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이야기가 그립다.
예전엔 사람들이 저녁마다 마을 사랑방에 모여서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친밀해지고 생각도 나누었는데 요즘엔 TV와 스마트폰 때문에 일방적으로 정보와 재미를 전달받기만 하고 자기의 이야기를 하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지가 않다. 그래서 마치 사랑방에 둘러앉아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깔깔대는 그런 재미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너무 무겁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아주 내용이 없는 헛소리만은 아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사실 사랑방이라는 말도 한자로는 舍廊房으로 집+복도의 의미로 한옥에서 주로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취미를 즐기거나 손님을 맞이하는 곳으로 love라는 의미의 사랑과는 발음만 같을 뿐 서로 연관은 없다. 예전 부잣집들은 안주인이 거주하는 안방 또는 안채와 결혼을 한 자식이 거주하는 별채인 서방, 그리고 머슴이나 행랑아범 어멈이 거주하는 대문 옆 행랑채를 별도로 구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는 사랑채는 어른들이 노는 곳이라 그렇게 편안한 공간이 아니었고 행랑채가 오히려 부담 없이 들랑거리고 놀 수 있는 곳이었다. 내 어린 시절 집이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가끔 놀러 다니던 이모할머니 집이 지금 생각하면 꽤 잘 사는 집이었던 듯하다. 우리 집은 지방 소도시 산등성이 빈민촌에 있어서 주변 환경이 별로 좋지가 않았고 그래서 어린 시절 추억들도 별로 유쾌하지가 않았는데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한참을 가야 하는 이모할머니 집에 가면 할머니와 아재가 항상 반갑게 맞이해 주고 홍시나 곶감, 유과나 강정 같은 한과도 먹을 수 있고 계절에 따라 수박, 참외, 토마토 같은 과일도 풍성했고 팽이나 대보름 쥐불놀이나 연 같은 놀잇감도 많아서 어린 나로서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나중에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사실 이모할아버지는 이모할머니 집에 살던 머슴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모할머니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로맨스나 극적 스토리가 있을 만도 한데 뒷이야기까지 물어볼 수는 없었다. 다만 이모할머니의 부모님들이 의식이 깨어있었던지 크게 반대는 안 했다고 하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모할머니는 시골 할머니 답지 않게 농사일도 하지 않아서 얼굴도 하얗고 곱게 안방에서만 지내시고 이모할아버지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아무 말도 없이 일만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사랑방 이야기들은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근거가 부족해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과장이거나 헛소문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만 할 것 같은 충동도 느끼지만 어쩌면 이러한 이야기들도 여러 사람들의 귀와 입을 거치면 나름 검증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예전의 설화나 민담이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작은 소재와 사건이 오랜 시간 여러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이야기가 살을 보태고 터무니없는 것은 걸러지면서 집단지성이나 여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해 온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창의성과 사건의 정확성을 강조하는 지금의 언론이나 저술과는 별개의 의미를 가진다고 할 것이다. 또한 프랑스혁명이나 황건적의 난 또는 광우병, 마녀사냥 등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이런 (헛) 소문에서 촉발된 것도 많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이 가지는 힘을 작다고 할 수가 없다.
사랑방은 또한 한국인에게 독특한 문화이다.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 즉 조상에게 제사를 모시고 손님을 접대하는 것을 양반가의 신성한 2대 의무로 여길 만큼 손님대접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것을 다하지 못해서 비난을 받으면 체면을 잃는다고 생각했기에 좀 산다 하는 집에는 사랑방에서 기생하는 무리들이 항상 있었고 여염집에서도 친구이든 직장동료이건 좀 친하다 싶으면 집으로 초대해서 한 상 거하게 대접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서운하게 생각하고 밖에서 놀다가도 “야 우리 집에 가서 한 잔 더 하자”며 예고 없이 손님을 몰고 올 정도는 돼야 어깨 힘이라도 줄 수 있었고 죄 없는 아내들은 그걸 웃으며 받아넘기고 접대를 하는 것이 현모양처의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평소에도 담을 낮추고 문을 열어놓고 사는 것을 덕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개방적인 집 문화는 서양이나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한국에서도 이제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지만 이는 두레 등 협동작업이 필요한 벼농사 촌락 집성촌 그리고 향약등 유교적 규범의 영향이 컸겠고 공동체 유지라는 긍정적인 면과 어쩔 수 없는 면도 있겠지만 지금의 개인의 사적 삶을 중시하는 서구적 시각에서 보면 낭비적이고 사생활과 자유를 침해하는 요소도 많다. 이런 식객 문화는 경제적 문화적 예술적 융성기였던 송나라에서 유래하여 주자학과 더불어 한반도에 전래되어 나중엔 대원군마저도 권력을 잡기 전에는 어느 세도가의 식객이었을 정도로 보편화되었고 지금도 식객이라는 먹방 여행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그 뿌리가 꽤나 깊다고 할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약간의 부정적인 요소도 없지는 않지만 tv나 utube 같이 일방적인 전달이 아닌 상호 의견이 오고 가는 유익하고 편안하고 즐거운 대화의 장인 현대판 online 사랑방이 이 글과 더불어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