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진짜 여행이 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가끔,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어색한 사이의 사람에게 대화중 분위기를 환기시킬 요량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보곤 한다. "만약 이번 주 토요일 저녁에 로또에 당첨되어 현금으로 10억 정도 통장에 꽂힌다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은가요?"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비슷한 답변을 한다.
"먼저 일을 때려치우고 여행을 가고 싶어요!"
어디로 여행을 갈지 생각해 둔 곳이 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당황하며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아무 여행지나 이야기하거나 지난주 TV예능프로그램에서 본 여행지에 대해 이야기해댄다.
그건 진짜 여행 자체를 좋아해서 여행을 가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금 자신의 현재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말일 것이다.
"로또가 되면 뭐할 거냐?"라는 질문은 뒤집어 말하면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라고 물어본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답은 고작 아무곳이나 횡설수설 또는 TV에서 본것을 떠벌리는 식의 아무 의미, 이유 없는 공간 묻지마 여행이라니.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행병'에 걸린듯하다. 미디어에서 교묘히 대중들에게 여행에 관한 좋은 면만 세뇌시켜 그런지 아니면 고작 손바닥만한 화면의 SNS에서 본 여행지 사진에 자극받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여행에 강박적인 증상을 느끼는 것 같다. (자신이 원해서 하는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여행을 하려는 듯 보임.)
무작정 여행만 갔다 오면 힐링이 돼서 삶의 질이 향상되고 견문도 넓힐 수 있고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는데 그건 굉장한 오산이다. 여행지에서의 경험을 자신의 내면으로 수용하여 자기역량을 강화할만한 지식과 능력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제아무리 세계일주를 하고 달나라를 갔다 온다 한들 말짱 꽝 여행 갔다 오기 전과 똑같은 상태에 불과하다.
모든 이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있을 필요는 없겠지만, 최소한 그 정도의 자각조차 없이 살아간다면 대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 일 안 하고, 어떻게 하면 새로운 맛집에나 찾아다닐까 같은것만 머리굴리는 삶에 어떤 발전이 있을지(...) 회의적인 생각만 든다.
개개인의 꿈조차 획일화된 사회는 결코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다. 분명 무한 경쟁 사회가 개인을 시달리게 해서 '힐링병', '여행병'에 들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개인의 목표가 '여행 지상주의'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요즘 출판사에서 받아 드는 원고들의 7,8할이 해외여행기라는데 그 원고라는 것들이 다 특징 없이 고만고만하단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특별한 경험이라고 해서 갔다 오는 여행들이 사실 '거기서 거기'인지는 굳이 출판사 편집장이 아니어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