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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Sep 12. 2016

무기력한 슬픔

많은 것들이 바뀌었음에도.

 스무 살이 되어 공주를 떠났을 때부터 나는 끊임없이 변해왔다.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언제나 신분이 바뀐 뒤였다. 재수생, 삼수생, 대학생, 군인, 복학생, 교환학생, 그리고 휴학한 취준생에 이르기까지. 전부 수험생 혹은 학생의 범주에 포함되는 신분들이지만 차이는 상당하다. 직관적으로 85살과 88살의 차이는 별로 없어 보이지만, 20살과 23살의 차이는 엄청나듯이 말이다.

 

 엊그제 세 번째 예비군 훈련을 마쳤다. 신분이 달라지면 같은 경험도 다르게 다가온다. 지난 두 번의 예비군 훈련은 모두 학생 예비군 훈련이었다. 즉 복학생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지금 나는 교환학생 단계를 거쳐 휴학한 취준생 상태다.


 이전의 예비군 훈련들은 병사 딱지를 떼고 예비군 완장을 참으로써 생기는 일종의 뿌듯함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훈련에 가기가 너무 싫었다. 매일 아침 8시, 9시에 일어나다 6시에 일어나야만 한다는 압박은 맥락없이 취업 압박으로 확장되기도 했다.

  

 학생 예비군이 아니었기에 예비군들의 평균 나이가 전보다 높았다. 그래서인지 직장인들이 많았다. 취준생과 직장인의 접점이 뭐가 있을까. 바로 ‘먹고 사는 문제’다. 우리는 모두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라는 공통된 감정을 공유했다. 구체적인 불안의 원인은 다르지만 어쨌든 ‘먹고 사는 문제’에 포함된다. 이 연령대의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거의 모두 이 문제로 고민하고 방황하고 좌절도 할 게다.


 취준생으로서 직장인과 먹고 사는 얘기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당연해서 싫었다. 문득 재수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지금도 만나는 친한 형과 깊은 얘기를 나누곤 했다. 가족, 트라우마 같은 개인적 문제부터 사회 제도나 삶의 고통에 이르는 사회적 문제까지.

 

 그러나 결론은 언제나 ‘수능 잘 보자 혹은 잘 봐야한다.’였다. 그 어떤 주제로 대화를 계속해도 항상 마무리는 저 문장으로 고정돼 있었다. 내 의식이 상황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대학에 입학 후 “나는 나중에 자식 낳고 애기들 얘기만 하면 슬플 것 같아.”고 말했었다.


 나는 벌써 슬펐다. 같은 경험을 다르게 느끼면서도, 다른 경험에서 같음을 느끼는 자신을 바라보며. 재수 때 인식했던 문제가 같은 방식으로 취준생에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게다가 여전히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다.’라고 느낀 건 오늘의 대화때문만이 아니다. 최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의  대부분이 ‘앞으로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것들이었다. 재수 때는 재수생이었으니, 취준생이 되니 취준생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어서 슬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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