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후반기 교육기간을 거쳐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 내무반에 빼곡히.
훈련소-후반기 교육기간을 거쳐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
내무반에 빼곡히 앉아있던 17명의 선임들은 같은 또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이 서있었고 그 모습에 나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받게 되었다.
‘막내’라는 이름을 단 생애 가장 낮은 위치에 선 순간이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그들의 일명 ‘갈굼’의 대상이었고, 이전에 겪었던 파시즘적인 학교생활보다 더욱 숨 막히는 상황을 직면하게 되었다.
나 이외는 나를 아는 타인은 아무도 없었고, 그 낯선 고독감에 시키는 것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외부와 통하는 길이라고는 일주일에 한 번 전화를 (아주 잠깐 동안)하거나 편지를 쓰는 건데 그것도 일일이 선임에게 ‘검열’을 받아야 했다.
입 밖으로 힘들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오히려 지인들이 걱정할까 봐 그저 나는 잘 지낸다고 할 수밖엔 없었다.
나 잘난 맛에 살던 사람이 그런 환경에서 겪었던 패배감과 무력감이란 이루 말로 다 못할 것이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매일 아침 6시에 눈을 뜰 때 항상 마음속으로 제발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가길 기도하곤 했었다.
거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심하게도 그것밖에 없었다.
물론 사람이 적응하는 동물인지라 이내 곧 군인의 모습이 되어 다행히도 무탈하게 보냈지만 그렇게 나는 정확히 730일을 그곳에서 지냈다.
아니 버텼다.
버티는 730일 동안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730번 정도 했다.
짧지만 긴 2년이라는 시간은 생애에서 정말 죽은 시간이었다. 흔한 말로, 인생에서 말소된 페이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