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마지막 날
어느새 로마의 마지막 날. 이 곳에 왔으면 그 유명한 판테온에는 한 번 들러야 하지는 않겠는가. 일단 라르고 디 또레 알젠티나 역으로 갔다. 역 앞에는 옛 사원 터가 있다. 무솔리니의 지시에 의해 발굴됐다는 이 터에는 지금 수많은 고양이들이 자리를 잡고 저마다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사원 표지판에는 공적 차원에서 길 고양이를 보호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그리고 향한 빵테온. 작은 골목들을 이리저리 지나 발견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건 빵테온의 웅장함보다는 그 앞의 오벨리스크. 로마 가톨릭의 권위가 이집트 태양신을 굴복 시키듯 십자가는 오벨리스크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원래는 이교도의 사원이었으나 비잔틴 황제의 기부로 교회가 됐다는 판테온. 천장 중앙에 거대한 원형 구멍은 판테온의 바닥 혹은 벽면을 비춘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줄기는 판테온에 종교적 영롱함을 더한다. 구조는 파리의 판테온 보다는 단순하다. 한 공간에 각각의 chapel과 무덤들이 있다.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라파엘로의 무덤도 있다. 그가 여기 묻힐 수 있던 이유는 그의 예술성을 종교에 바쳤기 때문일 게다.
파리 판테온과 로마 판테온의 차이라면 ‘승리자의 유무’다. 파리 판테온은 처음엔 루이 15세가 병에서 낫자 성녀 주느비에브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만든 교회였다. 하지만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판테온은 혁명의 영웅들을 안치하기 위한 묘지로 바뀌었다. 왕정복고를 거치면서 다시 교회로 쓰였다가, 빅토르 위고의 장례식 이후 다시 유명인들의 묘지로 돌아갔다. 그 이래로 무덤 안치를 놓고 좌, 우파 간 대립이 몇 번 있었으나, 지금은 양자 간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즉 현재 파리의 판테온에는 종교, 정치의 대립이 모두 녹아있다.
반면 로마의 판테온은 이교도를 완전히 밀어낸 로마 가톨릭의 완전한 승리다. 이교도의 사원이었지만, 현재 판테온의 어떤 설명에서도 이교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사회적으로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순 없지만, 개인적 취향으로는 프랑스의 판테온이 더 마음에 든다.
그리고 올라 간 스페인 광장 언덕. 우려했던 대로 한인민박에서의 피곤이 쌓이고 쌓였다. 오후 두 시쯤 되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결국 언덕 앞 난간에 앉아 휴식을 취했는데 눈 앞의 풍경이 아찔했다. 무서운 일이 생긴 게 아니라 놀랄 정도로 아름다웠다. 햇빛으로 선명한 파스텔톤 건물들이며 푸른 하늘이 어지러운 내 머리를 조금은 풀어줄 정도로.
가만히 앉아 30분 이상을 보냈는데 피부도 따끔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고 느꼈기에 트레비 분수로 향했다. 판테온, 트레비 분수 그리고 스페인 광장 모두 가깝게 모여있어 좋다. 지도를 찾아 길을 가는데, 웬 유럽 할머니 한 분이 지나가던 이태리인에게 길을 묻고 계신다. 할머니의 표정과 짙은 화장 그리고 과감한 의상엔 당당함이 묻어났다.
아직 한국에선 쉽사리 찾아볼 수는 없는 광경이다. 할머니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일이 말이다.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아줌마로서의 삶’은 결혼 이전의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한다. 하지만 문제는 외부에도 있다. 국가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유럽인의 동양인에 대한 계급적 우월의식이 꽤 남아있는 곳이 있다. 몇 유럽 남성들은 혼자 여행하는 동양 여성을 너무 가볍게 본 나머지 만나자마자 손을 잡으려 하고, 자신의 입술을 들이밀며 무작정 하룻밤을 같이 보내자고 위협한다. 이런 사례가 많이 존재해왔고 지금도 발생하고 있다. 예시가 극단적이긴 했지만 그만큼 차별의 뿌리는 아직도 깊게 박혀있다.
걱정과 달리 이번 로마 여행에서는 그 어떤 인종차별도 소매치기도 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이틀 간 남부 여행을 떠난다. 그 곳도 악평이 엄청나던데 과연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