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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Mar 30. 2018

사계절의 변화 중 가장 격동적인 시기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다. 여름은 봄의 따스함이 강해지는 것이고 가을은 여름의 뜨거움이 식어감으로써 다가온다. 겨울은 가을의 서늘함이 더욱 차가워지며 찾아온다. 하지만 봄은 겨울의 차가움이 조금 풀리는 것을 넘어 박살내는데서 시작된다. 시작의 계절이라는 수사답게 봄은 그 어느 계절보다 새로움이라는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작년 이맘때쯤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했던 단발머리를 숏컷으로 잘랐다. 스포츠 머리가 아닌 여자 기준의 숏컷이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낭만적으로 말하면 봄이 꿈틀대는 기운이 너무도 싱그러운데 나도 그 변화의 과정에 합류하고 싶어서였다. 계절을 타는 게 이런 것이구나라는 걸 처음으로 느꼈던 때였다.


올해도 나름의 변화를 시도했다. 3년 전 피어싱을 뺏건만 다시금 왼쪽 귀 두 곳에 구멍을 냈다. 나름 만족한다. 또한 작년을 돌아보면 봄, 가을, 겨울에는 모두 한 신발을, 여름에는 버켄스탁만 신고다녔던 것과 달리 신발장에 잠들어 있던 나의 신발 중 여러 켤레를 꺼냈다. 7평 남짓한 자취방의 비좁은 현관이 꽉 들어찼다.


변화는 방에서도 일어났다. 수 개월만에 화장실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던 중 타일 틈새로 지나가는 작은 벌레 한마리를 발견했다. 어떤 종인지는 모르겠으나 붉은 빛이 도는 아주 작은 녀석이었다. 어떤 벌레의 새끼로 추정되는데 그 놈 한 마리가 보였다는 뜻은 아마 더 많은 놈의 친구들이 내 방에 이미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뜻할 것이다. 작년에 늦은 가을까지 새벽에 홈키파를 뿌려대며 잠을 설쳤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또 다시 벌레와의 전쟁이 시작된다는 점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건 나의 신분이다. 새로운 계절에 걸맞지 않게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같은 처지에 놓여있다. 마음은 꽤나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계절이 갈수록 처음의 의지가 옅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나의 신분은 변하지 않았다. 어쩌면 또다시 귀에 구멍을 뚫고 신발장에 있던 신발을 왕창 꺼낸데에는 어떻게든 변하고 싶은 나의 욕구가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니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보려는.


햇살이 서럽게도 참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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