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삶의 일상에서 겪는 큰 기쁨 중의 하나는 산책을 하는 것이다.
몇 년째 나는 일을 나가지 않는 날에는 아침을 먹고 나서 반드시 산책을 나간다. 날씨가 화창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도 집에서 빈둥거리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거나 안 나갈 구실을 삼지 않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춥든 덥든지 간에 산책을 하는 것이 이제 습관이 되었다. 처음에는 같은 길을 매일같이 걷는다는 것이 좀 지루하고 답답하여 자전거를 타거나 뛰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었지만 버릇이 되고 나니까 차츰 즐거움이 생기고 혹시라도 안 하면 더 이상할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매일 같은 길을 걸어도 눈을 뜨고 주변을 살피면 항상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날씨와 계절에 따라서 풍경도 다르고 도중에 마주치는 사람들과 개, 동식물들이 매일매일 같지가 않고 신선하다. 또한 마음도 평온하며 걱정 근심보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떠오를 때가 많아서, 처음에는 건강 때문에 시작을 했지만 이제는 일과 삶에 있어서도 오히려 생산적인 활동이 되었다.
예전에 나는 일이 난관에 부딪치거나 꼬여서 잘 풀리지 않을 때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그리고 잠자리에 누워서 잠들기 직전에 문득 해결책이 떠오르곤 했는데 요즘엔 산책을 하면서 글의 소재나 문제의 돌파구, 참신한 구상을 할 때가 많다. 가토토시노리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위한 뇌 과학'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고를 담당하는 인간의 대뇌가 원래 컴퓨터의 CPU와 마찬가지로 한꺼번에 여러 개의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보고 듣고 말을 하거나 게임이나 싸움 등 스트레스가 심한 활동 등의 일차적 감각의 유입이나 즉각적 반응을 할 필요성이 최소화된 상황에서 가장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왜 칸트가 평생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하였고 스님들의 수행법 중에 좌선과 더불어 행선이라는 것이 있는지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바로 겉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는 속에 '깨달음'이라는 엄청난 변화가 나오는 것이다.
이런 거창한 대오각성은 아닐지라도 산책을 하면 최소한 몸과 마음의 건강은 얻을 수 있으니 산책을 안 할 이유가 없다. 특히 캐나다에서는 도시 근교뿐만 아니라 도시 안에도 공원과 산책길이 많고 철에 따라 야생화가 다양하게 피어있으며 주택가에도 집집마다 정원을 잘 가꾸어 놓아서 그야말로 꽃길을 걸으며 새소리를 들으며 꽃향기를 맡으면서 산책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 캐나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 스위스와 독일 등의 나라에서도 공원과 정원에 꽃들을 꽤 잘 가꾸어 놓았고 식당과 가정의 식탁과 거실에는 반드시 화병에 꽃 한 송이는 있어야 할 정도로 꽃과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가 생활화되어 있으며 특히 프랑스는 마당이나 정원이 없는 도시의 작은 집이라도 창문 아래에 화분을 걸어놓아서 다채로운 색깔의 나무 덧창과 더불어서 독특한 도시의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것이 과연 예술의 도시답다. 이렇게 말하면 그건 살만한 여유가 있는 나라 사람들의 배부른 사치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도 지금은 도시나 시골이나 할 것 없이 모두 다세대 주택과 아파트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삭막하기 그지없지만 50년 전만 해도 가난하고 허름한 집들도 마당에 작은 화단은 대부분 하나씩 있어서,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 나팔꽃 달맞이꽃 등 화려하진 않지만 소담한 꽃구경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 꽃을 보는 이런 여유는 경제적 문제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삶에 있어서 물질과 정신의 풍요 어느 것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가의 문제인 것 같다. 사실 요즘 한국인 중 누가 정말 돈과 시간이 없어서 꽃이나 화분 하나도 사지 못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니 이제 한 숨 돌리고 마음의 여유를 좀 찾아야만, 한국인이 잘 살지만 자살률은 최고이고 행복지수는 꼴찌에 가까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유럽의 국가들도 꽃에 관한 흑역사가 없지는 않다. 사실 장미나 백합 등 우리가 아는 많은 꽃들이 야생화가 아니라 인간이 육종으로 개량하여 더 크고 더 다채롭고 더 향기롭게 만든 인공의 것들이며 그 이면에는 화훼산업이 큰 돈벌이라 국가 간 종자 분쟁과 로열티가 오고 가는 살벌한 산업 중의 하나이고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투기 열풍처럼 탐욕의 수단과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보석이나 사치품처럼 엄청나게 비싸지는 않으면서도 아름다움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좋은 존재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언제부터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게 되었고 남자들은 왜 여자들에게 꽃을 선물하고 여자들은 꽃을 받으면 행복해할까?
전종환의 '오래된 연장통'에 따르면 인간들이 경작을 시작하기 이전 수렵채집을 하던 석기시대에 꽃이 있는 곳의 주변에 바로 먹을 수 있는 곡물이 있었기 때문에 꽃을 보면 기뻐했고 그것이 우리의 DNA 속에 새겨져서 꽃 자체는 먹을 수도 없고 입을 수도 없어 아무런 이득이 없지만 지금도 인간은 꽃을 보면 즐겁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꿀벌이나 나비가 먹을 것을 찾아서 꽃에 모여들듯이 우리도 예뻐서가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서 꽃을 좋아하게 되었으며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의 청동기 시대 매장지와 심지어 우리 종의 방계격인 네안데르탈인의 무덤에도 꽃으로 장식한 흔적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채집을 하던 여자들은 지금도 꽃을 좋아하고 사냥을 하던 수컷들은 공을 쫓아 달려가는 스포츠에 열광하는지도 설명이 된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행복감은 단순히 먹고 입고 자는 기본적 생리욕구 충족의 동물적 만족을 넘어서서 음악 미술 사랑 성취 등의 고차원적 심리적 만족의 단계에 이르렀으므로 인간이 꽃을 좋아하는 것이 그저 본능적 충동만은 아니라고 본다.
아무튼 눈이 녹고 추위가 조금 누그러지면 얼어붙은 땅을 뚫고 어느덧 빼꼼히 움트는 튤립과 수선화의 부드럽고 우아한 꽃잎으로 시작하여 수줍은 듯 피어나는 하얀 매화, 숨 막히는 히야신스 향기, 그리고 연보랏빛 라일락의 은은하고 감미로운 향, 숲 속에서 바람을 타고 흐르는 아카시아와 등나무 향기... 그리고 벚꽃과 개나리 철쭉 진달래가 펼치는 봄의 축제가 절정에 이르면 드디어 화려하게 등장하는 장미의 진한 색깔의 향연, 그리고 그에 질세라 풍성하게 피어나는 다알리아의 품위... 또 귀티라면 빼놓을 수 없는 백합, 수국... 쓸쓸한 가을의 고독을 위로하는 국화와 사시사철 산길 곳곳에서 나를 반기는 이름도 다 모를 수많은 야생화들이 주는 그 기쁨은 축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이 고맙고 소중한 우리 삶의 동반자이다.
자 그럼 오늘도 걸어볼까? 우리 앞 모두에게 펼쳐진 꽃길을! 행복하게...