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기행-42

바티칸, 그 찬란했던 흔적들

by 래리

암스테르담 한인 민박에서의 마법의 하룻밤(단지 방이 좀 따뜻했던) 이후 여행 중 숙박업소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얼마나 편하게 잘 수 있는가’였다. 이 기준에 맞춰 보았을 때 이번 한인 민박은 심각했다. 일단 6시 반 알람보다 눈이 먼저 떠졌다. 추워서. 개인적인 문제일수도 있지만, 춥게 자면 자기 전보다 더 피곤한 느낌이 든다. 전 날의 피로가 하나도 씻기지 않은 채, 그렇게 4일, 5일 계속 여행을 하면 피곤이 계속 쌓일 걸 알기에 정신이 들자마자 5일 후의 몸 상태가 걱정됐다.


그럼에도 한인 민박의 최대 장점이라하면 역시 한식. 타지에서 쌀밥과 각종 나물로 아침 공복을 달랠 수 있는 건 내게 축복이다. 아침을 먹자마자 바티칸 투어 약속 장소로 향했다. 유럽 여행 중 처음 신청하는 투어.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바티칸 시에 도착하니, 수 많은 아시아인들이 저마다의 깃발 아래 모여있다. 나도 그 중 하나다. 바티칸 시는 19세기 중반 리소르지멘토(이탈리아 통일 운동)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가 1929년 라테란 조약으로 예토전생한 아주 작은 국가이다. 그러나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 이후 세력이 커진 기독교는 속세를 지배해 나갔고 한 때 그들의 영토인 ‘교황령’이 이탈리아 영토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던 시절도 있었다.


교황령의 영토가 넓었던 시절엔 교황의 힘도 강력했었다. 지금이야 교황(물론 동방정교회가 아닌 로마 가톨릭의)이 현실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혹자는 교황을 ‘전세계의 정신적 지주 심지어 대통령’이란 호칭까지 붙인다. 세계인구 30%가 기독교인 지구에서 그의 발언과 행동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DSC02942.JPG
DSC02996.JPG


바티칸 시에 들어서니 저 멀리 성 베드로 성당이 보인다. 각종 푸른 이파리에 야자수가 어우러진 풍경은 밀림의 궁전, 열대 초원의 성 같은 이미지를 불러일으켰다. 성당을 멀리한 채 바티칸 미술관부터 입장. 시작부터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진행되는 투어가 나와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한 공간의 작품들을 둘러보고 작품설명을 읽으려 하는 찰나에 다음 공간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DSC02959.JPG 왼편의 붉은 모자를 쓰신 분이 성 제롬이다. 그의 손에 있는 성경과 의기소침한 표정의 사자로 짐작해봤을 때.


그래도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그림에 나타난 몇 가지 특징들을 머리 속에 때려 박았다. 성 제롬은 성경 번역자이고 보통 사자와 같이 그려져 있다. 르네상스 시대엔 작품의 가운데를 기준으로 위, 아래가 이분법적 세계(이상, 현실)로 나눠져 있는 그림들이 많다. 같은.


당시 그림들은 대부분 교황, 추기경 등의 의뢰로 만들어졌다. 예술가의 순수한 창작 활동이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을 정도로. 예술가들이 작품활동, 생계를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풍족하게 후원 받기 위해서는 당시의 최고권력, 종교의 선택을 받는 게 가장 보편적이고 안정적이었다. 그럼에도 본인의 예술성을 지키기 위해 “내가 나가기 전까진 절대 작품을 볼 생각하지 마라, 지원을 풍족하게 해라,작품 마감 기한도 내가 정한다.”등의 조건을 앞세워 교황과 타협한 미켈란젤로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해설까지 들은 뒤에 30분이 간식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아침에 전자레인지로 만든 냉동 빠에야를 야외에서 먹었는데, 밥보다 날씨가 끝내줬다. 5월임에도 로마의 햇빛은 너무나 따갑다. 여행 전 틸버그의 햇살이 수류탄이라면 로마의 햇살은 폭탄 정도의 파괴력을 지녔을 만큼. 7, 8월엔 핵폭탄이 될지도 모르겠다.


신기한 건 햇빛이 무자비하게 따가운 상황에서도 그늘에 들어가면 약간 쌀쌀하다. 한국의 여름은 고온다습이기 때문에 그늘에 들어가도 푹푹 찌는 더위와 불쾌함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지만, 로마는 다르다. 그늘이 완전한 보호막 역할을 한다. 단, 그늘 밖으로 나가면 눈을 뜨지도 못하게 하는 햇빛 때문에 무조건 선글라스를 착용해야 한다. 선크림도 발랐지만,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KakaoTalk_20160503_191029877.jpg
KakaoTalk_20160503_191047290.jpg
DSC03073.JPG


그럼에도 이 곳의 장점을 꼽자면, 그늘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5월에도 눈치없이 쏟아지는 햇빛 덕에 모든 푸른 것들은 그 싱그러움이 배가 되고 오래된 건물들의 벽돌마저 선명함을 갖는다.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에 강렬한 햇빛 그리고 야자수 나무는 로마를 휴양지 느낌이 물씬 나도록 한다.


KakaoTalk_20160503_190219672.jpg 이 곳은 바티칸 근처 성 안젤로 성의 외곽.

내 관념 속의 유럽은 중세 풍의 높지 않은 건물들에 따스한 날씨였다. 내가 생각했던 유럽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오늘에야 ‘진짜 유럽’을 접한 듯 새롭고도 설레는 마음이 피어 올랐다.


DSC03116.JPG
DSC03089.JPG


다음으로는 시스티나 성당.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그려져 있다. 입체적으로 그려진 그림들이 천장에서 쏟아져 내릴 것 같다. 천지창조는 찍지 못했지만.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은 찍었다.


피에타는 사진처럼 정면이 아닌, 하늘에서 예수의 모습을 바라보는 구도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사진의 구도처럼 피에타를 바라봤을 땐 예수보다 오히려 성모 마리아가 작품의 주인공인 듯한 느낌을 받지만, 위에서 바라본다면 철저히 예수 중심적인 작품이란 느낌이 들 것이다. 그의 얼굴이 정확히 하늘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아테네 학당. 아무래도 가운데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인간은 동굴에 갇혀 있고, 현실 세계는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한 플라톤은 하늘을, 만물은 질료와 형상으로 이루어져있다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가르키고 있다. 개인적으로 절대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확답을 내리기는 이르다.


KakaoTalk_20160503_190549671.jpg
KakaoTalk_20160503_190630538.jpg
KakaoTalk_20160503_190943136.jpg
KakaoTalk_20160503_190958539.jpg
DSC03134.JPG


투어의 종착지인 성 베드로 성당. 지금껏 화려하고 거대한 성당들을 많이 봐왔지만, 이보다 크지는 않았다. 내부는 어떠한가. 높은 천장에 하나하나 새겨진 그림들. 게다가 이 곳은 회화가 하나도 없단다. 전부 대리석을 갈아 모자이크 기법으로 만들었다.


2016년은 25년마다 한 번 열리는, 성당의 5번 째 문이 열리는 해인데 그 곳을 통과하면 모든 죄가 씻긴다고 한다. 과거에 면죄부를 팔아 타락했던 기독교 내 어둠의 단면이 떠올랐다. 회개의 정직성이 중요하지 문을 통과하고 말고가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싶다.


성당 내부에는 천국에 가고 싶은 자들의 수많은 참여의 흔적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높은 크기의 대리석 모자이크 그림도 사람들이 각자 대리석을 가져와 붙인 작품이 있는데, 누군가는 그림의 상단에 대리석을 붙이다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마지막 사진, 사우론의 눈같은 장식 중심에는 성령의 상징 비둘기가 있다. 대한민국은 물론 로마의 모든 곳에 떼지어 몰려다니는 비둘기를 보며,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곳에서 성령과 함께 하고 있구나.란 사실을 깨달았다.


KakaoTalk_20160503_191010480.jpg


성당 내부를 보면 볼수록 ‘신’보다는 ‘인간’에 경외감을 갖게 된다. 어떻게 이런 건축물을 만들었을까. 건물의 바닥, 벽면, 천장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성당의 공간에 인간의 노력과 섬세함이 깃들어 있다.


성당을 다 둘러보고 나가려는데 웬 울음소리가 들린다. 고해성사를 하는 방에서 한 여인이 반쯤 쓰러진 채로 있었다. 처음엔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무시한 채 지극히 개인적인 행동을 하는 구나.’싶었다. 나를 포함한 보통의 사람이라면 성당 내에선 정숙을 지키려 할 것이기에 남에게 피해가 될 수 있는 어떤 행동도 삼가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여인의 행동은 개인적인 행동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고 공적인 행동도 아니다. 그건 신 앞에 선 그녀의 종교적 행동일 것이다. '사회'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순간 종교는 도식적으로 단순히 '현실 사회' 속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온전한 그들만의 영역이 존재한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바티칸 투어는 꽤 알찼다. 아니 투어가 알차기 보다는 바티칸이 보고 느낄 게 많은 곳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가장 인상 깊은 건 로마의 풍경이지만. 빛으로 도색된 건물과 나무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경은 아직도 과거 로마제국의 찬란함을 보여주는 듯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유럽기행-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