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기 #04
물론 가격은 훨씬 저렴하지만 나는 그 옛날 도끼처럼, 호텔살이 중이다. 자가 격리까지 합쳐 세 달째에 접어들다 보니 호텔살이 스킬이 부쩍 늘었고,
홍콩에서 계속 지내야 한다면 호텔살이를 계속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하고 말기도 한다.
'들기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러가지를 플러스 마이너스 해볼 때 합리적인 가격때문이다. 물론 항상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두 가지 단서가 붙는다. 첫번째 코로롱, 두번째는 지역이다.
먼저 홍콩은 코로롱 시국 내내 굳게 닫혀 있었기 때문에 많은 호텔이 파격적인 할인의 월 렌트를 운영하는 중이라 이 합리적인 가격이 가능하다. 나는 작업실이 끄트머리라 끄트머리 동네에 머물고 있지만,
코로롱 때문에 다같이 힘들어서 인지 잘만 찾아보면 비슷한 가격으로 완차이, 센트럴에서도 구할 수 있다.
다음은 지역이다. 내가 지내는 호텔은 코로롱이 아니더라도 위치 때문인지 시설과 서비스에 비해 가격이 참 저렴하다. 그래서 코로롱 이전에는 패키지 여행객이 주고객이었고, 몇 년간 살았다는 사람도 있는 걸 보니 코로나 이전부터 서비스 아파트처럼
비슷한 가격으로 운영해온 듯하다.
해변이 보이는 말끔한 트윈룸, 주 2회 시트 교체에 청소에 전기, 온수도 팡팡 쓰고, 무료 셔틀버스로 가까운 역까지 연결, 신청하면 한끼 50HKD에 점심 도시락도 배달해준다. 홍콩에서 10,000HKD에 이정도라면 매우 착한 가격이다.
하지만 '말기도' 하는 이유가 단 하나지만 치명적이라 문제다.
창.문.이. 열.리.지. 않.는.다.
자가격리를 때도 이 치명적인 단 하나의 이유때문에 패닉이 오곤했다. 컨시어지에 문의하니 홍콩의 호텔은 창문을 여는 것이 불법이라는 답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창문을 열 수 있는 고가의 자가격리 호텔을 알고 있고, 어떤 이들은 서류에 서명을 하고 창문 키를 받았다는 후기도 본 적이 있다.) 어쨋든 대부분의 호텔 창문이 열 수 없도록 단단히 봉해져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24시간 에어컨 풀가동, 그래도 치명적인 답답함은 피할 수 없다. 아마 내가 계속 호텔에서 지낸다면 초대형 공기청정기를 들이거나, 답답함을 못 이기고 부끄러움 없이 잠옷 바람으로 로비에서 폰질하는 것이 일상이 될 것이다.
게다가 바로 어젯 밤에는 어디선가 몰래 피워대는 담배 냄새가 통풍구를 통해 흘러들어와 새벽 세시까지 컴플레인 대환장 파티를 벌이고, 결국 다른 방의 키를 받아 밤을 보내었다.
역시 도끼가 아닌 손도끼스러운 호텔 생활은 만만치 않다. 이제 세 달의 호텔살이가 끝나면 나는 내 집으로 돌아갈테고 그곳은 여전히 영하를 오가는 겨울이다. 하지만 전기장판을 잔뜩 올리고 창문은 열고
코가 깨지더라도 그렇게 한번 지내보면 어떨까 할 정도로 나는 열린 창문이 그립다.
맞아, 창문은 열려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