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기행-55

베를린

by 래리

장 시간 버스 이동 끝에 도착한 베를린. 장 기간 독일 여행은 한인민박에서 매듭짓기로 결정했다. 로마 한인 민박에서 심각하게 데였기 때문에 이번엔 꽤나 철저하게 사전조사를 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네이버 블로그 검색을 통해. 뭐 블로거들의 입장만 듣는 게 편파적일 수는 있지만 로마 한인 민박의 트라우마가 작동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취합해 판단했다. 선택은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가장 블로거들의 언급이 없던 곳으로.

오후 7시. 버스 터미널에서 멀지 않았기 때문에 황금빛 햇빛을 맞으며 캐리어를 끌고 민박으로 향했다. 역시나 한 국가의 ‘수도’라고 해서 특별할 건 없다. 유럽선진국 특유의 한산하고 여유로운 느낌이 지배적일 뿐. 그 사이를 헤쳐 민박집에 다다랐다.


운 좋게도 내가 오기 전 날 장기간 투숙하던 분이 개인실에서 체크아웃해 내가 그 곳을 쓰게 됐다. 뮌헨에서의 안락함이 잊힐 정도로 깔끔한 방이었다. 그리고 저녁 준비를하는 도중 또 다른 장기 투숙자를 만났다. 독일로 유학을 준비하시고 계시고 전공은 음악이다. 네덜란드와 독일이 음악으로 유명하다는 얘기가 얼핏 떠올랐다. 베를린에서 집을 구하기 너무 힘들어 한인 민박에서 집을 구할때까지만 머무는 중이시다. 베를린과 에어비엔비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글들이 떠올랐다. 서울 못지않게 베를린도 집값 문제가 심각하다.


이 한인민박은 총 3개의 건물로 구성돼있다. 조식을 제공하는 식당 하나, 숙박 건물 두 개. 내가 머무는 건물은 식당까지 걸어서 10분 정도 걸린다. 상당히 귀찮은 일일수도 있으나 아침 먹기 전 산책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다지 피곤한 일은 아니다.


아마도 베를린의 기억 중 좋은 추억으로 남을 만한 몇 장면들이 이 식당에서 만들어졌다. 우연찮게 한 중년의 남성과 같은 테이블에서 매일 식사를 했다. 사실 첫날만 우연이었지 둘째날부터는 당연한 듯 같이 앉았다. 그 분은 독어과 교수로서 연구때문에 잠시 독일에 오셨단다. 그리고 바로 따님과 유럽여행을 하신다고. 따님은 무려 나랑 동갑이다.


이 교수님과의 대화가 참 재밌었다. 대화는 내가 묻고 교수님이 답하고 내 의견을 첨가해 다시 묻는 식으로. 아들뻘 학생의 피드백이 썩 마음에 드셨는지 예시를 들어가며 긴 설명도 해주셨다. 이를테면 '아가씨'란 단어의 의미 변화. 사회적으로 쓰이는 용도 말이다.


아침 식사 후 처음으로 향한 곳은 베르그루엔 미술관. 소수 정예로 오직 피카소, 마티스 그리고 클레이의 작품들로 구성된 미술관이다.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아 짧은 시간 안에 둘러볼 수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마티스의 <Dragon> 본인의 이름 한 가운데 위치한 글자가 ‘용’이기에 남다른 애착이 갔다. 거기다 가장 좋아하는 보라색이 드문드문 박혀 있어서. 교환학생 친구들은 보통 나를 ‘Dragon’으로 부른다.


아무래도 ‘베를린!’하면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베를린 장벽 아니겠는가. 바로 그 곳으로 향하지는 않았지만 냉전시절 장벽 동쪽 동네의 상황을 설명하는 동독박물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유럽에 있는 동안 구 사회주의 국가를 한 곳도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이 곳에서 달래려 했는데 입장 순간에 당황부터 했다.


베르그루엔에서 구입한 베를린 뮤지엄 패스로 이 곳을 입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게 무슨. 서독 박물관과 동독 박물관을 달리 취급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에 화가 났지만, 박물관의 퀄리티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했다. 그 때 왜 박물관 직원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박물관은 다양한 액티비티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인지 어린 아이들을 대동한 가족단위의 방문객들이 가장 많았고 견학 차 온 중, 고등학생들의 수도 상당했다. 그렇다고 설명의 디테일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Collectivism을 기르기 위해 초등학교 아이들이 받아야 했던 Potty Break 훈련이 인상적이다. 자기가 속한 그룹의 전원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모두 마칠 때까지 아이들은 앉아있는 채로 기다려야 한다. 훈련소 때 전우조와 군대의 규율도 이와 비슷하다. 21세기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 동독의 잔재가 버젓이 남아있다니!

동독 학생의 10%만이 대학에 갔던 사실도 흥미롭다. 현재 한국의 학생들은 80% 이상이 대학에 가는 데 말이다. 아주 비싼 등록금을 내며. “대학을 나와야 사람 취급 받는다.”라는 무식한 말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성공의 길이 아주 제한적이기 때문에.


동독에는 대학생 중 우수학생을 선발하는 제도도 있었다. 경쟁을 통해 능률을 향상시키려는 게 목적인 듯하다. 아무리 동독이라도 경쟁의 뿌리까지 제거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작업장에서도 개인, 집단 별로 성과에 따라 메달을 지급했다. 경쟁의 승리자가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패배자’에 대한 처우다.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1등 만능주의, 결과 중심주의는 현재 사회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전국민적으로 결과만 좋으면 과정의 원칙, 윤리, 법을 어겨도 상관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이번 올림픽 박태환 선수 문제를 살펴보자. 그는 운동 선수로서 금지 약물을 복용했기에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들에게 위의 가치들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결과 그리고 애국이 그들의 머릿속에 법과 윤리보다는 깊이 박혀있다.


패배자, 약자에 대한 처우도 생각해보자. 근대화 과정에서 노동자는 ‘조국의 근대화’란 명분 아래 짓눌렸고, IMF 때도 지금도 기업이 위태로우면 가장먼저 꺼내는 카드가 ‘구조조정’이다. 원청 하청 문제는 말 할 것도 없다. 신자유주의의 물살과 맞물려모든 문제의 책임을 개인으로 돌리는 비열한 풍토도 문제다.


두서없이 감정적으로 나열했지만 위의 문제들은 모두 대한민국 사회의 치명적인 독이다. 해독을 위해 다양한 단체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쉽게 중화될 독이 아니라 슬프다. 현 정부는 아직도 70년대를 향한 향수에 젖어 있는 것 같아 더 슬프고. 언제나 글의 마무리가 슬프다는 푸념으로 끝나는 경우가 잦은 것 같아 또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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