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기행-50

뒤셀도르프 첫 날.

by 래리

시끌시끌한 소리에 눈을 떴는데 새벽 3시 반이다. 망했다. 잠결에 들리는 저 투박한 억양으로 판단했을 때 스페니쉬 인 것 같다. 아니 중국인 같기도. 일어나서 그들에게 조용하라고 말을 하는 액션을 취한다면, 다시 잠을 청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아침 9시까지 정신은 깨있고 몸은 잠들어 있는 상태로 뒤척였다. 조식까지 먹고 방에 돌아오니, 그제서야 소음제조기들은 잠에서 깨 씻을 준비를 한다.


내 예상과 달리 그들은 영국인이었다. 저 각진 발음으로 영어를 끊임없이 뱉어내는 건 영국인들 밖에 없다. 그 중 한 명이 팔에 잉글랜드 국기 문신을 한 것을 보고 확신했다. 점심으로 먹을 굴소스 볶음밥까지 준비를 하니 어느덧 시간은 오전 11시. 다행히 이 곳의 박물관들은 모두 11시부터 오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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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곳에 Königsallee이 있길래 일단 그 곳을 향했다. 이 짧은 수로는 뭘까. 운하도 아니고 호수라고 하기도 애매한. 뭐 주변의 푸르름과 잘 어우러진 멋진 공간이란 건 확실하다.


Königsallee을 거쳐 다음은 stadtmuseum으로. 이 곳은 ‘뒤셀도르프 역사박물관’쯤 된다. 가는 길에 다양한 화랑들이 보인다. 특히나 일본 인상파 그림이 눈에 띈다. 수많은 스시집과 일본 화풍의 그림들로 추측하건 데 유럽인들은 일본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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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착한 stadtmuseum. 원래 입장료는 4유로지만 학생 할인을 받아 2유로에 입장했다. 이태리에서 박물관 한 곳당 17유로씩 내야했던 상황이 떠올랐다. 심지어 학생할인조차 없었던.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뒤셀도르프는 1150년부터다. 그리고 1288년에 Graf adolf von Berg가 Worringen 전투 이후 마을의 지위를 승격시키고 도시를 발전시켰단다.


KakaoTalk_20160616_170148117.jpg 고대 전시실은 이 정도 크기면 족하다.


박물관은 시대를 반영하는 옷, 그림, 식기, 조각 등 다양한 물건들로 채워져 있다. 무미건조하게 역사를 훑던 중 17세기 역사에 와서야 발걸음 속도가 늦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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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셀도르프 박물관인데 뜬금없이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3세 초상화가 있다. 알고 보니, 그의 딸 Anna Maria Louisa가 Johann Wilhelm von neuburg의 둘 째 부인이었다. 역시 결혼을 통해 가문의 위상을 세우고자 한 건 동서고금 구분이 없다. 모두가 평등하다고 믿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린 정말 평등할까. 모두가 동등한 기회를 부여 받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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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또 뜬금없이 나폴레옹의 두상과 전신 그림이 있다. 당시 나폴레옹의 통치 하에 있었던 뒤셀도르프 영토는 베르그 대공국으로서 많은 혜택을 봤다. 사실 나폴레옹은 뒤셀도르프에 딱 한 번 방문했다. 그 때 뒤셀도르프를 발전시킨다는 선언을 했다는데, 실제로 사회적 계층을 막론하고 친프랑스적 태도가 퍼져 나갔다.

다음은 Maximilian friedrick weyhe와 Adolf von vagedes가 등장. 그들이 뒤셀도르프를 ‘Garden city’라는 별명을 얻게 만들었다. Königsallee와 독일 첫 번째 공립 공원은 그들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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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1세 멸망 이후 뒤셀도르프는 프러시아의 Friedrick Wilhelm 3세에 의해 점령됐다. 처음엔 도시의 가톨릭들이 개신교로 구성된 프러시아 군대와 공공 서비스를 거부했다. 그런데 프리드릭 왕자가 과거 뒤셀도르프의 영광스런 지위를 불러일으켜 가톨릭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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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뒤셀도르프는 라인의 아테네라는 별명을 얻으며 ‘Art city’로 변모했다. 로얄 프러시안 아트 아카데미가 뒤셀도르프에 세워진 후에 도시는 미술 분야에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으며, 음악까지 손길을 뻗었다.


아마도 뒤셀도르프가 다른 나라들에게 여러 번 통치 당한 이유는 지리적 요점 때문인 것 같다. 도시 옆에 흐르는 널찍한 라인강은 무역의 중심으로 발전하기 좋은 조건이었고, 실제로 뒤셀도르프는 metropolis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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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시대 보다는 인물 소개 중심의 전시실. Franz Monjau. 뒤셀도르프 아트 아카데미에서 4년간 공부. 아내와 공산주의자가 됐다. 1945년에 살해당했으며 그의 작품들은 폭탄으로 인해 대부분 소실됐다. 위의 두 작품은 고갱 느낌이 난다.


2차 세계 대전으로 폐허가 되고 영국에게 점령됐다. 영국은 비-나치화작업을 통해 공산주의자까지 색출해냈다. 그리고 그들은 "북 라인 강 베스트팔렌의 주도는 뒤셀도르프다." 선언하고 뒤셀도르프 재건축 작업에 돌입했다.


뒤셀도르프는 가까운 역사에서만 프랑스, 영국에게 통치됐다. 하지만 그들은 박물관을 통해 통치 당했다는 굴욕감을 드러내기 보단 자신들이 누린 이득을 설명하고 있다. “일본의 도움 없이 대한민국의 근대화는 없었다, 일본은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도왔다.”고 주장하는‘일뽕’에 취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뒤셀도르프와는 다른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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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쯤 박물관을 나섰는데 비냄새가 도시 전체에 퍼져있다. 아직 비는 내리지 않는데 이렇게 강렬한 냄새를 풍길 줄이야. 싶었는데 5분도 안되 비가 내린다. 오늘의 여행은 이쯤하고 호스텔로 돌아가는데 아침에 봤던 마켓이 아직 열려있다. ‘독일’하면 소시지 아니겠는가. 마켓에서 두 종류의 소시지를 구입했다.


ALDI에서도 장을 보고 호스텔로 돌아가는데 이상하다. 아니 이상하다기 보다는 신기하다. 수많은 횡단보도에서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짧은 횡단보도에서도 모두 신호를 기다린다. 물론 일반화할 순 없지만, 지금껏 봐왔던 그 어떤 도시에서도 이런 모습은 보지 못했다. 특히나 더블린에서는 경찰이 신호가 빨간 불 임에도 얼른 지나가라고 손짓했는데 말이다. 역시 EU의 맹주 독일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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