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기행-22

파리-묻고 묻고 또 물어

by 래리

학교에서 시행하는 스페셜위크는 나와 관련이 없기에, 뜻밖의 1주일이나 되는 휴일을 얻게 됐다. 나만의 스페셜위크를 위해 택한 특별한 장소는 파리. 괜찮은 비행기 티겟을 발견하지 못해 버스를 타고 가 보기로 결정했다. Flix bus station은 아인트호벤 센트럴 기차역 근처에 있다. 어제 거주허가증 때문에 잠시 아인트호벤을 갔다 정류장을 확인하러 구글맵을 따라갔는데, 지도에 찍힌 위치에선 그 어떤 정류장의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학우들 말로는 버스시간이 다가오면 초록색 옷 입은 분들이 등장하신다는데. 뭐 그렇겠지, 설마 Flix Bus가 제공하는 공식 지도 정보가 틀리겠어. 라는 안일한 생각을 품고 다시 틸버그로 돌아왔었다.


오늘은 꽤나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열두시반까지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인터뷰 과제때문에 독일 친구와 인터뷰 영상을 찍었다. 그러고는 바로 다른 수업의 팀플까지 했는데, 하루 일과가 끝나니 저녁 여섯시 반쯤이었다. 버스는 아인트호벤에서 저녁 9시 40분에 출발하기에, 저녁도 틸버그 기차역과 가까운 친구네서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틸버그에서 아인트호벤까지는 기차로 30분정도 걸리기 때문에 최소한 8시에는 친구네 집에서 나와야한다.


그런데 갑자기 1주일에 한 번 올까말까 한 문자가 왔다. 네덜란드에 있는 나에게 누가 문자를 보낸단 말인가. Flix Bus였다. 교통체증때문에 1시간 정도 출발이 미뤄진다는,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는 문자. 하지만 어쩌면 다행이다. 파리로 가기 위해서는 벨기에의 Antwerp에서 두 시간 반을 기다린 뒤,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했는데, 교통체증 덕에 한 시간 반만 기다려도 되기 때문이다. 이 밤늦은 시간에 벨기에 기차역에서 혼자 뭘하겠냐마는, 지금 역 안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예정대로 9시에 친구네 집에서 나와, 기차를 타러 갔는데, 9시 20분에 역에 도착했다. 기차시간표를 보니 아인트호벤 행 기차는 9시 21분에 출발. 곧바로 플랫폼 쪽에서 기차오는 소리가 들리길래 허겁지겁 달렸다. 그런데 어느 플랫폼에서 타야하는 지를 확인하지 않아, 눈 앞의 기차가 아인트호벤으로 가는지를 몰랐다. 바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묻고, 그들의 대답을 듣은뒤 얼른 기차로 뛰어들었다. 기차에 타자마자 마주친 분에게 또 물었다. 이 기차가 아인트호벤을 가냐고. 두 번의 대답을 들으니 확신이 생겼다. 이제 30분 정도 앉아가면 된다.


기차에 앉은지 25분이 지났을까. 방송에서 울려대는 더치어에 '아인트호벤'이 분명 들렸다. 그런데 뭔가 불안하다. 어제 왔을 때 창밖에 보인 필립스 스타디움이며 각종 쇼핑몰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싶어 다른 승객에게 물었다. 이번 역이 아인트호벤 역 맞냐고. 그는 아인트호벤이 맞지만, 아인트호벤 센트럴 역은 다음역이라고 알려줬다. 나는 센트럴로 가야한다. 그 곳에서 묻지 않고 내렸으면 큰일 날 뻔 했다. 다행이었다. 그러고 우리는 아인트호벤에 같이 내릴 때까지 더 많은 얘기를 나눴다. 내가 파리를 간다니 같이 기뻐해주셔서 고마웠다.


센트럴에서 내렸는데, 화장실이 급하다. Toilet이 어디있나 두리번거리는데, 지적인 안경을 쓴 여성분이 도와줄 게 있냐고 물었다. 나는 단지 화장실을 찾고 있는 중이라했다. 그 분은 내 목적지가 어디냐고 묻길래 Flix Bus로 파리에 갈 예정이다. 라고 말하니 몇 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늦은 밤 아인트호벤 기차역에 낯선 동양인이 홀로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착한 마음에 감사했다.


지도가 알려주는 정확한 장소로 도착했는데, 어제처럼 도로만 휑하게 뚤려있을 뿐이었다. 이거 어떡하나,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아직 출발시간이 40분이나 남았으니. 그런데 20분이 흘러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느낌이 안 좋다. 마침 한 커플이 걸어오길래 그들에게 물었다. 혹시 Flix Bus Station이 어딘지 아냐고. 지도는 분명 이 곳을 가리키고 있는데 아무 것도 없다고. 나도 모르게 아쉬움이 섞여 나왔다. 그들은 잘은 모르지만 아마 조금 더 앞쪽으로 가보면 있을거라 말했다. 그리고 어딜가냐 묻길래 파리로 간다니 나의 여행을 축하해주더라. 정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들의 말대로 알 수 없는 벽이 없어질 때까지 앞으로 향하니, 초라한 버스정류장 표지판이 눈에 띠었다. 설마 저건가. 앞에 가보니 Flix Bus라고 써 있었다. 맞구나. 그런데 초록색 옷을 입은 사람 대신 동양인 두 명이 있었다. 생김새로 보아 한국인은 아니다. 그들에게 말을 걸어 보니 싱가폴에서 왔다더라. 지금은 각각 독일, 프랑스에서 교환학생 중. 낯선 첫 Flix Bus 이용이었지만, 동질감 느껴지는 동양인을 만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게다가 그들도 파리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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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Antwerp 기차역의 외관은 꽤나 웅장하다. 내부도. 조금 춥다는 점만 빼면 와이파이도 잘 터지기에 만족스럽다. 아, 그런데 1시에 역이 닫혀 자리를 옮겨야한다.


버스 와이파이가 제한됨으로 떠서 포스팅을 마치지 못했다.

지금은 에어비엔비로 예약한 방이다. 동행한 싱가폴 청년들과는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각자의 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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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븐 위에 팬이 버너가 있는게 신기하다. 불이 나오지는 않고 팬이 뜨겁게 달궈진다.


파리 사람들의 악명은 수도 없이 들어왔다. 차갑다. 시니컬하다. 불친절하다. 등등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겠냐마는 저런 말이 괜히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네덜란드의 친절 속에서 묻고 묻고 또 물어 도착한 이 곳 파리는 나에게 어떻게 기억될지.


일단 베르사유 궁전부터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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