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간의 불균형한 문명발전의 원인을 찾아서.
출근길에 즐겨듣곤하던 어느 팟캐스트에서 총, 균, 쇠라는 책을 이렇게 소개했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가장 많이 빌려보는 책'
두껍지만 중,고등학생 시절 주입식 교육으로 암기했던 역사교과서와는 다른, 역사란 암기가 아닌 이해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책이기때문에 많은 대학생들이 이 책을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대출 1순위를 차지한데는 내용만큼이나 가격도 한 몫한 것으로 보여진다.(정가: 28,000원)
가격이 조금 더 저렴했다면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구해한 책'의 어워드에 이름을 올렸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내용만큼이나 비교적 제목도 잘 번역되었다.
'총과 세균 그리고 쇠', '무기와 병균과 금속' 등의 식상한 제목이 아닌 단 세글자로 'guns, germs, and steel' 이라는 단어를 압축하였다.
이 책이 실로 방대한 역사를 다루었다.
다른 역사책이 정치과 경제, 전쟁을 주제로 백년 또는 천년의 역사를 다루었다면
총,균,쇠는 700만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다루었으니, 역사적 사건을 나열함에 있어 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핵심적인 사건들만을 서술해 놓았다.
예컨데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cm만 낮았더라면?.', '트로츠키가 오리사냥 도중 열병에 걸려 병상이 눕지만 않았더라면?.' 과 같은 단편적인 가정의 역사는 담겨져 있지 않다.
오크셔드는 '역사를 서술하는 것만이 역사를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라고 말했다.
모든 사건을 시간별로 나열하고 서술할 수 없기에 역사가는 자신이 말하고자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을 선별하여 선택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도 환경과 인류발전의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선택하여 책에 담아 놓았다.
과연 그가 선택한 역사적 사건들은 무엇일까?
두꺼운 책 속에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이 책은 조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와 뉴기니의 정치인 야리의 대화와 함께 시작된다.
재레드의 눈에도 카리스마가 넘치며 비범해보였던 야리는 어느 날 그에게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백인들이 사람들이 너무 많은 화물을 개발하여 뉴기니로 가져 왔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흑인들이 우리화물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인류의 역사는 약 70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
400만년 전 직립 자세를 갖게 되었고, 약 250만년 전 부터는 신체에 맞게 두뇌가 커져나갔음을 화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후 50만년 전에는 호모사피엔스(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이 등장하였다.
네안데르탈인은 동굴에서 사는 유인원을 닮은 짐승같은 존재로 수많은 만화에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우리와 두개골이 비슷한 죽은 자를 매장할 줄 아는 최초의 인류이기도 했다.
이 인류는 크로마뇽인의 등장과 함께 점점 사라지게 되는데 살인을 당했거나 세균에 감염되었을 것이라는 추즉이 학계의 주장이다.
유발하라리는 인지혁명으로 인해 사피엔스가 크로마뇽인을 멸종시켰다고 주장하지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크로마뇽인의 등장과 함께 사라진 것은 네안데르탈인 뿐만이 아니다.
대약진으로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 이들은 대형 동물들을 멸종시키기 시작했다.
1톤이 넘는 도마뱀, 180kg에 달하는 날지 못하는 새, 땅에 사는 악어 등이 대약진과 함께 멸종되었다.
약 12,000년전 당시 인류는 북극과 남극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륙으로 뻗어나갔다.
여러 명의 관찰자가 시간의 터널을 지나 약 만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가정한다면, 어느 대륙이 가장 크게 번영할지 알 수 있었을까?
그들은 의견은 분분히 나뉘었을 것이다.
일부는 인류가 가장 먼저 탄생한 아프리카라고 말했을 것이고 나머지는 광활한 유라시아, 또 다른 이들은 풍요로운 북아메리카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내가 이러한 물음을 하는 이유는 21세기 발전의 불균형의 원인을 밝혀낼 수 있는 해답이 인류의 탄생과는 큰 관련이 없다고 말하고 싶어서다.
유라시아가 세계를 주도한 이유는 그 이후의 역사에서 살펴볼 수 있다.
대륙간 불균형이 만들어낸 가장 비극은 에스파냐의 피사로 군대가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사건이다.
어린 시절 돼지를 기르는 일을 했던 피사로는 신대륙 개척을 위한 탐험선에 몸을 싣고 파나마의 시장이 된다.
그는 지리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요충지의 관리자가 되었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왕실의 허락을 받아 남아메리카 원정을 떠나게 된다.
당시 잉카제국의 인구는 600만명이었는데 이를 알고 있던 파사로는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전략을 세웠다.
아타우알파에게 크리스트교로 개종할 것을 권한 뒤, 이를 거절당하면 총과 대포로 그들을 공격하는 방법이었다.
180명의 무장된 군인들 앞으로 위풍당당하게 4천명의 무장 호위대와 함께 등장한 아타울알파.
역시나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았던 잉카제국의 왕은 에스파냐인들이 말하고자하는 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 성경책을 바닥으로 내던져버렸고, 이 상황을 기다렸던 피사로의 군대는 선제 공격을 가했다.
당시 남아메리카에는 말과 총, 대포가 존재하지 않았는데 속수무책으로 소수의 무장병에게 힘에서 밀리자 혼비백산하여 뿔뿔이 흩어졌다.
이 틈에 피사로는 황제를 생포하였고 커다란 방을 금으로 가득 채워주면 왕을 풀어주겠다고 잉카인들과 협상한다.
하지만 방을 채울만한 금과 보석을 조달했음도 불구하고 피사로는 아타우알파를 죽여버린다.
어떻게 기병 62명, 보명 106명의 오합지졸 스페인군대가 원주민들을 참패에 빠뜨릴 수 있었을까?
어떻게 500배 가량이나 되는 8천명의 원주민을 상대로 단 한 명의 전사자도 기록하지 않고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까?
첫 번째는 말, 쇠로된 무기와 총 갑옷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에스파냐 군대는 화승총을 사용하였는데, 장전과 명중 시키는데 지금의 총에 비해 성능이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심리적인 효과가 뛰어나 그 소리만 들어도 혼비백산에 빠뜨릴 수 있었다.
곤봉으로 무장한 잉카 군대는 피사로 군대의 갑옷에 아무런 피해를 입힐 수 없었으며 칼에 도리어 반격을 당할 뿐이었다.
피빗강물을 따라 전쟁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도망치던 패잔병들도 기병들에게 따라잡혀 죽임을 당했다.
두 번째는 전염병의 유행이다.
천연두는 스페인 이주민이 파나마와 콜럼비아에 도착한 이후 남아메리카 곳곳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전염병으로 인디언들의 황제와 신하들이 죽음을 당하자 후계자들의 제위 다툼이 벌어졌고, 이러한 내전은 스페인이 남미를 지배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유럽인이 가져온 병균 (천연두, 홍역, 페스트 등)은 시간이 갈수록 아메리카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죽어간 원주민의 수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전 대비 전체인구의 약 95%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비극적인 역사를 만들어낸 16세기 잉카제국과 유럽국가(피사로의 군대)간의 기술적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에스파냐의 군대가 총과 쇠(칼, 갑옷), 말, 세균을 이겨낼 면역력을 모두 갖추었을 때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곤봉으로 대항할 수 밖에 없었을까?
우리는 문명이 존재하는 대륙의 환경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수렵생활만이 전부이던 인류는 동식물의 가축화와 식물화를 통해 잉여생산물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농업혁명으로 인해 얻어낸 잉여식량은 중앙집권화 체계와 계층화를 만들어 낸다.
곡물을 세금으로 걷고 분배하는 관리(회계업무)라는 직업도 생겨났으며 이후에 사회는 땀흘려 일한 농부위에 계산기를 두드리며 군림하는 관리가 지배하는 아이러니가 공존하는 관료제 사회로 발전하게 된다.
가축화, 작물화가 가능한 대표적인 동식물
먹거리의 작물화가 가장 적합한 곳은 서남아시아였다.
서남아시아는 b.c 8500년경과 b.c 8000년경에 작물화와 가축화가 시작했으며, 이후 유라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만들어낸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삼각주, 황하와 양쯔강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는 거대 문명이 싹텄다.
유라시아 대류에서는 가축화에 적합한 소, 돼지, 말 양 등과 같은 가축이 13종이나 있었으며, 동물들과 함께 지내며 우유를 마실 수 있는 유전자가 후손들을 통해 전해졌고 면역력도 점점 더 강해졌다.
뿐만 아니라 보리와 밀, 쌀과 같이 작물화가 쉬운 식물들이 있었기에 인간과 가축이 살아갈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출 수 있었다.
고위도에서 저위도로 대륙이 걸쳐있는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에 비해 유라시아는 커다란 땅덩어리가 비슷한 위도에 좌우로 길게 펼쳐져 있어 대륙간의 이동과 기술, 문화의 전파가 비교적 손쉬웠다.
반면 아메리카와 호주는 작물화, 가축화가 발달하기 적합하지 않았다.
미국산 옥수수는 유라시아의 곡물에 비해 단백질이 부족했으며 아프리카의 바나나 역시 도시의 사람들에게 공급할만한 높은 수준의 영양을 갖은 식물은 아니었다.
사하라사막, 동남쪽은 밀림으로 우거진 아프리카는 다른 대륙과 교류하기 어려운 고립된 환경을 이겨내지 못했고 , 남아메리카에는 가축화가 가능한 동물이 단 한 종류 라마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코끼리와 얼룩말, 영양, 버팔로 같은 대형 포유류를 길들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심지어 오세아니아의 호주는 가축화가 가능한 동물이 단 한 종류도 존재하지 않았다.
가축화는 단순히 이동수단이나 인간의 단백질 섭취를 대신해주는 것 이상으로 중요했다.
총.균.쇠에는 없는 내용을 조금 나열해보자면 가축화는 인간의 면역력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동물들과 함께 지내며 발병할 수 있는 병은 생각보다 많은데 최근에 발병한 병들을 나열해보자면 사스(박쥐->고양이->인간), 조류독감(철새, 오리), 메르스(박쥐->낙타->인간) 정도가 된다.
의학의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도 수 많은 사람들의 전염병에 의해 목숨을 빼앗기고 있는데,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어땠을까?
현대로 접어들기전까지 수 많은 인명을 빼앗아간 바이러스의 대표주자는 천연두와 페스트다.
아메리카를 발견한 유럽인들이 원주민에게 전염시킨 천연두는 소를 통해서 감염된다는게 정설이며 소와 접촉한 인간을 통해 멀리 퍼지는 바이러스다.
당시 유럽인들은 소, 말, 양 등과 친숙했던 나머지 가축으로 인해 퍼지는 병들에 대한 면역력이 대단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난생 처음보는 가축들과 이유도 모르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인구의 1/3 이상이 이 질병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비극을 겪었다.
(참고로 천연두는 1977년 소말리아의 한 청년에게 발병한 이후 감염사례가 없으며, 1980년 5월 8일 세계보건기구 총회에서는 천연두 바이러스의 종멸을 선언했다.)
농경사회에 적합한 유라시아인들의 문명은 발전을 거듭했다.
그들은 문자와 과학기술, 제도를 이용하여 더욱 더 강한 무기와 병원균을 개발하였고 다른 대륙으로 세력을 넓혀가며 비유라시아인들을 점령해나갔다.
그야 말로 '부익부 빈익빈'의 세계화가 시작된 것이다.
대니얼 리그니가 저술한 나쁜사회라는 도서에는 이러한 현상을 마태복음 효과라고 칭했다.
"무릇 있는 자는 더욱 넉넉해지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마태복음 13장 12절)
보다 높은 언덕에서 굴린 눈뭉치가 나중에는 훨씬 더 큰 눈덩이가 되는 것처럼 서양의 기술력은 더욱 더 신속하게 발전해나가 현재 21세기 세계를 선도하는 정치,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약 750페이지로 이루어진 방대한 지식의 집합체, 총균쇠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축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세계 문명의 불평등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일까? 그 것은 지리적(환경)차이에서 발생한 것이다.'
약 700만년 전 인류 시초의 탄생지 아프리카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이유와 유라시아가 세계를 재패한 대륙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환경적 차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혹자는 대륙간의 불균형한 발전의 원인을 인종간 지능발달의 차이에서 찾기도 한다.
한 때 두뇌의 크기가 인종의 지능차이와 연관이 있다며 '백인과 아시아인이 흑인보다 똑똑하다.'는 연구결과가 세상을 맴돌적이 있었다.
실제로 아시아인과 백인의 두뇌가 흑인보다 아주 조금 크기 때문에 혹자는 아직도 두뇌의 크기와 문명의 발전을 주도한 인종의 우수성을 연관 짓기도한다.
미묘한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현대 문명의 불평등을 인종간의 우월함이라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어렵다.
이는 간혹 인간이 범하는 '결과의 타당성을 위해 원인을 만들어내곤 하는 오류'에 불과하다.
21세기 세계의 패권은 북미와 서유럽, 동아시아가 장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위와 같은 주장을 펼치는 이들은 공존하는 인류 모두가 붉은 열매를 열게 만들 수 있는 튼튼한 모종될 가능성을 지닐지도 모르는, 불평등에는 환경적인 요소를 결코 배제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정도면 "왜 백인들이 사람들이 너무 많은화물을 개발하여 뉴기니로 가져 왔습니까?하지만 우리는 흑인들이 우리화물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라고 묻는 야리의 질문에 대한 다이아몬드 대신 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유라시아 문명의 발전은 뛰어난 독창성(지능)으로 얻어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리적 이점 통해 거둘 수 있었던 산물이다.
문명의 불평등한 발전은 다른 인류가 또 다른 사회를 지배하고 억압하는 비극을 낳았다.
이러한 역사적인 과오를 운명론적인 사고와 인종의 우수성으로 설명한다면 그 것은 너무나도 잔인하고 비과학적인 어리석은 해석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인종적 우월주의 사로잡혀 있거나 불평등한 사회형성의 과정을 단순히 우연성으로 설명하려는 이들이라면 더욱이 읽어볼만한 도서이다.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신뢰하고 있는 이들은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던지는 메세지를 읽어보며 자신의 생각을 한 번쯤 되새겨볼 것을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