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기행-51

꿈 같았던 하루.

by 래리

뒤셀도르프 호스텔은 최악이었다. 사실 호스텔이 최악이라기 보다는 나와 한 방에 머물렀던 그들이 최악이었다. 같은 공간을 공유한 3일 동안 그들은 항상 새벽 3시 쯤에 시끌벅적하게 방 문을 열었다. 들어와서 자는 것도 아니다. 넷이서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쉴 새 없이 깔깔댄다. 과하게 웃으면서 말해 뭐라 무슨 말이 오가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잠에서 깬 나는 그저 짜증날 뿐이었다.


뒤셀도르프를 떠나는 날도 마찬가지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아침 9시쯤 일어나 조식을 먹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나갈 준비를 마쳤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 체크아웃시간이 다 됐는데도 말이다. 캐리어에 짐을 모두 싸고 나갈 때까지 그들은 일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은 없어도 '식사 예절'만은 철저하다는 영국놈들이었지만, 그들에게 '예의' 따위는 없었다. 마음같아서는 유격 훈련 때처럼 시원하게 소리 한 번 지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 중 한 한명이 ‘노팅엄 포레스트’의 팬이라서. 아마 현지인일게다. 과거 그 팀이 잘나갔다던 시절을 고려하더라도, 젊은이가 자기 몸에 ‘노팅엄 포레스트’ 앰뷸럼을 문신으로 새기는 일은 그쪽 동네 사람이 아니면 시도할 엄두조차 못 냈을 것이다. 이 불쌍한 하부리거 서포터에게 상위리그 서포터가 넓은 아량을 베푼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캐리어를끌고 플릭스버스 타는 곳에 도착했는데 출발 시각까지 한 시간이나 남았다. 어쩌겠나. 하염없이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그런데 멀리서 왠 여성 둘이 다가온다. 손에 정체 모를 팜플렛을 들고 있다. 딱 봐도 전도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다. 무슨 종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나에게 어떤언어를 사용하냐고 물었다.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영어를 사용한다고 답했는데 속으로 놀랐다. 이들은 3개 국어로 전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이갈수록 좋아질 것이냐 나빠질 것이냐 묻길래 나빠질 것이라 했다. 그들은 밝은 미소로 맞는 말이라며 팜플렛을 건넸다. 팜플렛을 읽어 보니 ‘여호와의 증인’이다. 와우. 저 멀리타국 땅에서도 ‘여호와의 증인’을 만나다니. 세상은 정말 좁다. 아니면 ‘여호와의 증인’ 세력이 넓던지!


쉬는시간 포함 6시간의 장거리 이동 중 8할은 잠으로 보냈다. 빌어먹을 영국 놈들이 줬던 엄청난 피로 덕에 뻗어버릴 만도 하다.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하니 좀 개운하다. 역의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버스 타는 곳을 물으니 뒤셀도르프 직원 만큼이나 쌀쌀하게 답변을 한다. 그리고 영어를 잘 못하셔서 그런지 나와 대화하기를 상당히 귀찮아 하셨다.



그래도 역 밖에서 뒤셀도르프처럼 친절한 독일 여성에게 도움을 받았다. 하이델베르크에서 묵게 될 호스텔은동물원 옆인데 이 곳 동물원은 입장을 하지 않고 이렇게 바깥에서도 몇몇 동물들을 볼 수 있다.(심지어 내가 묵는 방에서는 코끼리도 보인다.)


내부도깔끔하고 시설도 좋은데 취사가 금지돼있는 호스텔이다. 정말 아쉽다. 이번에는방을 같이 쓰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맘에 안 들면 당장 방을 바꿔달라고 말할 것이다.고 마음 먹었으나, 나와 같이 방을 쓰는 독일인은 정말 착했다.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중이고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고 있단다. 영어 실력이 너무 유창하지 않아 더 정겨웠다.



그리고 여행 시작. 처음으로 향한 곳은 선제후 박물관. 별 기대안하고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구성이 알차다. 주제에 맞게 각 시대별 유물들을 모아 놨는데, 그릇, 도자기, 조각부터회화까지 다양하다. 한 공간은 인물의 초상화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반가운 얼굴들이 꽤 있었다.


뒤셀도르프역사박물관에서 봤던 요한 빌헬름, 그리고 그의 두 번째 아내였던 안나 마리아 루이사까지. 초상화 별로 간단한 설명이 있었지만 초상화가 너무 많아 다 읽기는 포기했다.


17세기 golden age 때의 네덜란드 회화들과 하이델베르크 출신 미술가들의 그림들이 상당히 많았다. 하이델베르크는 성, 산 그리고 강물이 어우러진 소박한 풍경이 장관이기에미술가 뿐만 아니라 괴테 같은 문학가들도 사랑했던 장소다.


박물관을한 시간 반 정도 봤을까. 갑자기 너무 졸리다. 쏟아지는 졸음에 눈 앞에 의자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나름 한쪽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긴 척’하면서 졸았다. 나의 자세가 아무 효과도 없었다는 듯 몇 분 뒤 직원 분께서 "밑 층에 내려가면 누워서 잘 수 있는 곳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really?” 기뻐서 되물은 게 아니라 정말 신기해서 물었다.


계단을 내려가니 정말로 고대 유물들 사이에 뜬금없이 얇고 붉은 매트릭스의 침대 3개가 놓여져 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 냉큼 누웠다. 여기서도 10분쯤 눈을 붙였을까. 누군가의 발소리에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들었다. 또 그 직원이었다. 그는 밝은 미소로 잠을 자고 일어난 뒤엔 에스프레소가 좋다면서 입구에서 마실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허허.



에스프레소는 생략하고 박물관을 나왔다. 이제 하이델베르크 성을 갈 차례. 그런데 점심 먹을 시간이 애매하다. 성을 다 보고 점심을 먹기엔 너무 늦을 것 같다. 역시 이럴 땐 값도 싸고, 포만감도 높고, 거기에 휴대성까지 좋은 케밥이 정답이다. 팔뚝만한 케밥을 하나 사들고 성으로 향했다.



성에오르고 나서야 하이델베르크가 산과 강 그리고 성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 아니 마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성에서 바라보는 구 시가지는 마치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보는 피렌체의 모습과 비슷했다. 일관된 지붕 색이며 산에 듬성듬성 박혀있는 집들까지도.



티켓을사서 성 내부도 들어갔는데 딱히 볼 게 많진 않다. 그래도 흥미로웠던 건 독일 약학의 발전 과정. 처음에 연금술에서 시작했던 작업이 병을 치료하는 약을 만드는 작업으로 변화했다. 16세기 이래로는 Christ의 이미지를 약사로 표현한 예술 작품들도있다. 영혼의 치유와 몸의 치유를 연관시켜서.



그리고 거대 술통. 원래는 십일조로 농부들에게 걷은 포도주를 모으기 위해 만들었단다. 모인 술은 성 내에서 쓰고. 술통을 보니 맥주가 땡긴다. 성은 충분히 봤으니 이제 구 시가지로 내려가자. 독일에서는 브랜드없이 음식점에서 직접 만드는 맥주가 맛있다고 들었다.


너희가 직접 만드는 맥주가 있냐고 물어 주문한 맥주. 맛은 네덜란드의 바바리아와 비슷하다. 괜찮았다. 여유롭게 광장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는데 와이파이가 잡힌다. eduroam은 희망이다.


꿈 같았던 하루였다. 하이델베르크가 꿈에 나올 법하게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진짜로 너무 졸려서. 이렇게 아름답고 낭만적인 공간에서의 하루 중 졸음과의 사투가 꽤 큰 비중을 차지했다니. 그럼에도 이제 얼굴도 잊힌 영국놈들을 비난하기 보다는 앞으로의 일들만 신경쓰기로 결정.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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