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스타벅스에 앉아 글을 쓰는가
주말 아침,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글 쓸 도구들을 챙겨서 일어났다. 부산스러운 소리에 덩달아 일어나버린 아들이 눈을 비비면서 나보고 어디 가냐고 묻는다.
"엄마 스타벅스 갈 건데, 같이 갈래?"
재미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던지, 아니면 장난감이 나올 구석이 없는 곳이라 그런 것인지 도리도리 하더니 자리에 가서 눕는다. 잠시 토닥토닥해주니 금방 다시 잠이 든다. 속으로 안 간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와서 길을 걷는다.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차갑고 청명하고 가을바람이 온몸을 휘감아 준다. 우리 집에서 푸른길이라는 공원길을 걸어 20분 정도 걸어가면 DT(드라이브 쓰루)가 있는 커다란 스타벅스가 나온다. 막 도착하려는데, 한 남자분이 캐리어에 커피 두 잔을 담아서 들고 가며 같이 온 내복만 입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의 커피를 사가는 것일까? 그런 생각만으로도 왠지 나의 기분까지 좋아진다. 아이랑 같이 나와서 커피를 사다 주는 남편이라니. 우리 남편과 아이는 아직도 쿨쿨 자고 있는데 말이지. 사실 생각해보면 자고 있는 게 더 나은 듯하기도 하다.
사람들이 보는 나의 본업은 글쓰기가 아니지만, 나는 나의 본업이 글쓰기라는 생각을 항상 품고 산다. 그런데, 나는 글 쓰는 장소가 항상 불만이다. 작가들의 서재에 대한 글이나 영상을 보면 책상 뒤 책장에는 책이 가득하고 무겁고 묵직해 보이고 (또한 비싸 보이는) 책상이 필수적인 듯 보인다. 또한 해외의 작가들의 창가에는 푸르름이 가득하다. 대자연이 마구 펼쳐져있다. 이야 글감이 마구 솟을 것만 같은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아직 나는 아직 되다만 작가임이 틀림없으니, 항상 식탁에 가득한 빵 부스러기와 아이가 올려놓은 장난감을 옆으로 쓱 밀고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아니면 아이 놀이방에 어수선함 속에 있는 아이 책상에서 장난감을 옆으로 내려놓고 글을 쓴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장인이 아닌지라 거기에서 글을 쓰다 보면 오만 생각이 다 들곤 한다.
'어제부터 확 추워졌는데, 내가 애 내복을 시켰던가?'
글 쓰다 말고 핸드폰을 켜고 쿠팡을 열어본다. 날씨가 추워져서 급하니 다시 내복을 시켜본다. 시킨 김에 이것저것 먹거리도 시킨다. 한참 뒤 다시 글을 써보려고 노력한다.
'아 맞다. 지노가 어제 아침에 떡 먹겠다고 했지?' 냉장고에서 떡을 내어놓는다. 부엌은 어제 설거지를 하지 않고 정리도 안 하고 자서 매우 지저분하다. 한숨을 쉬며 정리를 시작해본다. 그러고 나서 글을 쓰려고 하면 어디까지 썼는지 다시 읽어봐야 한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다시 퇴고하면서 써본다. 여러 번 끊기고 나서 쓴 글은 항상 흐름을 잃는다. 처음엔 분명 신이 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블로그 포스팅 처음엔 글이 가득하다가 마지막엔 사진 한 장에 글 한 줄을 쓰고 후다닥 마무리 지어서 발행해버리곤 한다. 글이 너무 마음에 안 든다. 근데 한 번 써서 발행해버린 글은 또 내 마음껏 수정해버리기 그러하다. 나는 언제쯤 괜찮은 글을 다시 써볼지 한숨을 쉰다.
그런 이유로 나는 글을 쓸 장소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굳은 마음을 하고 세수와 이만 닦고 스타벅스로 향했다.(애 밥도 안 챙겨뒀다, 남편이 알아서 하겠지)
내가 자주 보는 셜록 현준 유튜브에서 미니멀리즘 편에서 나온 내용인데, 3m 천 장고에서 공부한 아이들이 2.7m 높이에서 공부한 아이들보다 창의력이 2배였다. (복층으로 이사 가야 하나?) 그래서 그런 걸까. 나는 집에서 글을 쓰는 것보다, 야외에서 쓰는 것이, 혹은 또 넓은 다른 공간(도서관이나 붐비지 않는 카페)에서 글을 쓰는 게 더 편안하다. 집에서와 달리 크게 방해받지 않고 어떤 문장을 쓸지 크게 고민하지 않고 글이 술술 나온다. 지금 나는 최소한 3미터는 되어 보이는 천장 높이를 가진 이곳에서 커다랗고 묵직해 보이는 마치 작가의 책상같이 생긴 곳에 앉아 글을 써본다. 지금까지 이 글을 쓰는데 핸드폰 한번 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었다.
아직 제목의 스타벅스 찬가에 미치지 못하는 글인 듯하다. 그럼 왜 내가 찬가라고 했는지 더 써봐야겠다. 사실 주말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카페나 도서관은 이 근처에 없다. 나는 본업이 있고 돌봐야 하는 가족도 있어서 주말 아침에만 글을 쓸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사실 선택의 여지가 크게 없긴 하다. 이 근처에서 내가 갈 수 있는 곳 중 가장 높은 천장과 넓은 공간 일정한 커피 맛을 가진 곳이 스타벅스이다. 이미 물가는 돌아버려서 요즘 웬만한 유명한 카페에 가도 아메리카노 하나에 5000원이다. 그런 고로 넓고 아늑한 분위기를 가진 스타벅스에서 4,500원을 주고 앉아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2시간 정도 앉아있는다면 이미 공간 사용료로는 충분히 저렴한 가격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또한, 다른 카페와 달리 이곳에 오면 나의 의식의 흐름 탓인지 해외에 온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코로나 이후 해외에 나가지 못한 지 어연 3년이 되어간다. 하지만 이곳에 앉아 있으면 유독 여행에 갔던 기억이 뭉개 뭉개 피어나 나를 감싼다. 아마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커피 맛 때문일까? 런던에서, 밴쿠버에서, 도쿄에서, 취리히, 프라이부르크에서 먹은 커피나 여기 커피나 맛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유당불내증이 심한 편이고, 달달한 음료를 싫어하는 나는 세계 어디를 가나 아메리카노만 먹는데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는 솔직히 내 취향이라고 하기엔 조금 신맛이 강한 편이다. 그래도 괜찮은 것은 아마도 내가 적응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2000년 초반에 나는 밴쿠버에서는 어학연수를 하고 있었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돈이 없는 유학생이었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스타벅스에 자주 갔었다. 사실 더 이상 그렇진 않지만, 내가 어학연수에 간 20대 때는 한국에서 스타벅스에 가는 사람들은 된장녀라는 둥 하면서 사치하는 사람처럼 말하는 풍조가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캐나다에선 스타벅스 커피는 그렇게 비싼 축에 들지 않았었고, 친구들도 스타벅스가 다른 데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나는 아침마다 스타벅스에 가서 제일 싼 에스프레소를 텀블러에 담아달라고 시켰었다. 그렇게 시킨 커피를 들고 어학원으로 가서 뜨거운 물을 가득 부어서 하루 종일 홀짝 거렸다. 나중에는 물을 너무 타다 못해 밍밍해지고 마는 커피였고, 매일 커피에 1달러 정도의 돈을 쓰는 건 당시 1주일에 10달러로 살기를 해보던 나에게 정말 큰돈이었지만, 그게 나에겐 위안이 되는 하나의 작은 사치였었다. 당시 영어를 잘 못하던 내가 매일 아침마다 카페에 가서 영어로 주문을 해봤다는 희열감도 덤이었던 듯하다. (물론 영어실력이 늘기는커녕 에스프레소 발음만 좋아졌다.)
그런 식으로 여행 갔을 때의 스타벅스에 간 기억은 이상하게 잊히지 않고 기억에 남는다. 8월 초 엄마와 런던에 갔는데, 런던의 오락가락 날씨 탓에 잠바를 모두 껴입어도 추워서 스타벅스에 가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인 일, 기후위기로 40도를 찍는 더위에 시달리던 독일에서 유일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스타벅스라고 하여 검색해서 찾아간 후, 여름철의 혈중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상승을 느끼며 희열을 느낀 일, 취리히에서 스위스 물가의 혹독함을 체험하며 커피를 시켜먹은 일 등이 그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줬었다.
오픈 시간쯤 와서 그런지 조용하던 스타벅스도 이 시간쯤 되니, 사람들이 여럿 들어온다. 그만 추억여행을 하고 나의 현실의 삶으로 돌아가야겠다. 하지만 아마도 나는 다음 주에도 이곳에 와서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