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기행-49

독일로

by 래리

학기가 모두 끝났지만, 아무 것도 끝나지 않은 느낌이다. 유럽을 떠나는 그 순간이 되어야만 무언가 마무리되는 기분이 들 듯했다. 아마도 귀국 전까지 긴 여행이 무려 4번이나 남았기 때문. 그 여행들을 위한 숙박, 항공 등 예약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예약해야 한다. 학기는 끝났지만 과제는 여전히 산더미다.


독일로 17일 간의 여행을 떠나는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오전부터 7월에 떠날 여행의 숙박을 예약하느라 노트북 앞에서 몇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당장 떠나는 독일 여행의 숙박도 마무리하지 않았건만, 다른 여행의 예약부터 서두르는 이유는 7월 중순이 유럽여행의 극성수기일 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오시기 때문.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오실 어머니를 10인실 도미토리 룸으로 안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인 민박 트윈룸 가격을 찾아보니 가차없다. 특히나 같은 지역에 밀집해 있는 한인 민박들은 담합이라도 한 듯 모두 1박 당 100유로. 그 잠자리의 퀄리티를 알기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식이야 재료를 사다 직접 만들면 될 일. 여행 중 도시락 싸는 일은 익숙하다. 결국 한인 민박을 제외한 호스텔들을 찾아 힘겹게 예약을 마쳤다.


어느덧 오후 4시. 부킹닷컴 앱에 예약한 호스텔, 호텔들을 추가하는 중 문자 두 통이 나의 작업을 방해했다. 열어보니 플릭스버스에서 왔다. 교통체증으로 오늘 도르트문트행 버스가 취소됐으니 환불 받으란다. 아, 왜 항상 여행을 순탄하게 출발하는 날이 없을까.


그럼에도 딱히 당황하거나 짜증나진 않았다. 뒤셀도르프는 네덜란드와 가깝기 때문에 분명 기차로도 갈 수 있을 터. 태연하게 이런 생각이 떠오른 건 아마도 다사다난한 경험으로 단련된 멘탈 덕일 게다.


찾아보니 역시나 독일 행 기차가 있다. 벤로에서 갈아타야 하는데 그 곳에서 뒤셀도르프 행 티켓을 새로 사야한다. 일단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했다. 아직까지 여행갈 짐조차 싸지 않았다. 네덜란드 만큼이나 독일 날씨도 변덕스러운 곳이 많다고 들었기에, 다양한 두께의 옷들을 챙겼다. 호스텔에서 요리할 쌀과 각종 조미료들까지 캐리어에 넣으니 얼추 짐을 다 싼 듯하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서는데 비가 조금 내린다. 하늘은 맑지도, 흐리지도 않았기에 저번 암스테르담처럼 비가 쏟아지진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벤로 행 열차를 탔는데, 그 한 시간의 여정이 참 시끄러웠다. 조울증 걸린 하늘이 울다, 웃다를 반복했기 때문. 힘차게 울어댈 때 기차에 튕기는 눈물 소리는 어찌나 강력한지. ‘설마 독일 여행 중 비가 오겠어.’ 라는 안일한 기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다행히 벤로에 도착하니 하늘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가시지 않은 회색 낯빛을 보니 긴장의 끈을 놓을 순 없었다. 일단 서둘러 벤딩 머신에서 뒤셀도르프 행 티켓을 샀다.


이 동네는 왜 비만 내리면 이렇게 추워질까. 6월 15일, 대한민국은 30도를 돌파한 지역도 있다는데. 필자는 지금 두꺼운 맨투맨티에 두꺼운 남방을 입고 있다. 불어오는 바람은 이중의 두꺼운 옷들을 뚫고 몸 속으로 파고 든다. 춥다. 6월 15일 옷을 껴입은 나는 추위에 웅크리고 있다.


기차를 타고 몇 분이나 흘렀을까. 어느새 역 이름이 독일어로 변해있다. 나무들은 네덜란드보다 정형화돼있지 않아 보이지만, 하늘 색은 네덜란드와 비슷하다.


기차에 탑승한 지 한시간 만에 뒤셀도르프에 도착했다. 막상 역에서 내렸는데 막막하다. 갤럭시 J1은 오프라인에서 GPS를 정말 못 잡는다. 어쩌겠나,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는 수 밖에.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732번 버스 타는 곳을 물었다. 남성 직원은 차가운 얼굴과 목소리로 답변 했다. 왠지 모르게 ‘독일인’하면 차가운 이미지가 있다.


버스 티켓은 버스 안에서도 살 수 있다기에 맨 몸으로 버스를 탔다. 버스 기사님께 “티켓을 사고 싶다. 그런데 50유로 지폐 밖에 없는데 어떡하냐.”고 물으니 자신은 바꿔줄 거스름돈이 없으니, 뒤에 있는 승객에게 말해 돈을 바꿔 오란다. 그도 인포메이션 직원만큼이나 무심하게 대답했다. 이 사소한 위기에 혼자 여행하는 동양인의 마음은 살짝 위축됐다. 어쩔 수 없이 바로 뒤에 있던 승객에게 부탁을 했는데, 환한 미소로 돈을 바꿔주었다. 그녀 덕에 나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심지어 내가 내릴 정류장에 도착하자 친절히 알려주기까지 했다. 정류장에서 내려 호스텔을 향해 걷는데, 생각보다 많이 걸었음에도 호스텔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멈춰서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GPS는 여전히 먹통. 결국 또 지나가는 독일인에게 양해를 구할 수 밖에.


활기차 보이는 독일인 여성에게 물었는데 조금만 더 가면 호스텔이 나온다고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그러면서 어디서 왔냐길래 South Korea에서 왔다고 했다. 그녀는 밝은 미소와 함께 “Wow, welcome to Germany”라고 말하며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친절함이 넘치는 독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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