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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Sep 15. 2016

추석

갈등의 장.

 민족 대명절 추석을 맞아 SNS는 추석에 관한 글들로 가득 찼다. 성역할로 억압받는 여성들의 걱정부터 신흥 사회적 약자 청년들의 분노까지. 추석날에도 ‘혐오사회’ 대한민국의 단면은 여실히 드러났다.


 전남 진도군 의신면에는 “애미야 어서와라, 올해 설거지는 시아버지가 다 해주마!” 라는 훈훈한 플래카드가 걸렸지만, "해주마"란 단어가 풍기는 시혜적 냄새를  지울수는 없다. 이는 우리나라가 이제야 평등을 향한 걸음마를 시작하는 과도기적 단계라는 걸 의미한다.


 청년들의 분노에서도 재미난 사진들이 올라왔다. 결혼, 취업 등 청년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오지랖을 하려면 돈을 내고 하라는 내용. 종합세트로 하려면 30만원을 내야 한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위의 자료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번에 내려가서 오지랖 비용을 받는다면 다시 유럽으로 떠날 만큼은 벌지 않을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일본여행 경비는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식의 앞날이 걱정되는 부모님은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자식에게 전달한다. 사실 그 누구보다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는 건 자식 본인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나의 불안을 적절히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드러내는 일은 서로에게 고통을 줄 뿐이다.



 큰집에 가는 길에 아버지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 머리 언제 자를래? 남들 보기에 너 머리는~, 그 머리로 어떻게 사회생활을~” 물론 나도 잘 안다. 이 머리를 한 사람은 딱 봐도 조직에 맹목적으로 복종할 인상을 풍기지는 않는다는 걸. 그렇기에 연말쯤에는 머리를 자를 예정이다. 내 의지는 아니지만.


 큰 집에 도착하니 역시나 다들 머리에 대해 한 말씀들을 하신다. “연예인같다.”, “멋있다.” 등 진담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칭찬부터 “노예같다.”, “일본놈같다.”는 솔직한 비난까지. 나는 그저 웃었다.



 따로 시선을 둘 곳이 없어 책장으로 눈을 돌렸다. 책장에 꽂힌 책들로 어느 정도 책 주인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이렇게 박정희에 대한 책이 많았다. 우리 친척들 중 ‘그 세대’ 사람들은 같은 시대 감정을 공유한다. 아마 작은 할아버지께서는 저 책장을 보고 가슴이 뭉클하셨을 지도 모른다.


 작은 할아버지께선 정치 얘기를 많이 하신다. 얘기라기보다는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고 남 말은 안 듣는 전형적인 ‘꼰대식’ 발언이지만. “대한민국은 한국식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 “지방자치제를 폐지하고 그냥 공무원들을 시장으로 임명해야 한다.” 등등의 명언이 있다.

 

 재밌는 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친척들끼리 모이면 꼭 정치얘기가 나오는데 항상 극우파 열사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열변을 토한다고. 그걸 보는 자신은 토할 것 같다고. 제발 살려달란다.

 

 현재 대한민국은 많은 부분에서 과도기다. 남북 분단 후부터 시작된 정치적 과도기(아마 통일이 되고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야 끝날 것 같다.)부터 성역할 문제, 세대 갈등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추석은 그 과도기들의 복합체인 갈등의 장으로 존재한다. 이번부터 친구들 상당수가 큰집에 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지 짐작할 수 있다.


 언제부터 민족 대명절이 갈등의 장으로 변했고, 언제까지 갈등의 장으로 남아있을 것인가. 서로에 대한 그리고 사회에 대한 약간의 이해만 있다면 해결될 일들이지만, 이 조건을 만족시키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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