태라면 바나나 하나로 족하다.


한 시간 정도 투쟁이 지속됐으나, 화장실 한 번 다녀오니 뱃속이 잠잠해졌다. 네덜란드에 도착한 첫 날, 바보같이 지사제를 먹어 수십시간을 끙끙 앓았던 때가 생각난다. 정말 끔찍했던 순간이었다. 시간은 어느덧 음식 준비시간. 우리는 어제 11시 반쯤부터 점심 준비를 하자고 약속했었다. 다들 파티의 후유증이 강하게 남아있어 아마 오늘의 만찬은 브런치. 하지만 분명 가볍지는 않은 브런치일 게다.


스코틀랜드 룸메가 훈제 연어를 이용한 에피타이져를 만들겠다고 했다. 우리는 김치볶음밥만 할 예정이었으나, 멕시코 룸메가 짜파게티를 먹고 싶다고 해서, 짜파구리도 만들기로 했다. 짜파구리의 황금 비율은 짜파게티 2개 너구리 1개. 꽤 많은 양이기 때문에 김치볶음밥을 3~4인분 정도만 만들기로 했다. 평소에 우리는 너무나 많이 먹기 때문에 양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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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ish 에피타이져. 가장 밑에 과자같은 부분은 Croustades라는 제품을 이용했다. 크루통과 식감이 비슷해 익숙한 맛. 연어 밑에는 치즈를 발랐고, 연어 위 저 푸르스름한 물체는 delli인지 dille인지 허브의 한 종류였다. 옆에 비치된 레몬을 살짝 뿌려먹으면 아주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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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볶음밥과 짜파구리. 김치는 룸메가 직접 담갔다. 어머니께 초간단 레시피를 받아 아시안 마켓에서 최대한 비슷한 재료들을 사서 만들었다. 액젓은 Fish Liquid로 대체하고 한국에서 쓰던 것보다 훨씬 곱게 갈린 고춧가루를 사용했다. 김치 맛은 상당히 좋았다. 겉절이처럼 담갔는데, 볶음밥으로도 훌륭한 식재료였다. 룸메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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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칸 룸메가 만든 디저트. 쌀과 우유를 꽤 오랜시간 끓인 뒤, 시나몬을 뿌려 먹는다. 보통 한국인들에게 저렇게 쌀알이 탱글탱글하게 살아있는 음식은 디저트보다는 메인디쉬나 에피타이져로 간주할 것이다. 우리도 그랬다. 디저트의 맛은 좋았으나, 너무 배불렀다. 음식을 만들 때의 걱정과는 달리, 아침을 제대로 먹지 않아 위장이 만찬을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된 게다. 정말 가까스로 디저트까지 다 먹었는데, 멕시칸 룸메가 또 다른 디저트라고 과자들을 가져왔다. 집중에 집중을 해서 해치웠다.


점심을 정말 성대하게 먹었는데, 저녁도 만찬 약속이 있다. 독일 친구와 타이완 친구를 2주 정도 전에 초대했었는데, 그 날이 오늘 저녁이 돼 버렸다. 지금 이렇게 배가 터질 것 같은데, 저녁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지만, 요리는 최선을 다해 만드리라 다짐했다. 뭘해줄까. 고민하다가 주먹밥과 제육볶음을 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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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춧가루도 없이 고추장, 간장, 설탕 그리고 다진마늘로만 소스를 만들어 요리했는데, 이럴수가 너무 맛있었다. 한국에서 자취할 때도 제육복음은 시도한 적이 없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고기. 통통하게 둘둘 말려있는 고기 4덩어리를 한 팩에 담아 팔길래 2팩을 사왔는데, 속 안의 소세지(?) 혹은 갈아서 어묵처럼 만든 고기(?)를 겉의 얇은 고기가 감싸고 있었다. 순수한 생고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볶는 과정에 덩어리를 해체하고 부침개마냥 펼쳐 볶았다. 사실 맛은 괜찮았으나, 아마도 안쪽의 고기가 이미 짭짤하게 양념이 돼있어 제육볶음이 조금 짰다. 어쨋든 훌륭한 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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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밥은 갈아진 고기를 사서 대파, 간장과 함께 복은 다음, 밥에 소금과 참기름을 넣고 비벼서 만들었다. 학교 도시락으로도 싸가는데 훌륭한 메뉴다. 한국 룸메가 오이를 썰어 고추장과 라임으로 맛을 낸 오이무침도 있다. 멕시칸 룸메가 식사 전 부리나케 사온 와인은 식사 분위기를 한층 더 깊게 만들었다.


사진에는 담지 못했지만, 독일 친구가 조금이라도 매운 음식을 정말 못먹어 나머지 한 팩의 고기는 간장과 설탕으로만 양념을 해서 대접했다. 이 것도 맛이 좋았다. 고기를 한 팩씩 나눠 요리한 건 정말 잘 한 선택이었다.


저녁도 맛있게 먹고,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 꽃을 피웠는데, 독일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룸메 중 두명은 이미 독일을 다녀왔고, 또 한 명은 다음주에 독일을 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독일 친구가 한국의 정치 상황에 물었다. 신나게 설명했다. 해방 이후 간략한 역사와 함께 한국은 전체적으로 극우 성향이 강하고, 거대양당 체제이다. 여기에 정당에 대한 설명도 조금 덧붙이고, 삼성에 대한 얘기도 했다.


그러다 내가 독일의 난민 문제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난민 문제에 대해 정말 자세히 설명해줬다. 그리고 독일에 세금을 내는 사람으로서, 본인의 의견까지 곁들여서. 난민들을 비난하진 않았지만, 상황은 심각하다. 한 해에 100만 명의 난민을 수용하겠다고 한 메르켈에 대한 지지율도 갈수록 떨어지고, 난민 수용시설이 부족해 독일인들의 체육관을 그들의 잠자리로 임시지정했다고 한다. 이에 상당수의 독일 국민들이 불만을 품고 있다.


그녀는 IBM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마 기억에 인턴이다. 그런데 어떻게 교환학생을 왔을까. 물어봤더니 일-학습 병행제 덕분에 왔다더라! 때문에 그녀는 학기가 끝나자마자 직장으로 돌아간다. 수업시간에 배웠던, 한국에서는 아직 자리잡지 못한 제도. 모두가 그런건 아니지만, 학생들은 기술만 배우면 대기업으로 가고 싶어하고, 기업들은 학생들을 노동력 착취로만 이용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일단 우리나라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를 생각해 보자.


또 독일의 좋은 점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었는데(사회 복지 시스템, 기업 내 복지) 독일은 화장품 성분 대한 기준이 엄격하고 높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화장품이 시중에 판매되려면 아주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기준이 낮은 미국의 제품들이 독일에 상륙하려해 불만이란다. 이 부분을 설명할 때 독일 친구에게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의 이미지는 역시 싼 가격, 제품의 낮은 질 그리고 대량 생산에 어울린다. 하긴 미국의 초대기업들은 가격경쟁에 승리해 전세계 식량체제마저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그들은 식량의 유통, 생산 구조까지 지배하고 있다.)


더블린에서 봤던 Pegida 시위에 대해서도 물었다. 극우성향의 민족주의 운동이 맞았다. 의미있는 하루였다. 각기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 그 나라만의 음식을 만들고, 서로의 문화에 대해 얘기하고.


인터뷰 과제를 위해 다음주 화요일에 독일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그녀는 한국의 기업 상황이 궁금하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궁금하냐 물었더니, 노동자들의 근무시간, 복지 등이란다. 그 부분은 잘 설명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주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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