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뉘른베르크의 마지막 밤에 미국인 두 명이 새로 들어왔다. 그들과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친해졌다. 그들의 눈에서 장난끼와 유쾌함이 넘쳤기 때문. 재미있는 밤을 보냈으나 문제는 다음 날이다.
비몽사몽, 버스에서 제대로 눈을 붙이지도 못한 채 뮌헨에 도착했다. 뉘른베르크에서 뮌헨까지 버스로 3시간이 안 걸렸다. 뮌헨의 숙소는 친구(다이애나)의 친구 방을 빌리기로 했다. 방 주인이 잠시 이탈리아로 여행 가 있는 동안만.
즉 방 열쇠는 다이애나가 내게 건네 주기로 했다. 친절히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까지 나왔다. 그녀는 독일인인 반면, 나는 독일에 대해 일자무식했기에 일단 그녀가 하자는 대로 했다. 먼저 향한 곳은 내가 묵을 곳이 아닌 또 다른 친구의 집. 다이애나의 IBM 동료인데 오늘은 재택근무날이라고 한다. 성공적인 ‘일-학습 병행제’ 시스템이 부럽다.
셋이 한 테이블에 앉아 타자를 두드리던 중 내가 물었다. 독일 학생들은 초등학교 졸업 후 학습 내용이 상이한 3개의 중학교로 각각 진학하는데 그에 따른 사회적 차별은 없는지. 우리나라같은 경우는 사립유치원, 국제중, 특목고, 명문대 등 학생이 거치는 모든 교육기관이 계급화가 이루어졌고 그로 인한 사회적 차별이 심각하기에. 오죽하면 ‘과잠바의 사회학’이란 표현까지 나왔을까.
독일 친구는 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 답했다. 물론 김나지움에 다니는 학생이 레알슐레나 하우프트슐레의 학생들을 ‘덜 영리하다고’ 무시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들은 지역적 축구 모임 같은 활동을 통해 서로 계속 교류를 한다. 학교는 달라도 같은 집단 내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을 심하게 차별하긴 어렵지 않을 것이냐고 오히려 그녀가 나에게 되물었다.
생각해본 결과, 지방에서 공부 깨나 한다는 우리 나라 학생들은 거의 서울로 모인다. 그러면서 고향과 그 곳의 인간 관계를 잃는 듯 보이지만, 외로운 타지살이 때문에 그것들이 더 강하게 묶일 때도 있다. 한국의 차별 문제는 학창 시절 정기적 모임으로 생기는 연대감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성공의 가짓수가 너무도 적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즘 시대에 ‘성공’이라 하면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일이다. ‘좋은 직장’의 개념은 변하고 있지만 소수의 직군이란 점과 ‘좋은 대학’을 거쳐야만 그 곳에 도달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사실은 변함 없다.
더 큰 문제는 대한민국에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성공'하지 않으면 집을 사고, 자식의 양육비 및 교육비를 책임지고, 노후까지 대비하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이란 점이다.
독일의 경우 ‘마이스터 제도’가 있다. 굳이 좋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한 가지 기술을 연마해 그 분야의 장인이 되는 시스템이다. ‘장인’들은 사회적으로 많은 인정을 받는다. 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임금 격차가 그렇게 크지 않다. 독일은 좋은 대학이 ‘좋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끼치는 영향력이 우리나라에 비해 작다. 역사적 토대도 없는 독일식 장인 제도를 맹목적으로 수용할 필요는 없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극심한 임금 및 복지 수준 차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절실하다.
한국 생각에 잠겨 있다 그녀들의 업무가 끝나 밖으로 나갔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않고 뮌헨에 도착했는데 그들도 뮌헨을 잘 모른다. 어떤 가게 하나를 찾는데 이리저리 헤매고 갔던 길을 되돌아가는 등 총체적 난국이었다. 사실 다이애나의 고향은 프랑크푸르트. 뮌헨은 일 때문에 잠시 머무르는중이고, 6월이 지나면 프랑크푸르트로 돌아 간다. 중요한 건 당시 내가 무척이나 배고팠다는 점이다. 너무 배고픈데 따가운 햇빛을 맞으며 이곳저곳 헤매고 다니니 머리가 살짝 어지러웠다.
그렇게 열심히 거리를 뒤져 도착한 곳은 아이스크림 가게. 맥주 맛 아이스크림이 아주 유명한 곳이란다. 나는 빈 속에 아이스크림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일에 난생 처음 온 동양인에게 독일만의 특별함을 소개하고자 한 그들의 호의를 거절할 순 없었다. 아니 돈은 내가 냈으니 ‘그들의 권유 혹은 강요’정도가 맞겠다.
빈속에 아이스크림을 꾸역꾸역 집어 넣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다이애나가 셀카를 너무 많이 찍는다. 거의 10분 당 한 장씩. 배고프고 어지러운데 핸드폰 카메라를 향해 썩은 미소를 날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English Garden을 가는 길에 브리또 가게를 발견해 허기를 달랬다. 공원 근처에 다다르니 사람들이 거의 맥주 병을 하나씩 들고 있다. 한국에서는 길을 걷는 중에 병나발 부는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 쉽지는 않은데 말이다.
공원이 상당히 큰 편인데 신기한 건 공원 중간에 냇가처럼 물이 흐르는 곳이 있다. 친구에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바람에 비해 유속이 상당히 빨라 자연적이지는 않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 곳을 즐긴다는 사실만이 확실하다.
IBM동료 셋이 더 모였다. 총 5명의 독일인에게 둘러싸였다. 내가 영어로 대화를 리드했어야 했는데, 너무 피곤해서 말을 하기가 싫었다. 자연히 그들은 독일어로 대화했고 그 순간 처음으로 한국이 그리웠다. 6개월 간의 교환학생 기간 중 처음으로.
그들과는 의미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 일단 내가 묵을 방으로 당장 가고 싶었다. 다이애나의 친구 집에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불쌍한 캐리어를 끌고 나의 방으로 향했다.
구글맵 지도와 위치가 달라 조금 애먹었지만 어쨌든 무사히 도착했는데, 빌라 앞에서 파티가 한창이다. 아마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인가보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얼른 파티에 참석하라고 했지만 너무 피곤해 오늘은 그냥 쉬겠다고 했다. 그래도 그들이 어디서왔냐고 묻길래 “South Korea”고 답했더니, 여기도코리안 한 명이 있단다. 순간 한 여성분이 “저 한국에서 왔어요.”하고 손을 번쩍 들었다.
오늘 하루 정말 한국인이 그리웠는데 여기 한국인이 있다니. 당장 파티에 참석해 대화하고 싶었지만 그럴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 방은 정말 좋았다. 드디어 호스텔 도미토리룸을 벗어나 혼자 편하게 쓸 수 있는 방에 입성했기에. 일단 자자.
다음 날도 다이애나와 함께 뮌헨을 돌아다니기로 했는데 벌써부터 불안하다. 첫 날을 너무 힘들게 보낸 탓에 혼자 다니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지만 오늘은 어제처럼 피곤하지 않았고 그녀와 단 둘이 만나기에 용기를 내 집으로 초대했다.
내가 만난 모든 외국인들이 참치마요 주먹밥을 정말 좋아했고 다이애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요리를 어머니께 꼭 만들어주고 싶다길래 레시피도 알려줬다. 꼭 성공하길 바란다.
점심을 먹고는 뮌헨의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자연과학 박물관도 가고 잔디에 앉아서 맥주도 마시고. 여유로운 하루였다. 저녁은 학센을 먹었다. 독일에 왔는데 한 번은 먹어봐야 할 것 같아서. 학센은 족발을 오븐에 구운 독일의 전통 요리다. 족발을 먹는다면 한국인들도 거부감 없이 쉽게 도전할 수 있는 메뉴.
맛은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이탈리아 요리를 접할 때 만큼의 감흥도 없었다. 저녁식사를 마치자 다이애나가 자신의 친구들이 있는 곳에 또 가자고 한다. 아, 어제의 악몽이 되살아났지만 30분 정도만 있다 집에 갈 예정이라기에 떨떠름하게 승낙했다.
또 IBM의 노동자이자 학생인 친구들 모임이었다. 10명 정도가 있었는데그 중 절반은 그녀도 처음 보는 얼굴이란다. 어제와 달리 한 명 한 명과 긴 대화를 나눴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두 시간 이상이 흘러있었다. 30분만 머문다는 약속이 깨지면 어떤가. 모두들 파티를 즐기고 있고나는 여행 중인데 말이다.
본격적으로 술을마시기 시작하니 한국의 술게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어떤 게임을 알려줄까 고민하다 쉽고 간단한 눈치게임을 알려주기로 결정. 그런데 생각보다 설명이 쉽지 않다. 내가“sense game”과 1을 외치는 순간 모두가 동시에서로 다른 숫자를 말하더라. 숫자가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가야 하는 룰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부족한 영어 실력에 유튜브 동영상까지 동원해 그들을 이해시켰다. 다들 즐거워해 다행이었다.
술 게임 인트로도 알려주고 싶어 영어로 직역해 소개했는데, 다들 동작을 너무 부끄럽게 여겨 시도할 엄두를 못 냈다. 결국 독일인들과 술 게임 인트로를 즐기지는 못했다. 한국에서 술마실 때도 술 게임을 안 한지 너무 오래되어 그 분위기가 그리웠나 보다.
즐겁게 술을 마시는데 남녀 한 쌍이 자리를 비운다. 화장실을 가며 보니 깊은 대화를 하고 있다. 아마 둘 중 누군가가 흑심을 품고 있는게 분명하다. 둘 다 일지도모른다. 한국 술자리에서도 몇 번씩 봐온 광경이다. 낯선 곳에서 이런 익숙한 광경을 보자 웃음이 났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3시. 그런데 다이애나가 다른 파티를 가자고 한다. 결국 방금 전 소개했던 남녀 한 쌍과 함께 파티를 가기로 결정. 친구도 나에게 비슷한 말을 했다. “저 둘이 서로 좋아하는 것 같아.” 하지만 내 눈엔 여성의 태도가 방어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이렇게 답했다. “여성이 너무 방어적이라 아마 저 남자 실패할 것 같아.”
야간 트램을 찾아 한참을 헤매다 1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파티는 못 가고 각자집으로. 그 전에 내 예상대로 여성은 남성을 떠나 먼저 집에 가버렸다. 남성은 나와 다이애나와 같은 버스를 탔다.
너무 늦은 새벽에 돌아온 탓에 다음 날은 푹 쉬었다. 너무 쉰 탓에 독일의 유로 축구 경기도 놓치고 말았다. 독일인들의 축구 사랑을 알기에 그들의 열기를 날것으로 느끼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마지막날이라 친구가 집 근처로 와 저녁을 먹었다. 그녀는 독일 국기를 망토처럼 두르고 있었고, 볼에는 독일 국기를 그렸다. 식사를 하며 독일 국기를 선물로 받았다. 다이애나도 반드시 한국에 놀러 올 것이라 했다. 하지만 그전에 내가 유럽에 한 번 더 가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 보니 첫날만 힘들었지 뮌헨에서의 모든 순간이 좋았다. 유럽 선진국 도시 마다 느껴지는 여유로움과 사람들의 친절함까지.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다이애나에게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