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미련없이
어제 못간 Carnavalet 역사 박물관과 피카소 박물관에 가는 게 오늘의 일정이다. 시간이 되면 마레지구에 있는 빈티지샵도 들러 보고.
아침을 먹고, Carnavalet으로 향했다. 입장료가 없어 얼른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이 박물관은 Hotel Carnavalet과 Hotel Le Peletier De Saint-Fargeau. 두 개의 건물을 연결해 만들었다. 박물관 구성은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역사적 물건들, 장식품, 회화, 조각 등이 있고, 회화도 프랑스를 빛낸 배우, 작곡가 등 다양하다.
19세기 후반 몽마르트 언덕에 만들어졌다는 Black cat cabaret의 sign. 과거에는 문맹률이 높아 가게 주인들이 소리 치거나, 특정 장식품, 동물들을 이용해 손님들의 주의를 끌었다고 한다.
시대 별로 사진을 꽤 찍은 것 같은데 사진이 다 어디갔지..
어찌됐든 계몽주의 시대에는 루소, 볼테르 그리고 디드로가 항상 나온다. 그들의 두상이나 흉상. 빵테온에 예외적으로 안치됐을 만큼 프랑스에서 중요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프랑스를 빛낸 작가, 배우 등이 있던 공간에서 본 그림.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그림이 너무 부드러워보였다. 저 남성의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면 손에 살구빛 가루가 묻어나올 것 같은 느낌. 처음엔 몰랐는데 은은하게 콧수염과 턱수염도 있다.
아니 근데 왜, 작품 설명이 전부 프랑스어인건지 모르겠다. 작품명은 길지도 않은데 영어버젼도 만들어주면 안되나. 너무 답답해 오디오가이드를 빌리러 갔다. 그런데 웬 일. 어제에 이어 오늘도 퇴짜를 맞았다. 오디오가이드가 모두 충전 중이라 최소 1시간 뒤에 와 달라는 것이다. 점심을 한인민박 사람들과 먹기로 했는데. 시간이 없다. 오디오 가이드는 포기하자. 이렇게 루이15세~16세까지 무미건조하게 지나갔다.
그런데 또 어이없게 1789년 프랑스 혁명 부터는 공간마다 영어 설명이 있었다. 작품 설명은 여전히 프랑스어로만 돼있었지만. 프랑스 혁명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것만은 박물관에 오는 전세계 모든 이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은 프랑스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 했다. 사진은 혁명 전 프랑스 계급구조의 모순이다.
그 유명한 테니스 코트 서약. 박물관은 혁명의 상황을 시기별로 정말 잘게 나눠 설명하고 있다. 런던의 전쟁 박물관도 세계1차 대전, 2차 대전 등 특정 테마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무조건 많은 종류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보다는 소수의 테마를 깊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게 훨씬 좋다.
프랑스 역사 관련 예술품들은 루이14세, 마리 앙투아네트가 투 톱으로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게다. Carnavalet도 예외는 아니다. 루이14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에 관한 것들이 정말 많다.
박물관의 상세한 설명 덕에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됐는데, Hubert Robert라는 예술가는 반혁명주의자로서 혁명정부 당시 감옥에 갇혔는데, 끼니를 제공하던 접시에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후에 혁명 정부가 몰락하는 모습을 보고 꺼져가던 예술 열정이 다시 살아났다는데, 아마 그는 왕실로부터 상당한 후원을 받아왔지 않았을까. 추측해봤다.
그리고 혁명 당시 반혁명 세력들의 존재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 일단 귀족, 가톨릭들이 있는데 그들은 로열리스트로서 끝까지 왕을 지지했다고 한다. 정말 보수적이다. 조선의 위정척사파가 생각났다.
프랑스 혁명에 로베스피에르를 빠트릴 순 없다.
1871년 파리코뮌 진압 후 참담한 상황.
번외로 파리 풍경을 그린 그림을 찍어봤는데, 다른 그림들과 달라서다. 대부분의 파리 풍경화는 하늘이 흐릿하거나 어두침침하다. 이 그림만이 맑은 하늘을 갖고 있고, 그림이 전체적으로 선명한 색채로 표현돼있어 특별하게 느껴졌다. 3월 초 내가 느끼는 파리에는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박물관을 보며 역시 프랑스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역사적 사건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이라고 느꼈다. 현재 그들이 내세우는 3가지 최고의 가치 '자유, 평등, 박애'가 바로 이 혁명에서 비롯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20세기 파리와 관련된 작품을 보려하는 찰나, 시계를 보니 어느덧 두시 이십분이다. 두시 반에 한인민박 사람들과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5초 정도 고민하다 미련 없이 박물관을 나왔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간 곳은 근처의 피카소 박물관. 난해하기로 소문난 피카소. 나도 이미 그의 난해함을 잘 알고 있다.
피카소는 회화 뿐 아니라 다양한 미술 장르를 섭렵했다. 위의 작품은 보는 각도에 따라 인상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얼핏보면 둘 다 살짝 웃고 있는 모습같지만, 코의 형태, 눈의 모양 입꼬리가 올라간 정도가 확실히 다르다.
사진은 올리지 않았지만, 피카소는 정말 젖같다. 미술관에 전시된 피카소가 그린 여성의 대부분은 젖가슴을 노출하고 있다. 옷일 입건 말건. 피카소의 작품들이 난해해서 그를 욕하는 게 아니다.
빛과 그림자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 작품인데. 뭘 뜻하는지는 모르겠다. 작품 제목도 전부 프랑스어로 돼있고, 영한사전으로 단어를 찾아 유추해보려해도 저 작품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피카소 박물관 내부 벽면의 모습인데, 피카소의 작품들과 정말 안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왕실이나 루브르같은 곳에 어울릴법하다.
지금부터는 피카소의 정치적 의도가 담긴 작품들이 등장한다. 위 작품의 제목은 옆에서 관람하던 프랑스인에게 물어봤는데, <전쟁과 평화>라더라. 사실 나는 저 그림을 보고 6.25전쟁이 떠올랐다. 저 인간 얼굴의 방패를 보고 중국의 인해전술이 연상돼서..
스페인 내전 이후 그린 우는 여인들. 피카소는 반전운동 기금 모금을 위해서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위 작품의 제목에 Coree가 들어가길래. 단번에 알았다. 피카소가 노근리 학살을 비판한 게 이 그림이구나. 한국 전쟁 당시 한반도 일대를 남한군이 점령했다, 북한군이 점령했다를 반복했다. 이는 일반 주민들의 신분이 자기 지역에 현재 어느 세력이 지배적이냐에 따라 달라지게 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그 와중에 빨갱이 색출이란 명목으로 노근리 주민들이 산에 끌려가 미군에 의해 집단학살 당하는 뼈아픈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민간인 학살이 노근리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발생했다는 사실과 미군이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 막막하기만 하다.
피카소가 평화의 상징으로 자주 그린 비둘기.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짜증, 불쾌, 더러움, 혐오의 상징 비둘기다.
죽을 때까지 프랑스 공산당원의 신분을 유지한 피카소의 그림. 후에는 스탈린을 비판하는 그림을 그려 프랑스 공산당원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데. 저 그림을 그린 1949년 당시는 스탈린의 부패가 전세계적으로 폭로되기 전이라 그런지, 그를 찬양하는 그림을 그렸나보다. 뜻은 '스탈린을 위해 건배'
박물관이 6시에 문을 닫아 3층을 관람하지 못했다. 스탈린을 비판한 그림도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했다. 그래도 피카소에 큰 미련은 없기에, 아쉬움 없이 밖으로 향했다.
마레지구의 빈티지샾에 호기심이 생겨, 쇼핑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골목을 샅샅이 뒤졌건만, 여자옷 집 밖에 눈에 안 들어 온다. 남자 빈티지 샾은 어디에 있는가. 분명 내가 잘 못 찾은 걸 게다.
유럽에서 현금을 쓰다보면 동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쌓여서 예쁜 동전지갑을 꼭 사야겠다 마음먹었는데, 오눌도 딱히 마음에 드는 동전 지갑을 발견하지 못했다. 정말 사고 싶은데 말이다.
결국 피카소 박물관을 나올 때처럼 미련없이 마레지구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유럽에 계속 머물다 보면 언젠가는 사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