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시작.
네덜란드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맑은 하늘과 햇살을 보았다. 동시에 나의 뱃속의 투쟁도 잠잠해졌다. 모든 것이 상쾌하다. 하지만 겨우 햇빛 따위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한 탓이었을까. 매서운 바람과 추위는 지금이 한겨울이란 사실을 일깨워줬다.
아 이거 사진 두개 올리는 거 왜케 힘든 거야. 오늘은 네덜란드 은행에 계좌를 만들러 갔다. 오렌지색 나라답게 오렌지 색상의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통장은 오늘부터 개설됐고 입출금이 가능하며, 1주일 후에 내 집으로 배송된 카드를 받으면, 오늘 받은 템포러리 카드는 파기하라는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궁금한 건 은행 직원의 설명보다 네덜란드의 part time regular job system이었다. 내가 수강했던 산업 노동사회학 수업을 비롯, sbs 다큐 <엄마의 전쟁>에서도 네덜란드는 part time이지만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아 전업주부의 개념이 거의 없고 양 부모가 일과 과정을 한국보다는 훨씬 손쉽게 병행한다고 들어왔다. 심지어 part time 정규직과 full time의 승진기회가 같다고까지 배웠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나라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은행 직원에게 물었다. 이 곳의 part time job system에 대해서. 하지만 그의 대답은 나의 이론적 지식과는 달랐다, 은행 업무상 인턴을 제외하고는 1주일 40시간 full time 직원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다른 회사는 어떠냐고 물어봤는데 그건 회사 사정마다 다를 것이라고 말했고, part time 정규직이라 하니 대부분 마트 같은 곳을 설명했다. 음. 네덜란드에 대한 환상을 너무 키워온 탓인지. 은행이라는 직장의 특수성 때문인지 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네덜란드의 새로운 장소에 갈 때마다 이에 대해 물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인식이 궁금하다. 일과 가정의 양립에 대한.
그리고 ATM 사용법을 듣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중 불가리아 교환학생과 통성명을 했다. 사실 나는 불가리아에 대해 아는 게 축구선수 베르바토프밖에 없기에 그를 언급했고, 그녀는 흔쾌히 받아주었다. 내가 south of Korea 출신이라 하자. 그녀는 nice하다 했으며, 자신이 k-pop을 좋아하고, 드라마도 많이 본다고 말해주었다. 멕시코 룸메이트도 동생이 k-pop을 정말 좋아한다고 했다. 동생의 영향인지 본인도 꽤나 잘 알고 있더라. 예상외의 한류를 느끼곤 나도 모르게 두유노 지송팍? 두유노 강남스타일? 을 외칠뻔했다.
오후 3시에 룸메들과 센트럼에 있는 성당 앞에서 만나 쇼핑을 하기로 했다. 약속을 한 번잡고 카톡으로 실시간 상황 보고하는 식이 아닌, 그냥 정해놓고 묵묵히 약속시간을 기다리는 아주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크레딧이 너무 적어 낭비하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한국과는 시공간이 달라져 친구들과 연락도 덜하게 된다. 즉 한국에 있을 때보다 핸드폰을 덜 사용한다. 아날로그적 생활은 감성을 풍부하게 하고 글쓰기의 소재도 훨씬 다양하게 만들어준단 사실을 이미 21개월의 군생활 속에서 느끼고 또 느꼈기 때문에 아주 기분이 좋았다.
JD라는 신발가게에서 발견한 포스미드 된장. 아쉽지만 주니어 사이즈밖에 없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종업원에게 성인 사이즈도 있냐고 물었다. 종업원은 친절하게 자신들의 매장에는 없지만, 자신들의 큰 온라인 사이트에서 검색이 가능하고 "해줄까"라고 물었다. 사실 저 신발을 살 마음은 크게 없었기에 "not thanks"했지만, 종업원은 H&M에서 3점포 옆에 베이커리를 끼고 돌아가면 좌측에 're-issue'라는 샵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더 많은 유니크한 신발들을 취급한다고 설명해줬다. 정말 친절하다. 이 정도 친절함이라면, 유럽 특유의 늦은 일처리 속도도 상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가게는 친절하게 우리들을 맞아주었고, 영어를 거의 다 잘해서 물건을 사는데 어떤 무리도 없었다. 정말 나이 드신 노인분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어를 할 줄 아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