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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Apr 02. 2018

모르는 사람

이승우 소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는 속담엔 사람을 이해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가 잘 담겨 있다. 가까운 친구 뿐 아니라 부부로 평생을 함께 한 이들도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 할 것이다. 오히려 이해하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예 관심을 끄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사람 뿐 아니라 타인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이해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아니 어쩌면 세상 모든 일에 대해 그렇다. 우리는 ‘객관적’이라 불릴만한 어떤 사실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입맛에 맞는 논리를 연결시켜 세상을 파악하려 한다. 하지만 이런 자기편의주의적인 행동 속에 때로는 ‘어쩔 수 없음’이 담겨있기도 하다. 어쩔 수 없다는 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므로 무력하기도, 사건에 개입하지 못 한 채 먼 발치서 바라봐야만 한다는 점에서 쓸쓸하기까지 하다.


<모르는 사람>의 엄마가 그랬다. 어디로 떠난다는 말도 없이 돌연히 사라져 버린 남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 했다.기 보다는 자기 식대로 해석했다. 처음에는 몇 가지 사실들을 엮어 건설회사의 젊은 홍보 모델인 여성과 바람이 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십일 년이 지나고 찾아온 땅끝선교회의 간사가 화자에게 말한 내용을 통해, 아버지가 선교를 하러 아프리카에 갔고 얼마 전 그곳에서 말라리아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곤 어머니는 “차라리 젊은 여자랑 연애질을 하다 죽지”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화자에게 “인생을 산다는 것은 견디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니 화자가 아니라 본인에게 했을 지도 모를 말이다. 어쩌면 누군가로부터 듣고 싶어했던 말을 스스로에게 한 것일 수도 있다. 저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인생은 견디는 것이기에 현재의 삶을 견뎌낼 것이다.와 포기하겠다. 아버지는 전자를 택하지 않았지만 삶 전체를 버리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 중에서 결혼 생활 이후에 해당하는 일부만을 도려냈을 뿐이었다. 그렇게 아프리카로 떠난 것이다.


선교회보에 실린 아버지의 글을 통해 화자는 그가 대학 시절부터 신학대학원을 준비했었고, 어머니와 결혼한 것을 속물적인 선택이라 여겼음을 알게 된다. 원래 자기 속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아버지의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화자는 역설적이게도 아버지보다 그의 어머니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이토록 마음이 가정이라는 울타리 밖 어딘가를 향해 있는 아버지와 ‘어쩔 수 없이’ 살아온 어머니를 말이다. 아버지의 말 그대로 어머니에게도 산다는 것은 견디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이해하는 방식도 아버지가 어머니를 이해하는 방식도 무언가 잘못돼 있음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그것을 고치는 일은 본인이 어떤 수고스러움과 고통과 혼란까지도 감내할 의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안다. 문제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려 노력한다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평생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타인에 대한 절대적 이해에는 도달할 수 없다. 하지만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도달하려 평생을 노력하는 일은 비장하고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그렇게 사는 것 또한 ‘견디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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