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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필 Aug 28. 2019

다치바나 다카시-임사체험

Near death experience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생명체는 이 세상에 존재할까?

'영원'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는 사람은 진 시황제다.

시황제는 분서갱유를 주도한 폭군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만리장성을 쌓아 흉노족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강인한 군주로 중국인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절대 황제도 결국 피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불로불사를 향한 그의 끊임없는 진념은 존재하지 않는 희미하게 보이는 섬(신기루)을 불로불사가 존재하는 산이라는 망상으로 빠지게 만들었고, 방상이라는 자는 이 틈을 노려 불로불사의 약을 가져오겠다는 거짓말로 진시황을 속여 수많은 보물과 삼천 명의 궁녀를 이끌고 어딘가로 떠나 잠적하게 된다.

그가 돌아오지 않자 시황제는 수은을 불로불사의 비약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먹게 되는데, 오래 살고자 하는 욕망은 결국 생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죽음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모든 것을 가진 황제의 인생을 단축시키게 하고,

진보한 인류도 결국 정복하지 못하는 미지의 공간으로 남아 있을까?

죽음이라는 것은 삶의 끝을 의미하는 것일까? 다른 세계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까?

결코 풀지 못할 것 같은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줄 몇 가지 스토리가 바로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 '임사체험'에 있다.



임사체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좀 고민해보았다.

임사체험은 영어로 near death experience, 죽음이 임박한 상태에서의 경험을 말한다.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거나 수술 중 심장마비가 와서 죽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살아났을 때, 주로 임사체험을 겪었다고 보고된다.


죽음이 임박한 상태를 경험했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인가 살았다는 것인가?

임사체험이란 뇌가 일으키는 착각인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우리가 믿을만한 체험담인가?

나는 일단 임사체 상태를 설명해줄 만한 아주 좋은 작품이 생각났다.

바로 영화 '신과 함께'다.


신과 함께 (죄와 벌)


이 영화의 주인공인 차태현은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가진 중년의 남성으로 등장한다.

그는 화재현장에서 불길을 진압하던 중, 불행하게도 타인을 구하다 사망을 하게 되는데..

사망 직후 세 명의 저승차사(하정우, 주지훈, 김향기 )가 등장하여 그를 귀인이라 칭하고 저승으로 데려간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차태현은 49일 동안 7번의 재판을 받는다.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 다시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데 그 행운의 기회를 거머쥔 셈이다.



영혼만 남은 채로 저승 차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차태현


위 사진과 같이 차태현은 구급차에 실리는 자신의 육체를 뒤로 한 채, 저승차사인 주지훈과 김향기의 대화를 듣게 되는데 이러한 체험을 바로 임사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임사 체험담이 영화 신과 함께에서 차태현의 저승 체험기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면 책을 읽으면 훨씬 이해가 더 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혼의 무게는 21그람이다?


영혼이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1970년대 미국의 의사 던칸 맥두걸은 영혼에도 무게가 있다고 주장했다.

죽음의 고비를 앞둔 환자의 질량 변화를 측정해서 얻어낸 결과로 위와 같은 연구결과를 도출해낸 것이다.

그러나 클라크라는 의사는 허파의 냉혈이 빠져나가 생기는 변화이며, 단 한 명의 몸무게 변화를 통해 얻은 결과로 영혼의 무게를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비판하였다.

과학 사회 내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영혼에 21그램의 무게가 있다는 사실은 세간에 흥미를 이끌어냈으며 2003년 영화 주제로 채택되기도 했다.


맥두걸 주장이 사실이라면, 영혼의 무게는 모두 21g로 동일하니 저승에서는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평소에 살이 쉽게 찌시는 분들에게는 희소식이 틀림없다.





임사체험이란 무엇인가?



임사체험이란 영어로 'Near-death experience' 즉 죽음에 가까워진 상태에서의 체험을 말한다.

이는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렀던 사람이 구사일생으로 의식을 회복한 후 이야기하는 이미지 체험으로 아래와 같은 공통된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삼도천(이승과 저승 사이의 경계를 나누는 강)을 보았다.

두 번째는 꽃밭을 걸었다.

세 번째는 혼이 육체를 빠져나갔다.

네 번째는 죽은 사람을 만났다.


임사체험의 정의와 해석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논의가 있다.

하나는 이 체험이 사후세계를 잠시 체험하는 것이며, 혼의 존재와 사후 존속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며,

다른 하나는 삶의 최종 단계에서 쇠약해진 뇌가 만들어내는 특이한 환각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1990년부터 5년 동안 취재한 비디오테이프만 230개에 이르며, 취재노트는 무려 9권이나 된다.

믿을 만한 체험담인지 아닌지는 여러분의 선택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분명한 것은 다치바나 다카시 같은 학자들이 점점 드러나 과거보다 현재 더 임사체험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져 1990년에는 워싱턴의 조지타운 대학에서 13개국, 300명의 연구자들과 체험자들이 모여 임사체험을 연구하는 제1회 국제회의까지 열렸다고 한다.





임사체험 이야기 속으로


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강, 삼도천



자 그럼 일본의 오하라 씨의 체험담을 시작으로 몇 가지 임사체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니가타 현에 사는 오히라 씨(41)는 위궤양으로 대량 출혈을 한 후 혼수상태에 빠져 호흡이 몇 번이나 정지하고 3일 동안 사경을 헤맸다.

"저는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머리로부터 점점 빠져나가는 겁니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어요. 침대 위쪽부터 침대 위의 몸에까지 비스듬히 실 같은 것으로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 의사와 형제, 아버지, 어머니가 있는 게 보였습니다. '이봐.' 하고 모두에게 말을 걸어보고 만져도 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오하라 씨는 25살 때도 사경을 헤맨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주위가 깜깜해지더니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발 밑을 보니 물이 있는 겁니다. 그때는 물을 마시는 게 금지되어 있어서 목이 말랐던 차에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물을 떠 마셨습니다. 아무 맛도 없었어요. 강은 크고 넓었는데 주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튿날에 오하라 씨는 강에서 다이아몬드 같은 작은 돌을 발견했어요. 더워서 물에 들어가 건너편 강기슭까지 건넜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거기 계시는 겁니다. 사진으로밖에 본 적이 없는 그분들은 '넌 아직 오지 말거라' 하시며 도중까지 데려다주셨어요,

사흘째 되는 날에도 강이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강 건너편이 잘 보였습니다. 풀이 무성하고 꽃이 피어있었습니다."


오하라 씨의 사례가 이 책에서 첫 번째로 등장하는 이유는 그가 경험한 임사체험이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비교했을 때 가장 보편적인, 공통된 경험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후에 말하겠지만 강과 꽃밭을 본다는 증언은 상당히 많다.

이미 죽은 가족들을 보았다거나 자신의 몸과 영혼이 실로 연결되었다는 공통된 증언 역시 인터뷰를 통해 여럿 진술되었다.


놀랍게도 서양의 고전 플라톤의 국가에서도 임사체험이 등장한다.

제10권의 13편에 용감한 전사의 후손 엘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전장에서 최후를 맞은 엘이 죽은 지 12일째가 되던 날 다시 살아났다고 이야기했다.

그가 말한 것은 다음과 같다.

"혼이 몸을 떠난 후 다른 많은 혼들과 함께 길을 걸어가서 이윽고 어떤 영묘하고 불가사의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의 하늘과 땅에는 구멍이 두 개씩 나란히 뚫려 있었고 그 사이에는 재판관들이 앉아 있었다.

죽어서 하늘에 가면 어떤 생활을 했는지, 천국 혹은 지옥으로 갈지 상벌을 받는데 이 상과 벌은 모두 천 년 동안 지속된다.

그것이 끝나면 제비를 뽑는데 인간에서 동물이 되는 자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


엘의 이야기를 읽은 여러분은 빵필과는 다르게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을 것이다.

지상에서의 삶을 어떻게 살았냐는 가에 따라 천국과 지옥에서 천년을 보낸다라는 말이 사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디 나와 함께 천국에 보낼 분들이 독자분들 중에도 여럿 있길 바란다.


칼 융의 임사체험


플라톤의 국가에 임사체험설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꽤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우리를 놀라게 해 줄 유명한 학자의 경험담이 있다.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은 임사체험을 실제로 경험했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자서전에 상세히 기록하였다.

"1944년 초 나는 심근경색에 이어 다리가 골절되는 재난을 당했다.

의식이 상실된 가운데 나는 우주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거기에서는 감청색의 바다와 대륙이 보였다.

발아래 저쪽 먼 곳에는 실론섬(아마도 스리랑카)이 있고, 앞쪽은 인도였다.

옆에는 홍해가 있었고 지도 왼쪽에 지중해를 나는 볼 수 있다.

눈에 덮인 히말라야는 주변에 안개가 자욱했다.

지구의 대부분은 색깔을 띠고 있었고 군데군데 그을린 은 같은 짙은 녹색의 반점을 띠고 있었다."


칼 융이 살던 20세기 중반, 사람들은 지구가 푸르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우리들은 모두 아폴로 우주선이 찍은 지구의 모습을 보았기에 융이 본 지구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겠지만,

아폴로 아니 가가린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융이 지구를 거의 완벽하게 묘사했다는 것은 정말 놀랄만한 일임이 틀림없다.

과연 그의 영혼은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를 경험했던 것일까?

믿기 어렵지만 불신하기도 어려운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임사체험 시 환자는 다량의 엔도르핀을 분출한다?



임사체험은 고통을 동반할까?

저자는 임사체험 시 환자는 다량의 엔도르핀을 분출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엔도르핀 덕분인지 체험자의 대부분은 이 경험을 멋진 체험이라고 말하지, 부정적 측면을 보고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환각제를 이용한 체험담과는 다르다.

임사체험에서는 체험자가 이것을 진정한 현실이라고 생각하는데 비해 환각제 체험에서는 현실이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체외 이탈 감에도, 임사체험의 경우는 주체가 육체를 떠나 천장 쪽으로 올라가며 눈 아래에 있는 자신의 육체를 바라본다고 말하는 것에 반해 환각제 체험자는 자신이 2개로 보인다거나 보고 있는 자신도, 보이는 자신도 살아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말하며 심리적으로 동요한다.


하지만 이 엔도르핀설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엔도르핀이란 인간의 체내에서 만들어져 소화되는 것인데, 그 효과를 조사하기 위해 엔도르핀을 체외에서 주사하여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관찰하는 실험이 실시되었다.

엔도르핀을 주입한 환자는 대게 잠들고 의식이 흐려졌다.

그러나 임사체험을 하며 엔도르핀 수치가 높아졌던 환자들은 육체만 잠들었을 뿐 내적 의식은 아주 선명했고 일생에서 자신의 머리가 그만큼 맑은 상태가 된 적은 없었다고 말하였다.

엔도르핀이 아닌 무언가 다른 원인이 인간의 뇌를 자극했음이 틀림없다.




임사체험에 관련한 통계와 책의 끝맺음


임사체험 연구의 대부로 꼽히는 무디


무디는 life after life라는 사후의 세계에 관련한 책의 저자다.

그는 1970년대 중반 임사체험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는데 이 기간 동안 임사체험 경험자에게서 몇 만 통이나 되는 체험담이 쓰인 편지를 받았으며 그중 50개의 보편적인 사례를 선택해 'life after life'라는 책을 저술했다.

"임사체험 시 체외 이탈의 체험자가 에버그린 대학에서는 71%이며 링(케네스 링, 인물)의 조사에는 37%입니다. 빛의 체험은 전자가 56% 인데 후자는 16% 이지요.

이는 이 체험이 보편적 현상이라는 건 이미 증명되었다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후의 삶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 판단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요.

내 친구 가운데 비라는 여성이 있었어요.

그녀가 급성담낭염으로 입원해서 수술을 받았을 때, 갑자기 심장이 멈추고 말았어요.

의사들이 필사적으로 소생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을 때, 그녀는 체외 이탈을 해서 천장 부근에서 그 상황을 내려다보고 있었지요.

그녀는 의사와 간호사에게 말을 걸려고 했지만 누구도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둥둥 뜬 채로 병원 밖으로 나왔고. 병원 밖에서 자기 딸 캐시와 제부, 그의 친구가 대화를 나누던 것

(내가 죽을 것 같으니 장례식 참석을 위해 아테네행 비행기를 취소해야겠다는 등의 이야기)을 들었는데 비는 다시 살아난 후 그때 자기가 본 것이 환각이었는지 사실이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때 본 모든 일이 현실에 일어난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례들과 가까운 지인의 체험담을 들어본 결과 저는 체외 이탈이 정말 존재한다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많은 사례가 상, 하로 나뉜 이 책은 다양한 기록들로 채워져 있지만 결론적으로 임사체험을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현실 체험설이며 다른 하나는 뇌내 현상설이다.

죽음이 임박한 현실에서 정말 경험했다는 견해와 산소가 부족해진 뇌에서 착각을 일으켜 임사체험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내다는 설이다.

이 책의 9장에서는 임사체험자가 소변이 묻은 베개를 세탁하지 않고 그대로 환자에게 가져다주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였고 19장에 등장하는 E.H씨와 22장의 설리반 씨는 수술을 받는 것을 체외 이탈하여 천장에서 내려다보았고 비교적 상세히 진술하였다.

눈이 보호 시트로 가려져있고 테이프로 고정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얼음 조각을 가득 채운 심장이 유리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등의 임사 체험담을 인터뷰하였다.

이 이야기들이 사실이라면 현실 체험설=혼 가설= 사후세계 가설이 성립하게 된다.


뇌내 현상설로 반박하는 입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래와 같다.

케네스 링은 임사체험자들이 대부분 종교적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70% 이상은 천주교 혹은 개신교도이고, 20% 이상은 그 이외의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무신론자이거나 불가지론자(모른다)는 겨우 7%에 불과했다.

그런 사회에서는 문화적 영향으로 체험 내용에 신의 존재를 믿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필연적으로 반영되었기 때문에 임사체험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주장이 있다.





빵필의 생각


뇌내 현상설과 현실 체험설, 이 두 가지 설에 대한 입장 정리와 임사체험을 체험한 이들이 삶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잘 살고자 하는 의욕에 가득 차 있었다는 임사체험자의 소감을 마지막으로 책은 끝난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에피쿠로스 학파는 죽음에 대해 '네가 죽음을 무서워하고 있는 동안은 죽음은 아직 오지 않았다. 진짜로 죽음이 다가왔을 때는, 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너와 죽음이 만나는 일은 없다.

죽음에 대해 고뇌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라고 정의 내렸다는데, 어쩌면 죽음은 인간이 만들어낸 두려움과 고통의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후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라는 공자의 말처럼 죽음에 대한 호기심은 주제넘은 것일 수도 있으며,

'걷은 것은 넘어지지 않으려는 노력에 의해서, 우리의 몸의 생명은 죽지 않으려는 노력에 의해서 유지된다.  삶은 연기된 죽음에 불과하다.'는 쇼펜 하우어의 명언처럼 죽음은 우리가 피하지 못하는 절대적인 것이므로 결코 밝혀내거나 거역할 수 있는 대상, 감히 언급해서는 안될 거대한 대상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는 뇌내 현상설이 맞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으나 이는 단순히 사견일 뿐 진리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깨끗하게 닦아 놓은 카페의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사후세계에 대한 나의 생각을 곰곰이 정리해보았다.

나는 뇌내 현상설보다는 현실 체험설이 맞기를,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것보다는 혼이 존재하는 사후세계가 존재하길 바랐으면 하는 입장에 서기로 했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고통으로 뒤덮인 현실에 사는 이들이야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겠지만,

견디지 못한 아픔과 고뇌의 순간이 내게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나는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거나 엉뚱한 대상으로 윤회하기보다는 사후세계가 존재하길 바란다.

조금 욕심을 내보자면 인간이 사진기를 처음 발명했을 때, 기계 혼을 빼앗아갈 거라고 두려워했으나 막상은 아무것도 아닌 그림 복제기였던 것처럼, 괴물이 존재한다는 소문에 달 착륙을 두려워했지만 실제로는 그냥 커다란 돌덩이였던 것처럼, 사후의 새로운 세계 역시도 우려와는 다른 보통의 장소이길 바란다.


책의 옮긴이 윤대석 씨의 말처럼 죽은 혹은 앞으로 죽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가 다시 만날 기회가 있겠는가?


이러한 생각을 해본다면 나의 바람을 조금 더 간절하다.

사후세계가 없다면 천 년 만 년을 살아도 그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사후세계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다시 태어난다면 같은 부모님과 친구들을 만나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은 진지한 생각들이 이 책의 끝부분을 읽을 즈음 조용히 떠올랐다.

오늘 자고 내일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복잡한 일상과 감정들이 이 소중함을 대신하겠지만,

적어도 가끔은 글을 다시 읽어보며 삶과 사람의 소중함을 되새겨보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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