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베르사유 궁전
정신의 절반을 Flix Bus에 놓고 내려그런지, 세상이 어질어질했다. 그래도 파리다. 첫날부터 취한듯이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이틀간 머무를 곳은 Porte de bagnolet 역 근처로 베르사유 궁전과 꽤나 멀다. 시간이 촉박할 듯해 중간에 RER로 갈아탔다. 프랑스 지하철도 런던만큼이나 수월했다. 역시 복잡함은 서울지하철이 세계 제일인듯하다.
프랑스 3일차 째 글을 써내려 가는 지금. 프랑스 지하철은 지금껏 갔던 곳들보다 훨씬 더 많은 공연을 한다. 역 내 통로는 물론, 지하철 안에서까지. 내가 지금까지 탔던 지하철들은 상당히 좁았는데, 그 비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공연을 하신다. 괜찮은 공연부터 소음공해까지 퀄리티도 다양하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마중을 받으며 베르사유 궁전에 입성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네덜란드 거주허가증을 숙소에 놓고 온 것이다! EU비자가 있는 학생만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데. 생각지 못한 돈을 쓰게 돼 마음이 씁쓸했다. 사실 어지럼에 짜증이 중첩돼 오늘 제대로 관람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 화내서 달라질 게 없다. 궁전 관람에 집중하기로 했다.
궁전 내부는 역시나 화려하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를 보면서도, 거대하고 화려하고 심지어 섬세함마저 느꼈는데, 베르사유 궁전도 마찬가지다. 하나 추가하자면 황금장식이 엄청나게 많다. 흐린날임에도 궁전 외부, 내부의 누런 것들이 고고하게 번쩍거린다. 게다가 2번째 사진은 무려 천장에 그린 사진. 궁정예술가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가 느껴진다. 그리고 신화의 한 장면에 왕족들을 대입한 그림들도 많다. 자신들을 신격화하고 싶은 의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차별의식이 강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저 대리석. 벨기에에서 가져왔다는데, 정말 멋있다. 격정의 순간을 일시정지 한 느낌. 다시 재생버튼을 누르면 뭔가가 터져나올것만 같다.
루이 14세의 방. 화려하고 과시적인 걸 떠나, 저 방의 위치가 가관이다. 사진으로 찍진 않았지만, 저 침대에 누워 앞을 바라보면, 베르사유 정원이 좌우대칭으로 눈 앞에 펼쳐져있다. 그리고 태양이 그 정면으로 떠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말 태양왕답다. 그래도 아침에 태양이 너무 눈부셔 짜증나는 적도 분명 있었을 게다.
그 유명한 거울의 방. 당시 거울을 저렇게 많이 설치했다는 게 사치와 과시의 증거란다. 왕실 재정을 이렇게 과시적 용도로 탕진해버리니, 후에 혁명이 일어날 수 밖에. 동시에 1871년 프로이센 전쟁에 패하고 이 곳에서 굴욕적 협정을 할 때의 치욕감은 어땟을까.
그리고 나폴레옹. 그는 부르봉 왕조와의 차별성을 위해 랭스 성당이 아닌, 노트르담 성당에서 황제 즉위식을 올린. 교황이 왕관을 씌워주는 의식도 거부하고, 본인이 직접 왕관을 씀으로써 자신이 교황보다도 높은 사람임을 과시한 그를 위한 공간이었다.
사진엔 올리지 않았지만, 프랑스 혁명 당시 상퀼로트가 돋보이는 그림도 베르사유 궁전 내부에 있었다. 궁전 내에 있는 그림 중 가장 인간적인 그림이 아닐까 싶다. 다른 인물들의 사진은, 보통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베르사유의 정원, 그리고 마리앙투아네트의 공간으로 가는 길인데, 너무 춥다. 파리를 얕봤다. 날씨 좀 풀린 줄 알고 얇은 티에 남방 하나, 외투하나 걸쳤는데 치기어린 행동이었다. 적어도 후리스를 하나 더 입어야했다. 아니면 목도리를 두르던지! 장갑도 문제다. 내가 애용하는 얇은 파랭이 장갑이 아니라, 따뜻한 벙어리 장갑을 가져왔어야 했다.
가는 길에 양도 있고, 백조도 있고, 고양이도 있다. 이 추위속에도 양은 춥지 않으려나. 아무일 없다는 듯 느긋하게 풀 뜯고 있는 양들이 부러웠다.
날씨가 너무 추워, 저녁거리를 사 숙소로 돌아왔다. 베르사유 궁전은 생각했던대로 너무나 과시적이었다. 그들이 과시를 부릴 수 있던 건 항상 피지배자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성에서, 그들만의 행복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