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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필 Nov 22. 2019

괴테-파우스트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괴테-파우스트


'여기에도 사람이 있군.'

1808년 당대 유럽의 지배자 나폴레옹은 괴테를 만난 뒤 위와 같은 묘한 말을 남겼다.

시대의 영웅이 자신과 동등한 인물로 평가를 내렸다는 사실이야 말로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싶다.



독일인 괴테


남산 괴테 인스티튜트


괴테에 대한 독일인들의 관심과 동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일각에서는 괴테가 언제 첫 경험을 했는지도 연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인물과 비교한다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괴테는 특히 젊은 베르테르 슬픔을 집필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60여 년에 걸쳐 완성시킨 대작 파우스트는 현재까지도 많은 문학도와 희극인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비스마르크가 작게 나뉜 공국을 하나로 통일하기 전까지 당시 독일은 조금씩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9세기 프로이센의 통일과 동시에 언어의 통일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가 있었으니, 바로 괴테의 소설이었다.

일찍이 셰익스피어가 영국 문학과 언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괴테는 독일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자 극작가, 정치가, 과학자로 인정을 받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세계 각 국에 언어와 문화를 보급하기 위해 문화원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한국문화원, 미국문화원, 일본문화원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독일 문화원은 괴테의 이름을 따 '괴테 인스티튜트'라고 불린다.



인간과 악마의 계약



오늘 소개해드릴 희극 파우스트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괴테가 60여 년에 걸쳐 써내려 나간 역작이다.

이 작품은 인간과 악마 사이에 성사되는 계약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인간과 악마의 계약은 악마가 존재한다고 믿었던 중세 시절의 문학 작품부터 꾸준히 등장했다.

현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악마와의 계약을 다룬 작품을 몇 가지 나열해보자면 우선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볼 만했을만한 만화 데스노트를 빼놓을 수 없다. 주인공인 라이토는 우연히 얻은 노트로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강력한 힘에는 늘 리스크가 뒤따랐고, 죽이고 싶은 상대의 이름을 알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 절반을 바쳐야 한다는 유혹도 늘 존재했다.


최근에 본 영화 드라큘라 2014에서도 악마와의 계약이 등장한다.

개인이 추구하는 정의와 욕망으로 악마와 함께 했던 데스노트의 주인공과는 달리 이 영화의 주연인 왕은 백성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악마와 계약을 한다.

그는 드라큘라의 피를 마심으로써 사흘간 인간 100명이 가까운 힘을 얻을 수 있으나, 그동안 인간의 피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고통을 누리게 된다.


가질 수 있는 초능력에 비해 적은 리스크를 받는 불평등한 악마와의 계약도 존재한다.

일본 애니의 대표작 원피스에서 등장인물들은 악마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특정 능력을 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얻는데 반해 수영을 하지 못하는 저주 아닌 저주를 받는다.

지진을 일으키고 용암을 만들어내거나 바다를 얼려버리는 능력을 얻는 대신 고작 맥주병이 되는 핸디캡을 얻는 것은 타 작품에 비해 인자한 악마의 저주를 받는 설정이 아닐까 싶다.

팔다리가 늘어나는 하찮은 능력을 얻는 대신 수영을 못한다면 모를까.




파우스트가 특별한 작품인 이유

 


앞서 악마와의 계약을 다룬 작품들과 괴테의 파우스트 사이에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보통 작품들 속의 주인공이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강력한 힘'을 얻고자 했다면, 파우스트는 힘이 아닌 '인식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한다는 부분이다.



파우스트와 관련된 아주 좋은 글귀를 한 이웃님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식은 섬이고 무지는 바다다.

섬이 커질수록 무지의 해안선은 길어진다.'

삶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인 삶이지만, 결국 다다를 수 없는 곳을 향해 인간은 달려간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고, 괴테는 이 사실을 우리보다 조금 일찍 깨달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괴테는 인간의 욕구를 그려냈기에 시대를 초월한 명작으로 파우스트를 길이 남겼을까?

보통 파우스트의 내용을 이야기할 때 1부를 언급하며, 2부는 상징적인 내용이 많아 이해하기가 어려워 대중들에게 비교적 덜 언급된다.

나 역시도 2부에서 다룬 소재들은 너무 생소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자 이제 서론은 줄이고, 파우스트의 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메피스토펠레스와 파우스트


[1부]

메피스토펠레스라는 부정의 신은 어느 날 주님을 만나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인간이 메뚜기 같다거나 가엾은 존재라는 갖은 비하를 서슴없이 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이야기를 들은 주님은 자신의 충실한 종 파우스트를 언급하며 인간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다.

그러자 메피스토펠레스가 답한다.

주님, 저와 내기를 하시겠습니까?
나리만 허락하신다면 그 녀석(파우스트)을 나리의 손에서 빼앗아 보이지요.
그 녀석을 내길로 슬슬 끌어 넣겠습니다.

자신감에 찬 메피스토펠레스(이하 메피스토)는 인간 하나쯤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것은 일도 아니라며 주님 앞에서 우쭐대지만, 주님은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라.'며 방황은 하되 타락하지 않을 것이라 답한다.


메피스토는 삽살개로 변신하여 파우스트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학문을 공부한 눈치 빠른 파우스트에게 정체를 들키게 되고, 자신의 본모습을 보이며 악마의 계약을 제안한다.

그는 모든 것을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간들보다는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기에, 쉽사리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주어 파우스트를 만족시키겠다고 말한다.


파우스트여, 이 세상에서는 당신 요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는 종이 되겠으니, 내기에서 지게 된다면 저 세상 나의 종이 되는 건 어떤가?


파우스트는 아래와 같이 외치며 그의 내기를 받아들인다.


그럼 악수하자!   
내가 어떤 순간을 향해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다!라고 말한다면, 그때는 나를 꽁꽁 묶어도 좋다.
나는 기꺼이 멸망해 가겠다!
시계가 멎고, 바늘이 떨어져도 좋다.
나의 생애는 그것으로 끝이 난다!


이렇게 서재에서 나눈 마지막 대화를 마지막으로 계약은 성사된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누리되 이 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파우스트는 사라질 것이다.


이 둘은 성당에서 아주 아리따운 여성을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마르가레테로 파우스트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게 한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에게 '여보게 메피스토펠레스, 마르가레테라는 처녀를 내 손에 넣어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네가 정말 신 중에 하나라면 이런 바람쯤은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시험이었다.

메피스토는 마법의 묘약을 만들어 그녀의 어머니를 재우고 파우스트를 젊게 만들어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게 한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이내 죄책감에 사로잡혀 스스로 울부짖게 된다.


무엇이 너를 여기에 데리고 왔는가?
나는 지금 얼마나 깊은 감동에 있는가?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할 참인가?
왜 가슴이 이렇게도 무거운가?

가엾은 파우스트여! 너는 이제 완전히 변해 버렸구나.
정욕에 못 이겨서 찾아왔는데, 지금은 깨끗한 사랑의 꿈에 녹아 없어질 것만 같구나!                                      

메피스토는 파우스트가 마르가레테와 하룻밤을 보냈다는 사실을 그녀의 오빠에게 알린다.

그러자 그의 오빠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창녀 취급하게 되고, 메피스토에 계략에 빠진 마르가레테는

결국 파우스트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죽음에 빠뜨리게 되며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다.



마르가레테의 환영

[2부]

두 번째 장은 궁정에서 왕과 대신들이 대화를 나누는데 메피스토펠레스가 끼어드는 장면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르가레테라는 아름다운 여성과 하룻밤을 보냈지만 만족보다는 죄책감을 느낀 파우스트를 본 메피스토는

여성이 아닌 재물의 향락으로 그를 유혹하기 위해 궁으로 데려온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왕과 축제를 즐기기 위해 술을 사야하는는데 금화가 부족해 파티가 무산될 위기에 빠져버렸다.

바로 이때, 궁정의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던 파우스트가 지폐라는 것을 개발하여 임금의 신임을 얻게 되며 파티를 성황리에 치르게 도움을 준다.


파우스트의 능력에 반한 황제는 그에게 희랍의 신화 미녀 헬레나와 파리스를 만나게 해달라고 한다.

그는 이 둘의 모습을 재현시키게 되나 도리어 자신이 헬레나의 아름다움에 빠지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메피스토의 계략에 빠져 오이포리온이라는 아들도 낳게 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마저도 오이포리온이라는 아들이 죽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난다.


아름다운 여성과의 사랑, 궁정의 호화로운 삶을 경험했으나 파우스트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비극이며, 이제 그에게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미로 속에 빠진 슬픔 그 자체였다.

파우스트는 이제 막막하고 무한한 욕구가 아닌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활동하겠다는 구체적인 욕구를 갖게 된다.


황제를 도와 적을 무찔러 해안에 광활한 영토를 얻은 파우스트는 간척사업을 통해 낙원 같은 나라를 만드는 작업을 실행한다.

이 과정에서도 비극은 발생한다.

언덕의 오두막에 살던 노부부를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라는 명을 내리지만 메피스토는 그들을 놀라게 해 심장마비를 일으키게 만들고 떨어진 불씨를 그대로 두어 시체가 타게 만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근심의 유령이 찾아와 논쟁을 하던 중 파우스트는 시력을 잃게 되고, 소리에 모든 것을 의존하던 파우스트는 삽으로 땅을 파는 소리와 흙을 나르는 수레의 소리에 의존해 간척사업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착각한다.

실제로는 메피스토가 인부들을 시켜 파우스트의 무덤을 파고 있었는데 말이다.

홀로 감격한 나머지 파우스트는 최후의 말을 외 친다.

"나는 순간을 향하여 말하노니,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다"라고 외치며, 인생의 시곗바늘을 멈춘다.

부정의 신 메피스토가 눈이 먼 백세의 파우스트와의 내기에 이겨서 무엇하겠는가?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피스토는 파우스트의 혼을 빼앗으려고 하자 천사들이 내려와 사회의 계몽을 위해 노력한 그를 공로를 높이사 하느님 곁으로 갈 수 있도록 구원해준다.



파우스트에 대한 해석



파우스트에 대한 해석은 난해한 내용만큼이나 아주 다양하다.

메피스토에게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반대로 지폐를 찍어내고 간척사업으로 사회의 변화를 일으키는 모습에 계몽주의적인 느낌을 받았다는 의견도 있다.


신화를 토대로 한 개별적인 사건에 대한 다양하고 복잡한 해설들은 그렇다 치고,

책의 말미에 숨을 거두는 파우스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과연 파우스트는 구원받아야 마땅한가?


구원받아야 마땅하다면 그의 욕정 때문에 죽은 마르가레테와 그의 자식들은?

간척사업 때문에 죽은 오두막의 노부부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 중 희생되는 것들은 어찌할 것인가?

파우스트는 구원받아야 마땅한가.

나는 사실 주님의 선택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책의 명대사라고 할 수 있는 주님의 한 마디가 또다시 떠오른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도전하고 노력하기에 겪게 되는 사람들의 방황을 보듬어주고자 괴테가 작품 속 주님을 통해 던진 위로의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방황'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주님의 말에는 부정의 의미도 숨겨져 있다고 생각이 든다.

한 인간의 노력에 의한 방황으로 삶이 뒤틀려버리는 주변인들의 삶들을 단순하게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침반도 여러 번 고개를 흔들어가며 제자리를 잡아가듯 인간도 많은 흔들림 속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겠으나 자신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저지른 행동이 또 다른 불행을 가져온다면 그 아무리 폭풍 같은 열정이라도 타당한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


모든 학문을 공부했음에도 갈증을 느끼는 파우스트, 노력하기에 방황한다고 말하는 주님,

내기에서 진 메피스토펠레스, 이들이 말하는 인간의 욕망.

과연 인간이 갖고 있는 욕망은 본능인가 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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