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기행-27

파리-절망과 그 후

by 래리

오르셰에서 폰을 떨궜다. 정말 낮은 위치. 무릎 정도 되는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액정이 완전히 나갔다. 내 멘탈도 나갔다. Oh my god을 혼자서 다섯 번은 외쳤다. 정말로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로 저렇게. 잘 하지도 못하면서. 정신을 추스르고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가서 물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삼성 서비스센터가 어디냐고. 글로벌 대기업 삼성이 파리 시내 어딘가에는 분명히 둥지를 틀었으리라 확신했다. 역시나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서비스 센터가 있었다. 오디오 가이드는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맡기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인포메이션 직원이 준 지도를 들고 숨도 고르지 않은 채 걸었다. 십분 정도 걸었을까. 푸른 SAMSUNG 로고가 보인다. 일단 들어가 직원들에게 내 상황을 설명했는데, 그들은 대답 대신 작은 종이쪽지 하나를 건넸다. 종이엔 오직 주소만이 적혀있다, 나는 파리의 지리를 모른다. 그래도 일단 밖으로 나와 향했다. 그들의 간단한 설명처럼 서비스센터 찾기는 쉽지 않았지만, 길에서 만난 5명의 파리지앵들 덕분에 무사히 찾아갈 수 있었다.


한국에서 10분이면 고치는 작업인데, 한 시간 뒤에 오라더라. 점심도 해결할 겸, 태국 음식점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웬일. 서비스 센터에서 한국과 유럽의 모델이 달라 고칠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삼성 서비스 센터에서 갤럭시S4를 못 고친다니.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왜 같은 모델의 구성품이 다를까. 유럽과 한국 제품의 생산비가 달라서 그런걸까. 추측해봤다. 유럽 시장에서 삼성의 판매 전략이 고비용 고품질은 아니니 유럽용 제품 생산비용이 더 적거나, 내수시장을 호구로 보거나. 어쨋든 시간만 날린 채 힘없이 오르셰로 돌아갔다.


오르셰에서 짐을 찾고 바로 민박집으로 갔다. 더 이상 미술을 감상할 정신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민박집에선 이모님의 도움으로 프랑스 한인 사이트에 접속해봤다. 그 곳에서 물건 거래도 하는데, 당연히 핸드폰도 품목 중 하나다. 100유로 미만의 핸드폰이 없나 찾던 중, 이모님께서 민박집 근처에 핸드폰 파는 곳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그래. 가격을 보고 괜찮으면 새 걸로 사자. 마음먹고 그 곳으로 향했다.


일단 내 핸드폰의 상태를 보여줬는데 그들은 수리비를 130유로만 내면 고쳐줄 수 있다고 했다. 아니 삼성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한국과 유럽의 액정 버젼이 달라 못 고쳤는데, 이런 작은 가게에서 어떻게 고칠 수 있겠는가. 없어진 어이를 한숨으로 대체하고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을 설명했다. 그에게 상황을 이해시킨 뒤 고칠 수 있냐고 다시 물었는데, 고칠 수 있단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은 대체 뭔가. 그런데 자기들이 액정을 주문해야 해서 다음날 오후 4시 이후에 찾아 가란다. 다음날 오후 1시가 네덜란드로 돌아가는 버스 출발시간이다. 이거 어떡하나. 그래도 예전 핸드폰을 살리고 싶었다. 거기에 기록된 많은 정보들과 사진들 때문에. 급한 건 나다. 일단 이 못미더운 터키인을 믿어보기로 했다.


핸드폰을 맡기고, Flix Bus 시간을 내일 밤 12시로 바꿨다. 신물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몸에 활력도 없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는 아주 짜증나는 상태다. 짜증은 짜증을 부른다. 따뜻한 꿀물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랬다.

지옥 같은 하루였다. 파리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피로를 한 번도 풀지 못한 채 너무 무리해서 돌아다녔다. 중요한 건 파리에서 잠을 개운하게 잔 적이 없다. 왜일까. 잠만 개운하게 잤어도 괜찮았을 텐데. 피로가 누적되다 보니 신경안정제를 먹던 그 때의 몸 상태 같은 느낌이다. 거기에 핸드폰 액정이 나가는 사건까지. 몸과 마음 모두 상처투성이가 됐다.


다행히 하루가 지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토트넘-아스날 축구 경기를 보고 바로 가게로 향했다. 약간의 설렘을 안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는데, 역시나. 한국에서만 고칠 수 있단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던 일이다. 이 터키놈은 뭘 믿고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건지. 못 고쳤다고 말할 때 표정은 또 왜 이렇게 여유로운 건지.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어쩌겠나, 이미 지나간 일인데. 바로 새 핸드폰을 찾았다. 갤럭시 J1. 이런 모델도 있었나. 찾아보니 보급형 모델인데 스펙은 갤럭시 S2보다 후지다. 아니 자세히보니 상상이상의 개똥폰이다. 한국 돌아가기 전 5개월만 쓰자. 마음먹고 골랐다. 119.5유로. 그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지출이 발생했다. 엄마, 아빠 죄송해요. 정말로


새 핸드폰에 필수적인 앱들을 깔았다. 페이스북, Fot mob, 카카오톡 등. 그런데 새로운 난관에 부딪혔다. 카카오톡 아이디를 로그인 하려는데, 최근에 다른 곳에서 사용 중이라며 카톡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로 72시간 뒤에 다시 로그인하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급한 마음을 뒤로 하고 일단 카카오톡 서비스센터에 문의했다.


답장이 왔는데, 어쩔 수 없단다. 72시간 동안 카톡을 사용하지 않은 뒤 로그인을 해야한다. 그래 기다리자. 새 핸드폰도 유럽의 일 처리 속도만큼이나 느긋하다. 핸드폰도 나에게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아, 여유, 느긋함, 기다림으로 무장한 거대한 유럽 정신이 신경질적인 나에게 인내심을 가르치나 보다. 라고 합리화할 수 밖에.


그럼에도 이전 핸드폰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패션 위크 기간(3월 첫째주) 그랑팔레 주변을 걷던 중 우연찮게 발견한 대포 카메라 부대. 그 속에서의 이방인 체험과 냉소. 그리고 오랑쥬리에서 모네 작품들을 보고 받았던 충격은 머릿속에 남아있지만 르누아르, 로랑생, 수틴 등의 작품에 대한 나의 감상은 희미하게 기억날 뿐이기 때문에, 쉽사리 예전 폰이 잊히지 않는다. 모든 사진과 생생한 감상들이 그 안에 잠들어있다!


확실한건, 이 사건으로 내 유럽 생활은 새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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