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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정 Oct 07. 2022

4. 어떤 이별은 끝나지 않는다

끝나지 않는 이별을 우리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자꾸 곱씹게 되는 관계가 있다. 잠시 여유 시간이라도 가지려 하면 머릿속에 비집고 들어오고, 그럼 사진첩을 뒤지며 좋았던 순간들을 기억하곤 한다. 중학생 때, 초코색 푸들 몽쉘이를 떠나보내면서 그런 감정을 처음 느꼈다. 이후 절친한 친구였으나 사춘기의 자존심 때문에 멀어진 M, 캐나다로 떠나 좋아한다는 말도 못 했던 J, 헤어진 전 연인들 중 몇몇-모든 연인을 기억하는 건 아니다-을 나는 종종 떠올린다. 그리워하거나,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건 아니다. 관계가 끝났던 그 지점에 다시 돌아가 그때의 시간을 살피는 일일 뿐이다. 이 살핌은 조금은 뻣뻣해진 나의 기억에 다시 피를 돌게 하는 일이고, 나를 보살피는 일이다.

 그러나 사랑의 잔해가 남아있는 현장을 다시 찾으려면 꽤나 굳은 결심을 해야 한다.

 

 이번 싱글 '갈피'는 꽤 오래 사귀었던 애인과 헤어지고서 만든 짧은 곡이 시작이었다. 그때는 가사도 단 네 줄 밖에 없었고 제목도 없었다. 그래서 ‘무제’라고 오랫동안 불렸는데 이제야 제 이름을 찾았다. 이름을 찾는 데에 정말 많은 고생을 했는데, 그건 다음에 이야기해보려 한다.




S와 헤어진 건 뜻밖의 일이었다. 며칠간의 다툼 끝에 결국 나의 사랑과 S의 사랑은 다르다는 걸 확인하고 우리는 울지 않고 지하철까지 걸어갔다. 7호선 지하철 승강장에서 포옹과 함께 나누었던 마지막 인사는

-잘 지내

-응 너도. 어, 지하철 온다.

-나 갈게.

가 전부였다. 내일 만날 것 같은 사람들의 인사 같았다. 사실 그때 나는 너무 어려서 S의 마음은 생각하지 못했고, 그저 그를 애 같다고 여기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한동안 좋아하던 사람과 관계를 끝냈다는 생각보다도, 그 애가 얼마나 바보 같고 실망스러운지가 자꾸 떠올랐다.

S와 나의 지하철 인사가 이별이었다고 감각하게 된 건 몇 주 후, M 언니가 이별주를 사준다며 양주 한 병을 사주었던 날이다. 양주 한 병을 둘이서 다 비우고, 신나게 웃고 떠들고 춤추다가 헤어졌는데 집에 가기 아쉬워 한참을 걸었다. 결국에는 걱정이 된 엄마가 차를 끌고 데리러 왔는데, 그 차 안에서 엄마에게 고백했다. S랑 헤어졌다고. 엄마에게 연애사를 먼저 말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차 안에서 울었다. 그 애가 밉고 싫어서가 아니라 보고 싶어서.

좋아하는 마음 끝에 남겨진 희뿌연 잔해는 바람이 불면 피어올라 나를 감쌌다.


꿈꾸지 않았을 거라면 차라리 잠드는 게 좋았을 거야
꺼지지 않는 너희 집 창문 앞에 서 있어도
마주치지 못하는 너와 나는 어차피
끝나지 않는 오독 끝에 울고 싶은 마음만 가득해

-<무제>


 꽤 쌀쌀했던 겨울밤 그가 생각나 적은 글이다. 한동안 S가 꿈에 나왔었는데,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S의 꿈을 꾸고 나면 항상 아쉬웠다. 당장이라도 집 앞으로 찾아가면 만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마음이 말을 걸었다. 이제 관계가 끝났으니, 정리해야 하지 않겠니? 만나면 만날수록 힘들어질 거라고. 나와 너무 닮아서 좋아했던 사람이지만 사실 사람은 모두 다르고, 우리는 그 다른 부분이 참 맞지 않았다고.

그리고 나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니 그와 다시 연애할 일은 없을 거였다.


조각난 관계는 내 몸에서 떨어져 나와 우주 저 멀리 사라져 버리고, 나는 구멍 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이 괴로웠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추억들이 살이 차오르지 않은 마음을 자꾸만 찔렀다. 그래서 나는 그 해 겨울잠을 참 많이 자고 여러 일을 했다. 아픔 밑에 깔려 작게, 추억을 곱씹고 싶다고, 그때 행복하지 않았느냐고 목소리를 내는 마음을 무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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