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빵필 Sep 28. 2019

마크 롤랜즈-철학자와 늑대

11년의 시간을 함께한 철학자와 늑대 이야기


이 책의 주인공인 철학자 마크 롤랜즈의 늑대, 브레닌은 새롭고 익숙하지 않은 것을 보면 물어뜯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롤랜즈는 브레닌과 함께한 지 한 시간 만에 1,000달러를 날렸는데, 500달러는 브레닌을 사는 데, 그리고 500달러는 브레닌이 고장 낸 에어컨을 수리하는 데 든 비용이었다.


브레닌과 만날 당시 롤랜즈는 터스컬루사라는 도시의 어느 한 대학 철학과에 조교수를 2년째 재직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대형견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터라 '96% 새끼 늑대 판매'라는 광고를 보았을 때,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모든 방법을 통해 늑대를 없애려던 미국 정부의 총과 덫을 피해 야생의 피를 이어가는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웠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잡종의 동물이 96% 늑대의 피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롤랜즈는 생각했다.

아마도 불확실하지만 100% 늑대일 가능성도 농후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롤랜즈는 갈색의 털빛을 가져 작은 새끼 사자를 연상시키는 이 늑대를 입양했고, 자연스럽게 웨일스어로 왕이라는 뜻의 '브레닌'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드넓은 초원과 설원 대신 비교적 좁은 마당과 언덕에서 인간과의 공존을 그려나가는 늑대의 삶이라.

어쩌면 혹자는 브레닌과 롤렌즈의 만남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선택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늑대는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로부터 적절한 훈련을 받는다.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못하고 무작정 야생으로 방생하면 곧 죽게 될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고로 모름지기 늑대라면 무리와 함께 어울리고 사냥해야 진정한 늑대로서의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늑대에게 있어 자연의 의도는 무엇일까?

자연이 어떤 의미에서 '의도'라는 것을 지닐 수 있을까?

늑대와 개가 과거에 누리던 환경은 변화했다.

인간은 60억이고 개는 4억 마리인데 비해 야생 늑대의 수는 40만 마리에 불과하다.

다른 종과의 공생관계를 맺음으로써 번식한다는 것이 자연의 의도라는 것을 벗어나는 행위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낯선 동거를 시작한 롤랜즈가 얼마 지나지 않아 브레닌을 통해 깨달은 것은 '늑대는 거짓말을 못한다.'는 사실이다.   

말은 해도, 거짓말은 못 한다.

브레닌이 한 살쯤 되었을 때, 롤랜즈는 미국 남성들의 주식인 헝그리 맨(msg범벅의 냉동식품 브랜드)을 먹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 탁자 위에 접시를 두고 전화를 받으러 갔는데, 그 사이에 브레닌은 헝그리 맨을 허겁지겁 다 먹어 치우고 거실 반대편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롤랜드를 마주친 브레닌은 한쪽 발을 들어 올리고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접시가 왜 비었는지 나는 몰라요. 내가 안 그랬어요.'라고 생각하며 뻔뻔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으나 늑대는 거리자 않았다.

늑대들이 못 하는 것은 거짓말이며, 그래서 문명사회에 맞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자신들이 동물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거짓말을 못하는 인간이 있다면 어떨까?

아마도 마찬가지로 거짓말을 하는 인간들이 그들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며 지배하려 들 것이다.




늑대보다 효과적으로 발전한 인간


롤랜드는 인간이 늑대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발전한 이유 중 몇 가지로 섹스와 고의, 정의를 언급하였다.

인간은 속임수와 계략으로 다른 이성을 공략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쾌락을 체험하기 위해서다.

일 년에 한두 번의 교미를 하는데 반해 인간은 쾌락을 위해 섹스를 하기도 한다.

이 것은 영장류의 성적 욕구가 늑대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뜻한다.

쾌락을 위한 속임수와 계략을 다른 방향으로도 발전하였다.

무언가를 만들고 부수기 위해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때로는 누군가를 공격할 때 이 방법이 악용되기도 했다.

서로를 공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면, 서열싸움이 아닌 단순한 질투와 분노로 인한 고의적인 살인이 난무한다면 그 사회는 해체될 것이다.

그래서 정의가 만들어졌다.

근거, 증거, 정당화, 보장.. 이 것들은 정말 사악한 동물들에게만 필요한 개념이 아닌가?

불만이 많을수록 더 사악해지고, 화해에 무감할수록 정의는 더 필요해진다.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영장류만이 도덕적 동물이 충분할 만큼 불만으로 가득하다.

최고의 상태의 최악의 상태에서 나온다.

롤랜즈는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40억 년의 맹목적이고 생각 없는 발전 끝에 우주는 브레닌을 창조해 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더 가치 있는 존재인가?'

20세기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가치가 있는가?'라는 실존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는 점이 인간만의 특징이자 가치라고 말한 바가 있다.

이는 넓은 의미의 이성으로서, 이런 이성 때문에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고들 말한다.

그리너 '우월하다.'라는 단어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의문이다.

복잡한 논리나 개념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롤랜즈(인간)가 뛰어날지 몰라도 달리기에 있어서는 브레닌이 우월했다.

인간의 이성이 동물의 속도나 지구력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가?

현재의 상황에 알맞게 진화한 것은 맞지만 우월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다윈의 진화론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절대적인 우월성은 없다.

단지 현재의 환경에 적합한 특징을 가진 생명체가 순간의 번영을 누릴 뿐이다.




인간과 늑대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일까?


21세기 초 서양 미덕에서 수줍음과 신중함은 높은 순위를 차지하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언제 가장 행복한가요?'라는 질문에 흔쾌히 대답해주었다.

모든 연구 결과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사실은 사람들은 분명 섹스를 할 때 가장 행복하고, 직장 상사와 이야기할 때 가장 불행하다는 것이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김중혁 작가는 이 책을 다루며'직장상사와 섹스를 하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요?' 라며 되물었다.

팟캐스트에 가끔씩만 등장하는 아주 수준 높은 질문은 내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가끔은 이 맛에 빨간 책방을 듣는다.


늑대 브레닌은 가끔 토끼를 사냥했다.

토끼가 한눈을 파는 사이 몇 센티미터쯤 다가간 뒤 가만히 엎드려 다음 기회가 오길 기다리는 것인데 주인공은 브레닌이 15분 동안 기다리는 모습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냥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두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브레닌은 사냥이 끝나면 성공했든 실패했든 껑충껑충 뛰어와 달려들었는데, 이러한 행동은 녀석이 기쁠 때 하는 행동이므로 행복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브레닌의 행복은 토끼를 턱으로 물었을 때 느끼는 즐거움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우리는 무엇을 꼭 성취해야만 기쁜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성취감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성취했다고 해서 이것은 끝이 아니다.

곧 다음 생각과 의무감으로 옮겨가 불편함과 압박감을 또다시 시작될 것이다.


저자인 롤랜즈는 브레닌과 토끼를 관찰하며 행복이라는 것은 불편함을 끌어안고 있는 감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선인은 '고진감래'를 말하며 고생 끝에 행복이 온다는 인과관계를 말했지만, 고생을 하고 성취하지 못한다면? 고생하지 않고 성취를 한다면 그것을 덜 가치 있는 것일까?

행복의 필요조건은 불편함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며 즐거움과 불편함이 하나 되어야 완전한 행복이라 할 수 있다.

어느 한쪽을 헐어내면 모두 허물어지는 구조물처럼 말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감정이 아니라 토끼를 쫓아야 한다.

가장 좋은 순간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는 동시에 즐겁지 않은 현실의 가치도 인정하는 시간 속에 있다.


우리는 속임수와 계략으로 얻어내는 성공이 수반하는 감정만을 쫓고 실패로 인해 따라오는 감정은 피하려고 한다.

목표 달성은 또 다른 목표를 찾는 것으로 이어지는 순간순간이 연결된다.

이러한 과정을 우리는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행복 달성의 순간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성공 후에 찾는 또 다른 성공의 연속으로 끝없이 지연된다.

우리는 최소한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행복할 수 있는 동물은 아닐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브레닌의 죽음

반려견과 함께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인간보다 빨리 생을 마감한다는 사실을..

롤랜즈의 브레닌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남부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던 중 브레닌은 심하게 더위를 타는지 밥을 먹지 않기 시작했다.

이상한 느낌을 받은 롤랜즈는 장 미셸이라는 의사를 찾아갔다.

어린 시절 프랑스어를 잠깐 배웠지만 의학에 관련된 단어를 이해하기에는 한참 부족했던 그는 대충 브레닌의 비장에 혹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듣고 수술을 허락한다.

수술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의사는 'C'est tres bon (very good)'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브레닌을 지프차에서 내리려고 하던 도중.. 롤렌즈는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모습을 발견한다.

수술 도중 항문샘이 세균에 감염된 것이다.

이내 차를 되돌려 병원으로 달려가 감염된 항문샘을 제거하고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 브레닌은 다시 건강해지는 듯했다.


몇 달간 브레닌을 간병하던 롤랜즈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의 두려움은 브레닌이 죽으면 어쩌지? 하는 어쩌면 오래전 마음의 준비가 완료된 걱정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두려웠던 것은 브레닌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기를 사랑해줘야 할 사람이 고통을 주고 있다고 오해할만한 상황으로 브레닌에게는 비칠 수 있다는 것이 롤랜드에게는 너무나도 힘들었다.



사랑이라는 얼굴



저자는 사랑한다면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이해해야 함이 분명하지만 그만큼 강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강아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롤랜드처럼 털이 깎여진 냄새나는 엉덩이를 한 달 넘게 두 시간마다 씻기는 일을 해보기 전엔 동물에 대한 애정의 깊이를 증명할 수 없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을 따듯하고 포근한 감정으로 기억한다.

브레닌을 간호하던 롤랜즈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을 느꼈다.

약을 주사할 때마다 차라리 일어나지 못했으면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견뎌내고 브레닌의 생명을 몇 달 이상 연장시켰다.

사랑은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사랑은 때때로 아프다.

사랑은 당신을 지옥으로 떨어뜨릴 수 있고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안겨주기도 하겠지만, 운 좋게 진짜 사랑을 만난다면 그 속에서 당신을 구원해줄 것이다.

소중했던 브레닌의 기억이 롤랜즈를 아직까지도 살게 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며..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통해 이 책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철학자와 늑대'라는 책의 줄거리가 늑대를 통해 철학적인 깨달음을 얻는 학자의 이야기인 줄 오인했다.

물론 늑대와 인간의 동거 속에서 실제로 경험하고 느꼈던 체험담은 생동감 넘치고 설득력 있었다.

특히 행복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더욱 그랬다.

롤랜즈는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목표에 도달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는 동물은 아니라고 말했다.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노력해서 도달하는, 산 정상에 오르는 등반가가 돼서는 궁극적인 행복을 얻을 수 없음을 역설했다.


내가 진정 이 책의 아름다움을 느꼈던 부분은 책의 말미였다.

영화나 소설을 봐도 쉽게 느껴지지 않았던 뜨거운 감동이 롤랜드와 브레닌과의 이별 장면에서 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약을 주사할 때마다 '늑대가 내 곁을 떠날까봐'가 아닌 '내가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할까봐 너무나도 두려웠다니.. 롤랜즈는 이 성적이 아닌 형제로서의 궁극적인 사랑을 했음이 틀림없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두려움만큼이나 자신의 사랑을 상대방이 오해할 수도 있다는 걱정과 미안함이 담겨진 저자의 글을 보았을 때, 평소 느끼지 못했던 감동을 느꼈다.

얼굴도 모르는 브레닌과 롤랜드가 어떠한 형태로 그려져 서로 마주하는 장면도 머릿속에 그려졌다.


나는 롤랜즈처럼 인생의 긴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반려견과 함께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아니면 떠나보냈음에도 평생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대상이 어찌 됐든 책의 말미에 브레닌을 간호하던 롤랜드의 모습처럼..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내 곁을 떠나지 않길, 내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어 오해하지 않길 바라며 철학자와 늑대 리뷰를 마친다.

모두가 특별한 깨달음을 주는 자신만의 철학을 갖길, 소중한 누군가를 함께.

작가의 이전글 다치바나 다카시-임사체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