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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Aug 24. 2016

간사한 마음

비정규직 양산을 비난하면서도 그것에 참여하는.

 졸업을 한 학기 앞두니 당장 취업 전쟁에 뛰어들기가 무서워 휴학을 했다. 그간 읽지 못했던 책들도 읽고, 청강도 하고, 필수 스펙(토익, 한국어능력시험)도 만든다는 핑계로. 나중에 ‘대학 때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무언가를 못했다!’라는 푸념을 늘어놓고 싶지 않기도 했고.


 그러다 우연히 모 방송사의 인턴기자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서류 전형에 합격해 면접까지 봤는데 결과는 탈락. 면접의 경쟁률은 2:1정도라고 들었다. 선택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가 같은 수의 두 집단으로 나뉘었다. 나는 선택 받지 못한 쪽에 들었던 것이고.


 애초에 인턴을 고려해 휴학을 결정한 건 아니니 내 휴학 기간의 계획은 원안으로 돌아간 셈이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고 화도 났다. 면접 끝나고 나온 앞 조와 뒤 조의 얘기를 들어보니 김영란법, 사드, 북핵 문제부터 취재하고 싶은 아이템, 지원하고 싶은 부서까지 질문이 내가 속한 조보다 훨씬 다양했기때문.


 우리 조는 왜 아무도 저런 질문들을 받지 못했을까. 이유는 면접관분들만이 알 게다. 탈락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사실을 앎에도 오늘만은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억누르기 싫었다. 내가 면접을 본 사실을 아는 소수의 친구들에게 신세한탄을 했다. 더욱이 어제 읽은 '논문「법정근로시간 단축의 효과와 의의의 재검토」(40시간 노동이라는 제도적 신기루)의 리뷰'는 나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서류 전형에 통과한 뒤 생긴, 합격을 향한 간절한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비정규직으로 궂은 일을 돌려 막는 나쁜 놈들.’ 마음 속으로, 육성으로도 몇 번은 외쳤다. 나는 회사를 ‘거의’ 악마 취급했다. 극단적 이데올로기에서처럼. 그 인턴이 대학생 시간을기준으로 ‘방학-학기-방학-학기’로 분기 당 한 번씩, 1년풀타임으로 뽑힌다는 사실을 알자 분노가 더했다. ‘이거 완전 돌려막기구만!’


 입으로는 온갖 불만을 내뱉으면서 손은 어느새 다른 인턴 공고를 찾고 있다. 내 깜냥의 수준이다. 이번엔 모 신문사의 오피니언 팀에서 대학생 인턴을 한 명 뽑는다는 공고를 발견. 이곳도 분기 당 한 번씩, 한 명씩 계속해서 인턴을 뽑는다. 같은 방식으로 화를 표출했다. 게다가 이 곳은 인턴보다는 아르바이트 느낌이 강하다. 공식 홈페이지 모집에는 이 공고가 없다.


 인턴으로 있는 동안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겠냐마는 패배자가 이런 말을 하니 우스울 뿐. 비정규직 관련 논문 리뷰를 보고는 회사에 대한 분노가 순간적으로 타올랐으나 금새 시들어버렸다. 어짜피 나는 다음 방학 인턴 모집때 또 지원할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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