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기행-24

파리-바쁜 하루, 여유로운 마무리

by 래리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숙소로부터 걸어서 10분 거리에 뻬흐 라쉐즈 묘지가 있었다. 찾아보니, 쇼팽, 생시몽, 파리꼬뮌의 벽, 발자크 등의 묘가 있다더라.


아침을 먹고 재빨리 이동했다.





묘지 내부. 묘들은 런던의 하이게이트 묘지들과 비슷하게 생긴 것들이 많다. 그 곳보단 길이나 묘지가 훨씬 정돈돼있는 느낌이지만. 특이했던 점은 상당수의 묘지에 Famille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아마 가족 단위의 묘지인가보다.



뜬금없이 발견한 피에르 부르디외. <구별짓기>로 유명한, 현대사회학의 거장이다. 사회학 수업시간 때 자주 들었지만, 부끄럽게 아직 부르디외의 저작을 직접 읽어보지 못했다. 나 자신에게 부끄러움과, 부르디외에게 죄송한 마음을 이 디지털 문자에 꾹꾹 눌러 담는 중이다.


파리코뮌의 벽. 1871년. 산업 사회 이후 최초의 노동자 국가로서, 맑스가 상당한 감명을 받은 파리코뮌의 흔적이다. 두 달 남짓의 짧은 기간 후 진압당해 역사적 평가를 내리기엔 성급한 면도 있으나, 그 자체로 의미있는 시도였다. 맑스는 이를 토대로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한다.




나치로부터 고통받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이다. 첫 번째 사진은 독일에 끌려가 강제로 노동을 하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을 톱니바퀴와 함께 표현했다. 두 번째 사진도 나치에 의해 심각한 고통을 받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이다. 민족주의 자체는 달갑지 않지만,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는 이와 별개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부터는 한가람민박에서 6일간 숙박을 한다. 7호선 종점인 louis aragon역과 가깝고, 아침 저녁을 정말 푸짐하게 차려주신다. 교환학생 신분으로 밥은 최대한 잘해먹는다고 생각했는데, 맛있는 김치, 밑반찬까지 섭렵하지는 못했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신 이모님께 감사하다.


민박집에 짐을 놔두기 무섭게 오늘의 목적지로 향했다. 바로 cite섬. 지하철 cite역도 있지만 나는 chatelet역에 내려 걸어갔다. cite섬에는 노트르담 성당, 콩시에쥬리 그리고 샤펠 성당이 있다. 이 섬이 '파리의 시작'이라 불리는 이유는 바로 콩시에쥬리때문이다.




콩시에쥬리는 처음부터 이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 원래는 파리 최초의 궁전으로서, 왕실 전용 공간이었다. 그러다 15세기경 루브르로 궁전을 옮기면서, 이 건물을 감옥으로 쓰게 됐는데 그 때부터 콩시에쥬리(관리인)란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감옥은 정말 후미진 곳부터 VIP실까지 있다. 수감자의 방은 재산의 정도나 사회적 지위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내부의 홀을 찍은 사진이 없어졌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방. 1793년 처형 당한 마리 앙투아네트가 76일간 수감됐던 곳이란다. 뒤에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감시하는 감시병도 있다. '목걸이 사건'으로 시민들에게 평판이 심각하게 나빠졌던 그녀지만, 설령 그 사건이 없었더라도 사형을 면했을런지는 모르겠다.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상처입은 로베스피에르도 사형당하기 직전 마지막 순간을 이 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1789년 직후 프랑스가 심각한 격동기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로베스피에르가 권력을 잡은 뒤, 사형선고가 내려진 지롱드파 사람들이 한데모여 있는 모습이다. 저 하얀 천으로 덮인 사람은 자살을 택했다.


공포정치시기 '반혁명'으로 낙인 찍힌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혁명의 목적은 숭고하고 가치있지만, 혁명 후의 정치는 상당히 반동적이었다. 결국 그 폭력이 로베스피에르 자신에게까지 향하는 결과를 맞이했다.


콩시에쥬리에서만 두 시간을 보냈다. 몸이 좀 피곤해 영어를 읽는 속도가 평소보다 더뎠기 때문이다. 하나밖에 없는 의자에 앉아있을 땐,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불어로 뭐라고 떠들어대길래 자리를 비켜줬더니 Thank you란다. 내가 불어를 하는 만큼 그 아이는 영어를 하나보다. 1분 정도 있더니 다시 내게 자리를 넘겨주더라.


오후 다섯시 쯤 콩시에쥬리에서 나와 샤펠 성당으로 향했는데, 이럴수가 샤펠 성당은 오후 5시에 폐관을 한단다. 하지만 별로 아쉽지는 않았다. 샤펠성당에 큰 미련은 없기 때문이다. 얼른 노트르담 성당으로 향했다.





유럽에서 성당은 꽤나 많이 들락날락했는데, 들어가자마자 파이프오르간이 날 맞이한 적은 처음이다. 소리가 굉장히 크다. 연주는 또 왜이리 무서운지, 내 영혼을 겁먹게 하고 방황하게 만들었다. 이 상황에서 나를 구해줄 누군가를 찾는 일은 당연지사. 내가 종교인이었다면, 이 파이프오르간 소리에 신앙심이 한층 더 두터워 질 것이라 생각했다.


잔다르크의 명예 회복을 결정한 성당답게 내부에 잔다르크에 관련된 작품들이 눈에 띈다. 내부 사진은 찍지 않았다. 비종교인으로서, 유명한 성당을 가는 일은 종교인들보다야 감동이 덜하겠지만, 스스로 성당 특유의 종교적 분위기는 누구보다 깊게 느낀다고 생각한다.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를 읽은 뒤부터.


노트르담 성당을 나오니 어느덧 해질무렵. 세느강변을 따라 걷다 퐁뇌프다리로 향했다.



퐁뇌프다리에서 해질부렵 파리의 모습을 찍어봤다. 역광이 심각하지만, 내 머릿속엔 아직 그 풍경이 남아있다. 더블린에서 느낀 노을과는 다르다. 파리도 더블린처럼 강의 폭이 좁고 다리도 짧은데 말이다.


파리의 노을도 봤으니, 오늘 여행은 이걸로 마쳐야겠다. 생각하니 뭔가가 아쉬워 노을을 좀 더 감상하기로했다. 다리를 옮겨가면서도 보고, 멍하니 서서 바라보기도 했다. 노을을 맘편히 즐겨본 게 언제던가. 아마 가끔 고향 공주에 내려갔을 때 뿐이다.


이 곳에선 나처럼 혼자 노을을 즐기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그들도 여행자일수 있지만, 행색만보면 직장인같다. 만일 그들이 정말 직장인이라면, 노을보다 노을을 즐기는 개인의 집단이 훨씬 더 멋지다고 생각했다. 퇴근길에 가만히 서서 노을을 바라본다. 얼마나 낭만적인가!


풍경 자체로만보면 한강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훨씬 멋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정장차림의 사람들이 혼자서 노을을 즐기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우리의 퇴근길을 생각해보자. 피곤에 쩔어 지하철 의자에 축쳐진 모습. 혹은 컴컴한 밤하늘 아래서 내일 출근을 걱정하는 모습. 낭만이란 상당부분 여유에서 올 수 있다고 느꼈다. 우리는 여유를 가져야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하늘을 안 본지 오래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국과 유럽의 하늘은 확실히 다르다. 물론 하늘은 전부 아름답다. 그렇지만 다른건 다르다. 네덜란드에서 봤던 을씨년스럽던 하늘도, 너무도 파랗던 밤하늘도, 지금 파리의 뿌옇게 붉은 노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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