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파리의 매력
찾아보니 Carnavalet라는 프랑스 역사 박물관이 있어 그 곳에 가기로 했다. 역사야 한국에서 책으로도 공부할 수 있지 않느냐. 라는 물음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한국에 있으면 프랑스 역사에 딱히 관심도 안가고, 역사박물관을 통해 그 나라의 역사관, 중요시하는 가치 등을 알 수 있기에 오늘의 목적지로 택했다.
이 선택의 배경엔 더블린과 런던의 여행 경험이 있다. '역사'박물관만은 아니지만, 박물관이 알려주는 역사를 통해 그 나라 정부가(정권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중요시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Saint-paul 역으로 향했다. 마레 지구에 Carnavalet 역사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곳을 다 보고 난 뒤에는 근처에 있는 피카소 박물관에 가리라. 깔끔한 일정이다. 생각하고 박물관으로 향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월요일이 휴관날이었다. 설마해서 찾아간 피카소 박물관도 휴관, 근처에 있는 cognac-jay museum도 휴관.
산뜻했던 출발과 달리 눈앞이 어두워졌다. 길을 잃었다. 목적지가 없다. 어디로 가야하는가. 오후 쯤에 교환학생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이 애매하게 남은 시간을 어떡해야 할 것인가. 방황하는 마음을 억누르고 구글맵을 보니, 몽파르나스가 멀지않다. 그래 오늘 몽파르나스 묘지에 가자. 친구는 점심먹고 오후 4시쯤 본다면, 팡테온에도 갈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서둘러 도착한 몽파르나스. 시간이 없으니 길게 돌아보진 못하겠고, 지도에서 내가 찾고 싶은 사람들만 찾기로 했다. 사실 이 곳에 온 가장 큰 목적은 뒤르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회학자이다. 아직까진.
원래 몽파르나스 묘지에 갈 때는 꽃을 사들고 가려 했으나, 급작스럽게 바뀐 일정에 꽃을 준비하지 못했다.
뻬흐 라셰즈 묘지처럼 길이 깔끔하게 정돈돼있다. 아, 그런데 뒤르켐을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지도상에 묘지들 사이 애매한 지점에 위치해 있어서 뒤르켐 묘지 근처에서 무려 30분이상을 헤맸다. 분명 뒤르켐 정도면 그의 추종자들이 꽤 왔다갔을 것이기에, 무언가가 많이 놓여져있는 묘지위주로 찾자!고 생각하고 샅샅이 뒤졌으나 쉽지않았다. 뒤르켐은 찾아야겠는데, 시간은 없어 급한 마음에 묘지를 운동하던 프랑스 여성에게 뒤르켐의 묘지를 아냐고 물었다! 뒤르켐을 아냐고 묻는게 우선일텐데 말이다. 급하긴 급했나보다. 프랑스 여성은 친절하게 휴대용 지도가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해주었다, 사실 그 지도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지도상 뒤르켐이 있는 근처만 30분이상을 서성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녀의 친절에 너무 감사했다. 프랑스에 와서 처음 느껴 본 배려였고, 무덤 사이를 휘젓고 다니는 일을 창피하거나 예의없는 일로 생각하지 말라고도 일러줬다.
처음 파리에 왔을 땐, 소문대로 파리 사람들이 불친절하다고 생각했다. 영어로 물어도 불어로 답하고, 표정도 차가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박집 이모님 말대로 그들에게 말을 걸 때, 환하게 웃으며 '봉쥬'로 시작하니 그들의 반응도 달랐다. 봉쥬 다음은 영어로 물었지만, 그들은 자신이 아는한 최대한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려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미숙했던 것이다. 파리의 사람들에게!
휴대용 지도를 들고 다시 뒤르켐을 찾아나섰다. 이미 알고 있던 위치에 지도하나 들고 간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마는 약 10분의 두리번거림 끝에 뒤르켐을 찾았다.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왔다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저 수많은 동전들을 보고 이에 질세라, 주머니에 있는 센트를 털어 뒤르켐의 묘지에 바쳤다.
사회학 수업 레포트를 쓰려 <사회분업론>,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 그리고 <자살>을 읽었는데 <사회분업론>이 정말 좋았다. 좋은 번역과 알찬 해제를 해주신 민문홍님께 감사하다. 뒤르켐의 말대로 분업은 도덕적일까? 사회학 이론에 확신을 부여할 순 없지만, 믿고 싶다. 분업은 도덕적이라고. 맑스는 이와 반대로 분업이 노동자들의 소외를 불러일으킨다고 했지만 말이다.
꽃을 사들고 찾아가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지나가는 일본인에게 부탁해 묘지 뒤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몽파르나스 묘지에 온 목적 80%는 달성했다.
몽파르나스 묘지에 온 목적 19%의 지분을 보유한 보들레르. 중2병, 여성에 대한 관념 등 그에 대한 비판은 수도 없이 많다. 나도 그의 의견에 크게 동의하진 않는다. 늙음에 대한 것도. 그럼에도 <파리의 우울>을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군시절 점호 15분 전부터 소산문시 한 편 읽으면 딱 점호시간. 하루 소산문시 한 편은 책을 다 읽기 전까지 군 생활의 자연스런 일과 중 하나였다.
마지막으로 몽파르나스 묘지에 온 지분 1%를 보유하고 있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둘 관계에 철학적 수사를 제외한 속내가 분명 있으리라. 사르트르의 저작은 두 권을 시도했는데 쉽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뭣도 모르고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를 집어들었다 눈으로 글자만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은 했다. 나중에 <말>을 읽기 시작했을 땐, 독서의지가 땅으로 곤두박질쳐 50페이지 정도 읽고 때려쳤다. 내게 사르트르는 이런 존재지만, 그 명성으로만 묘지에 온 목적의 일부를 차지할만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 커다란 꽃다발들을 보라.
몽파르나스 묘지에서 룩셈부르크 궁전, 공원은 가깝다. 걸어서 10분 정도 걸린 듯하다. 룩셈부르크 공원으로 가는 길에도 다른 공원이 있는데, 궁전이 있어 그런지 저렇게 철창문으로 공간을 나눠놨다. 작은 공원을 지나, 이제 룩셈부르크 공원이구나.하고 들어섰는데 가장 먼저 반응한 건 후각이었다.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정체모를 말똥 냄새가 코 끝을 울렸다. 아, 지독한 말똥 냄새가 룩셈부르크 공원과 밑에 위치한 작은 공원을 구분 짓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룩셈부르크 공원. 사진엔 잘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이 꽤 많다. 대부분 관광객이겠지. 관광객이면 어떠리. 공원엔 얘기하는 사람보다 그저 말없이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걸 운치있다 해야하나. 쌀쌀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거의 눕듯이 앉는 철제의자 위에서 햇볕을 쬐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침에 한 방황이며, 몽파르나스묘지, 룩셈부르크 공원까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침을 든든히 먹어도 배고플 시간. 점심을 먹고 싶은데, 프랑스스러운 음식이 먹고 싶어 길가던 중년의 신사분께 물었다. 근처에 좋은 프랑스 레스토랑이 있냐고. 그는 점잖게 프랑스 음식점 위치를 설명해줬다.
내가 시킨 메뉴는 송아지 간 스테이크와 메쉬포테이토. 간의 굽기는 미디움으로 시켰는데, 순대먹을 때 곁다리로 나오는 그 간맛과 크게 다르진 않지만 훨씬 고급스러운 맛이다. 겉을 약간 바삭하게 익혀서 처음 두 번 씹을때까지는 이게 간인지 일반 고기인지 헷갈린다. 그런데 씹으면 씹을수록 간의 향이 입안에 점점 퍼진다. 간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마른 산에 난 산불처럼 퍼져나가는 간의 향을 버틸 순 없었다. 그때 소화기역할로 입 속에 쳐 넣은게 저 메쉬포테이토.
그런데 웬일. 메쉬포테이토가 너무 맛있었다. 원래 감자를 좋아하고 메쉬포테이토도 많이 먹어봤는데 저 메쉬포테이토는 지금까지 살면서 먹은 것들 중 가장 맛있었다. 치즈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너무 부드러운 감자. 음식 양은 적은 줄 알았는데, 바게트 4조각과 함께하니 정말 배불렀다. 좋은 식당을 추천해주신 중년의 프랑스 신사분께 감사하다.
빵빵한 배를 이끌고 들어온 빵테온. 로마에서 신들을 모시기 위한 공간으로 건축했으나, 프랑스에서는 그들의 위인들을 모시기 위해 만들었다. 원래 팡테온의 위치는 교회였고, 성녀 주네비에브가 묻혔다. 병든 루이15세는 자신의 병이 나으면 이 교회를 보수 공사하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병이 낫고 공사에 착수했다. 당시 흉흉해지는 민심을 모으기 위한 정치적 목적도 포함돼있었다.
빵테온은 프랑스 역사, 사회 그 자체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수립된 혁명정부는 그들의 죽은 영웅을 팡테온으로 모셨는데, 처음 팡테온에 안치된 미라보는 왕과의 비밀협상을 맺은 사실이 밝혀져 관이 파헤쳐졌다. 나폴레옹 1세 시대 때는 41명의 관료들이 안치되었고, 왕정복고 시기에는 교회로 쓰였다. 1885년 빅토르 위고의 장례식 이후에야 팡테온은, 다시 프랑스 위인을 모시기 위한 장소로 쓰인다.
프랑스 혁명 당시 프로이센 군대로부터 승리를 쟁취한 발미전투.
원래는 없었지만, 왕정복고 시절에 생긴 천장의 그림.
그리고 프랑스의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를 의인화한 마리안느 동상 뒤에 예수가 보인다. 단순 배치상으로는 예수가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보인다.
지하 무덤으로 내려가면 루소와 볼테르가 마주하고 있다. 원래 혁명 정부 이후에 죽은 위인들만 팡테온에 모시기로 했지만, 혁명에 큰 영향을 준 계몽주의 사상가 루소, 볼테르 그리고 디드로 이 세명은 예외로 팡테온에 누워있다.
루소와 볼테르 사이를 걸어 안쪽으로 들어오면, 뒤프레스 사건의 영웅 에밀 졸라, 프랑스 통합사회당 창당자 장조레스 그리고 노예제폐지의 주역 쇨세르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좌파정권 때 모셨겠지만, 철거당하지 않은게 어딘가.
저들 덕분에 프랑스가 지향하는 가치에 '평등'이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승리자의 국가 영국의 박물관을 갔을 땐, '평등'지향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대영 제국의 케케묵은 집념만이 느껴질 뿐이었으나, 빵테온은 달랐다. 부패한 체제와 인종적 낙인찍기에 경각을 울린 에밀 졸라, 노예제 폐지를 외친 쇨세르 안치는 프랑스만의 이익을 넘어 전세계에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할 가치 숭배를 상징한다. 멋있다. 개인적으로는 영국보다 확실히 멋있다고 생각했다.
팡테온이 프랑스 역사이자 사회 그자체인 이유는 팡테온의 종교, 좌우파, 민족주의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1층의 내부는 혁명정부의 업적과 종교적 위엄이 혼재돼있다. 지하 무덤도 마찬가지. 좌파 인사의 안치 땐 좌우파 간 논쟁이 치열했었다. 게다가 샤를 드골은 자신의 보수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국민 통합을 위해 좌파줄신 레지스탕스 장 물랭을 팡테온에 안치했다.
그럼에도 나는 팡테온이 마음에 들었다. 결과론적이지만 지금은 정치화합의 장.으로 여겨진다는 말도 그렇고 무엇보다 전인류적 평등의 가치가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율배반적인 것에 끌리기에 이 곳이 좋았다.
팡테온을 나와 오뎅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역으로 가는 길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더블린, 런던 어느 곳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던 거리의 아름다움이 지금 느껴지다니. 발걸음이 가볍다.
파리에 가기 전이나 후나, "<미드 나잇 인 파리> 보셨어요?", "그걸 보고 가야 파리가 진짜 아름답다고 느낄텐데 아쉽네요~" 이런 질문과 말들을 자주 들었다. 허나 지금 거리를 걸으며 그 영화를 보지 않은 내 자신에 뿌듯하고 파리에 감사했다. 미디어의 힘을 빌려 강제로 환상을 만들지 않아도, 파리는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