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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이용성 Jul 24. 2017

작심삼일

나에겐 몇 년간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다.

나에겐 몇 년간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다. 


몇 년 전 녹음실에 그랜드 피아노가 들어왔을 때부터 그 웅장한 자태와 영롱한 울림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었고 음악에 있어 정규과정을 밟아본 적이 없는 나에겐 그 자체가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아무 음이나 눌러도 느낄 수 있는 깊은 소리를 들은 나는 결국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학원으로 찾아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찾게 된 동네의 어느 피아노 학원. 여느 평범한 학원과 별 다를 바 없는 곳인지라 기초만이라도 배워봐야겠단 심산으로 갔었다. 하지만 역시 나이 먹고 무언가를 배운다는 게 만만치는 않았다. 우선 그곳에 있는 수강생들의 99%가 초등학생(...)이었고,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으로 보이는 꼬마 녀석들은 마치 내 기를 죽이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저마다 뽐내듯이 듣기에도 복잡하고 어려운 곡을 아무렇지 않게 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더듬더듬 하나씩 배워가는 과정인지라 곤란함을 겪고 있는데 꼬마 녀석들은 어깨너머로 신기한 듯 보면서 형편없는 내 실력에 비웃는듯한 느낌마저 받았다.(...)


‘나이 30 먹고 어린이 바이엘이라니...’라고 되뇌었지만 실력은 어린이 바이엘 上권을 떼는 것도 한 달 걸렸다.(...) 일주일에 다섯 번씩 퇴근하고 두 시간씩 연습했는데 생각만큼 뭔가 큰 진전은 없었다. 그렇게 두어달 때쯤 지났을까 슬슬 회의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그간 음악을 들어온 가락(?)이 있어서 악기 한두 개쯤은 금방 정복하리라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그리고 잠시 생계를 이어가느라 몇 달 잊고 살다가 다시 불이 붙어 이번엔 성인들만 다닌다는 학원을 갔다. 이번엔 한곡씩 마스터하는 쪽으로 방향을 수정하여 다시 매주 한번 레슨에 매일 연습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역시 이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일정 수준에서 교착상태에 빠졌고 다시 흥미를 잃어갔다. 그리고 다시 생계를 이어나가다 이번엔 아예 집에다 놓고 매일 연습할 요량으로 지인에게 디지털피아노를 중고로 사들였다.

방안에 놓으니 인테리어에 좋았다.(...) 한동안 먼지만 닦아내며 가끔 조용히 쳐보곤 있는데 역시 무언가 하나를 배우기 위해선 그 초급과정을 겪어내는 무수한 노력의 시간을 거쳐야만 하나보다.


혹은 영혼의 지축을 흔들만한 곡을 듣거나 그마저도 아니면 미모의 여선생님이 있는 학원을 가봐야 하나(...)


안녕 스무살 - 토이 6집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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