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기행-5

alstublieft

by 래리

아우슈 블리프츠. Thank you와 한 쌍인 you're welcome의 네덜란드식 표현이다. 당큐웰과 더불어 아마 앞으로 가장 많이 쓰게 될 표현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틸버그는 그만큼 감사한 일도 감사받을 일들도 많은 곳이다.


오늘 오전은 Fonty ACI에서 네덜란드와 학교에 관한 정보를 들었다. 조금 지루하기도 했지만, 흥미로운 점도 많았다.


첫째로, 네덜란드는 입헌군주제 국가이고, 스페인과의 독립전쟁을 통해 17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독립된 국가의 지위를 얻었다. 동쪽으로 독일, 남쪽으로는 벨기에 서쪽으로는 바다 건너 영국과 맞닿아있는 네덜란드의 지리적 요점은 한국을 생각나게 했다.


둘째로 더치어. 독일어와 비슷한 부분이 있으며, 오늘은 몇 가지 표현에 대해 배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yes/no의 네덜란드 표현. ja/nee 야/네이 로 발음한다. 영어의 yes/no는 이분법적으로 활용이 분명하게 나눠져있다. 예를들어, yes 다음은 반드시 긍정표현만이 올 수 있고, no 다음은 부정표현만이 올 수 있다. 그리고 부정문으로 질문을 하건 평서문으로 질문을 하건 긍정/부정의 대답은 같은 뜻을 가진다. 하지만 네덜란드어는 다르다. ja/nee 다음에도 각각 서로다른 긍정과 부정의 표현이 올 수 있으며, 저 대답 다음에 설명하는 내용으로 화자가 긍정을 하는지, 부정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즉 ja와nee의 표현이 영어처럼 이분법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셋째로 교수들의 개방적 태도. 한국에서 깨나 개방적이고 평등하다고 자부하는 교수들도 이 곳에선 부들부들하며 얼굴을 붉힐수도 있다. 지금껏 우리를 인도한 미쉘과 나를 가르치게 될 교수의 말을, 알고 지내던 학생들이 도중에 끊어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심지어 논쟁을 할 때도 한국식 사제관계보다는 친구간의 논쟁처럼 보인다. 게다가 학장이라는 사람은 만화의 주인공처럼 등장해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했고 끊임없이 학생들에게 네덜란드의 첫인상에 대해 물었다.


학생들의 의견을 중시하는 이유는 네덜란드의 전통과 관련이 있다. 네덜란드 땅이 1/4은 해수면보다 낮기에 과거 그들은 집마다 둑을 쌓았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이 둑을 쌓아도 한 집의 둑이 무너지면 모두 물에 휩쓸려 죽기 때문에 그때부터 마을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모으는 문화가 발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수업 중에도 학생들의 의견을 최대한 들으려 한다.


누군가는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자연스레 의견을 내는 문화를 무레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볼 때 네덜란드 사람들은 상급자/하급자 라는 계급적 이분법을 넘어 개인을 그 자체의 독립적 존재로서 이해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이 곳이 모든 차별이 없고 평등한 유토피아란 건 아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들도 아직 많기 때문이다.


사족으로 나는 동방예의지국의 한국인이 서로에게 상당히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나이, 학벌, 신분으로 촘촘히 서열이 정해져, 상위집단의 하위집단에 대한 무시와 차별이 일상적으로 나타난다. 한국에서 인간은 인간 자체로 대우받는 게 아니라 그의 나이, 직업, 신분, 성별에 따라 차별적으로 대우받는다. 상급자는 하급자를 자신보다 '못한'사람이라 여기면서, 하급자의 맹목적 존중을 원한다. 많은 한국인들의 몸 구석구석에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사람에게는 '내 맘대로 대해도 된다.'는 생각이 깊숙히 박혀있다. 심지어 가정 내에서도. 결국 한국에서 상호 존중은 멸시 속에 파묻혀 그 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순간 떠오른 생각은 한국도 민주주의란 제도를 택한 이상, 지금보다는 개인 자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안건에 대해 보수와 진보의 성향을 0에서 100으로 줄세웠을 때, 사회에는 0부터 100까지의 의견 모두가 존재할 수 있다. 이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고 타협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내는 게 민주주의다. 안건에 대한 스펙트럼이 넓을수록 과정이 힘들수는 있지만, 그 과정을 절차적 문제 없이 끝낸다면 훨씬 더 값진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해방 이후 역사를 보자.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동돼왔는가. 정치에서, 48년 첫 총선은 민주주의의 이름을 빌렸지만, 모든 남한의 정치세력을 포함하지 못했다. 게다가 정당이 평당원들의 활동과 후원으로 유지되기 보다는, 특정 유명 인물을 중심으로 작동해 왔기에 하향식 성격이 강하다.


경제는 어떠한가. 60년대 이래의 국가주도의 계획경제는 정부가 특정 대기업에 특정 산업을 정해주고 이를 발전시키라 명령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형적 상명하달 체계다. 국가적 목표를 위해 노동자의 권리는 무시됐고, 이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비정규직과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외침에 정부와 원청업체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실생활 속 모습도 마찬가지다. 지금껏 대부분 조직의 격언은 '까라면 까야한다'이다.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의 의견은 '어린 놈이 뭘 알아' 정도로 치부해버린다. 그러면서도 노파심이라는 이유로, 변해버린 현실은 고려하지지 않은 채 '자신만의 것'이라 여기는 삶의 지혜를 아랫사람에게 강요한다.


이렇게 민주주의 도입 이후에도 사회 각 분야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상명하달식 명령 무조건 복종 체제로 유지돼왔다. 더 하고픈 얘기는 많지만, 네덜란드로 돌아가자. 우리는 설명을 듣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는 중 스페인 출신 아이린과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스페인 남부의 작은 도시 출생으로 바르셀로나에서 오랬동안 공부했고, FC 바르셀로나를 서포팅한다고도 했다. 당연히 스페인과 바르셀로나 축구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다 바르셀로나 독립 문제에 대해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 아이린은 까딸루냐/카스티야 가 아닌 스페인 국민으로서 스페인이 바르셀로나라는 아름다운 도시를 잃는 일이 생긴다면 정말 슬플것이다.고 말했다. 내가 그녀였어도 같은 대답을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점심식사 이후엔 꽤나 지루한 버디와의 조별활동 및 학교탐방이 있었다. 그런데 점심을 샌드위치하나 오렌지하나로 끝냈기에 너무 배고팠다. 그런데도 이 놈의 학교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new assignment를 제공했다. 그러다 결국 시간은 저녁으로 흘러 우리는 술집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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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업원에게 이름을 묻고 5번 정도는 따라해본 것 같지만 까먹어버린 dutch typical shot과 비터볼른 정도로 발음할 수 있는 크로켓. 저 샷은 21도 정도밖에 안된다고 한다. 가격은 shot 당 2.5유로. 10개에 5유로의 가격인 크로켓은 배고픔을 떠나서 정말 맛있었다. 듣기론 잡다한 것들이 많이 섞여 dirty mixed meat라고 불린다는데, 튀김의 속이 커리맛도 나고 감자맛도 나고 맥주안주로 딱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술집을 나와 독일인 다이애나와 얘기했다. 술집가는 교환학생들의 자전거 행렬 속 유일한 보드탑승자인 그녀는 이번 주 알요일에 독일에 돌아갔다 2월 14일에 돌아온다했다. 고향은 쾰른으로 카니발 주에 놀러오라는 초청을 받았다. 사람이 미어터지는 베를린보다 훨씬 낫다고 설명과 함께.


아 그런데 다이애나 하니까 롤의 다이애나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달의 여신 다이에나'스킨과 함께. 오늘 친구가 된 다이애나에게 내 이름의 뜻을 설명해줬다. 다이애나는 로마신화의 달의 여신이자 사냥의 여신, 포에부스의 동생이다. 한국말로 female god을 묻길래 '여 신'이라고 대답해줬다.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3개 국어에 능통한지라 ㅛㅕ등의 발음도 상당히 잘했다. 많은 타국의 교환학생들이 한국어에 관심을 가져줘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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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먹은 삼겹살..네덜란드는 식료품재료가 정말 싸다! 삼겹살 400g에 3유로정도 했던 것 같다. 삼겹살에 기름소금과 고추장을 찍어 먹고, 적당히 혀에 짠 맛이 느껴질 때 밥 한숟가락을 바로 입 안에 털어넣으니 테이스티로드를 능가하는 감탄사들이 튀어나왔다. 과장 없이.


포스팅을 하는 지금 너무 피곤하다. 네덜란드에 와서 계속 느낀 건 한국에 있을 때 관심도 안가지고 심지어 부정적 태도를 지녔던 k-pop이라 불리는 문화에 대해 재평가하게 됐다. 주관적 취향을 배제하고 이는 정말로 전세계적으로 많이 퍼져있기는 한가보다. 라고 꾸준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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