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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Sep 04. 2016

침묵

3년 동안 변하지 않은 자신을 탓하며. 

 콜록콜록 수준이 아닌 쿨럭쿨럭하는 기침 소리에 흠칫 놀랐다. 옆 방의, 얼굴도 나이도 모르는 세입자가 힘겹게 뱉어내는 소리다. 인간이 몇 시간 째 똑같은 말을 해도 병적인 현상인데, 저렇게 처절한 울음을 계속한다는 것은 분명 심각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나는 옆 방에 찾아가 이웃사촌의 안녕을 묻기는 커녕 방문을 단단히 잠가버렸다. 용산구 동자동에 자취하는 본인은 이 곳에 전입신고를 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경계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옆 방에 사는 이웃사촌의 얼굴은 모르지만 저 기침소리는 익숙하다. 늦은 밤이면 종종 터벅터벅 오르는 계단 소리와 비틀거리며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 다음에 방문이 닫히고는 오늘과 같은 기침소리가 시작된다. 


 문제는 기침 소리가 너무 오래 지속된다는 점이다. 10분 20분도 아니고 한시간 동안은 콜록콜록하는 소리가 들린다. 저 병약한 외침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혹시나 저 기침이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는 간절한 몸부림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군 시절 당직 근무 중 창 밖에서 우연히 펜스에 걸린 모포가 떨어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고민했다. 저 모포를 다시 펜스에 널러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모포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걸어서 5분. 마음만 먹는다면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럼에도 나는 의자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침묵을 유지했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이. 


 당시 일기에는 라면 때문에 더부룩해진 속을 핑계삼아 모포를 널러가지 않은 자신을 반성하는 내용을 썼다. 그러나 3년 전의 반성으로부터 나는 실천적인 면에서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5초 만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의 문제를 또다시 외면해버렸다. 그것도 몇 번씩이나.


 하지만 오늘 이 글을 씀으로써 이제는 변화하려 한다. 옆 방의 기침소리에 더 이상 혼자 고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음 번에도 10분 이상 기침소리가 지속된다면 당장 방문을 뛰쳐나가 옆 방의 문을 두드리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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