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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Jan 03. 2018

길거리 수행자

인간에게 종교란.

얼마만일까. 그가 내게 말을 건 것이. 마지막 대화를 한 지 족히 1년은 넘은 듯 했다. 반가웠다. 그럼에도 그가 말을 거는 순간을 단순히 반갑다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이보다는 조금 더 복잡미묘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꿈틀댔다. 마음은 몸을 움직이게 한다. 짓궂은 설렘은 입꼬리를 하늘 높이 끌어올렸다. 그에게 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입가에 힘을 바짝 주었다. 


그는 길거리 수행자다. 전도사라 부르기엔 자기 입으로 종교가 없다고 하니, 또 덕을 쌓으며 수행하고 있다니 수행자라고 부르는 게 맞는 듯하다. 구로 근처에 있는 대진성주회라는 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데 찾아보니 대순진리회의 분파였다. 낙원상가 앞에서 만난 이들이 구로에 가서 제사?를 지내자고 했던 걸 떠올려보면 그 분들도 대진성주회 사람들이 아닐지 추측했다.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와 저녁을 먹기로 했기에 그와 오래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아쉬웠다. 시간만 있다면 예전처럼 어느 카페에나 들어가 두 시간은 떠들었을텐데 말이다. 그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와 나의 의견차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는 한국의 자살률을 읊어대며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한국 사람은 ‘가족도 챙기지 못하고’ 불행할까 따위의 소리를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색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OECD 국가 중 가장 노동시간이 긴 나라가 한국이고, 실제로 아침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직장인이 많은데 가족 챙길 시간이 있겠냐고 따졌다. 그러자 그는 자기가 말한 가족이란 ‘조상님’이라고 했다. 아무리 바빠도 조상님한테 제사지내면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다시 입꼬리가 씰룩였다. 앉아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없어 앞으로 열심히 더 덕을 쌓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묻고 싶은 게 더 많았다. 대진성주회가 종교가 아닌 이유, 당신이 생각하는 종교란 무엇인가 등. 그가 대답할 수 있을 지를 떠나서 말이다.


사실 그에게 던지고 싶던 질문은 사회에 대한 나의 물음이었다. 종교란 무엇인지, 인간이 합리적 이성이라는 것을 갖고 태어나는지 등. 요즘들어 인간의 사고 자체가 종교적 틀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평소에 차갑고 냉철한 이성을 통해 눈앞의 사안을 평가하기보다는 주로 어떠한 관습적 믿음, 신념에 의해 현실을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립하는 집단 간의 갈등을 볼수록 이러한 생각은 확고해진다.


1960년대 프랑스 인류학자들의 말대로 이성이라는 건 다양한 사고 방식 중 하나일 뿐일 수 있다.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으리라는 보장 또한 없다. 다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시민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이성적 판단이 종교적으로 승인될 필요가 있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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